Sunday, March 6, 2011

내 연기는 고통 속에 곰삭은 메주다

공연 시작 네 시간 전, 박영규는 무대 뒤 그리 넓지 않은 개인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한창 분장 중이었다. 그는 거울 앞에 앉아 두 손을 앞쪽으로 얌전히 모은 채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파운데이션을 묻힌 스펀지가 쓱쓱 지나갈 때마다 깊게 파인 주름의 흔적이 하나 둘 지워졌다. 그의 나이 벌써 57세, 환갑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인터뷰를 기피하는 배우로 유명하다. 특히 5년 동안 어쩔 수 없었던 공백을 가진 뒤 그를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다. 보통 인터뷰를 하지 않는 배우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할 말이 너무 없거나, 반대로 할 말이 너무 많은 경우다. 후자는 대개 고통스러운 일을 겪은 경우가 대부분일 터. 박영규는 인터뷰를 결심하기 전까지 많은 고민을 했고, 더불어 기자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감은 눈을 먼저 만나서일까. 인터뷰는 편안하게 진행되었고, 노트북을 덮고 일어났을 때는 감동적인 영화 한 편을 접한 기분이 들었다.
음대 출신 아내의 확실한 내조
뮤지컬에 서기까지 그의 뒤에는 확실한 매니저가 있었다. 그의 아내다. 박영규는 2006년 한 살 연하의 김 모 씨와 재혼했다. 첫 만남은 친구 결혼식에서 이뤄졌다. 세 번째 결혼을 한 친구였는데, 그 자리에서 세 번째 아내를 만나게 된 것이다. 결혼식 피로연에서 아내와 친해지고 농담처럼 프러포즈했다. “내년에 결혼 스케줄을 잡아볼까요?” 그 농담이 씨가 되어 그로부터 1년 후 크리스마스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뮤지컬 무대에 서기 전 아내의 도움을 받았다고 들었다.아내는 음악대학 작곡과 출신이다. 뮤지컬을 준비하기 전 아내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배웠다. 가수로도 활동했고 노래는 자신이 있었지만, 처음부터 음악을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정확한 음정과 박자를 배운 것이다. 음악은 수학이더라. 정확한 음을 내야 다른 사람과 화음을 이루게 된다.
-처음부터 배운다는 생각, 쉽지 않았을 것 같다.아내의 레슨이 많은 도움이 됐다. 뮤지컬 노래는 가요 부르는 방식과 다르다. 혼자 부르는 부분이 있지만 이중창도 있다. 처음에는 내가 그 음을 대충 내고 있더라. 음이 정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얼마든 그냥 하던 대로 해도 되었을 거다. 그래도 대충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전까지 때를 벗고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서 고통은 삶의 스승이라는 거다.
-아내는 어떤 존재인가?항상 나를 도와주고 용기를 주는 사람이다. 가장 힘들 때 나를 옆에서 지켜주고 함께 아파해줬다. 그 사람이 있기에 지금까지 온 것 같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그 사람 덕분에 인생은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낀다. 그래도 가끔 인생은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인생은 그런 것 같다. ‘아니다’, ‘그렇다’의 반복이다.
나는 한순간도 편하게 살아본 적이 없다그는 우리에게 <순풍산부인과>의 ‘미달이 아빠’ 혹은 <주유소 습격사건>의 주유소 사장으로 기억된다. 우리가 쉽게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그러나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캐릭터들이다.
-코미디 연기에 한정되는 느낌이 들지 않나? 사실 ‘미달이 아빠’ 이전에는 멋있는 신사 역할을 주로 맡았는데.기회는 운명적으로 온다.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 만약 내가 그런 삶을 살게 될 거라면 그런 기회는 분명 올 거다. 그때는 또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 뭐든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 일단 지금은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얼마 전 토크쇼에서 ‘코미디 연기는 눈물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했다. 코미디 연기와 눈물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나는 한순간도 편하게 살아본 적이 없다. 남들이 느끼는 재미와 웃음은 바로 그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만들어졌다. 생활에 찌들고 눈치 보는 미달이 아빠의 모습을 연기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바로 그렇게 살아봤기 때문이다. 눈물 흘린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고통을 연기로 승화해내는 사람이 바로 배우다. 눈물과 고통으로 갓 구워낸 빵 같은 것이 바로 코미디다. 어떤 사람들은 고통에 무너지고 쓰러진다. 어떤 힘이 나의 삶을 지켜준 것 같은 기분이다.
-가수는 자기 자신의 노래처럼 인생을 산다고 한다. 멜로 배우에서 코미디 연기, 뮤지컬 도전까지 당신의 연기 인생도 ‘카멜레온’같다. 끊임없이 변신해온 모습에서 카멜레온은 맞는 표현이다. 내가 그 노래를 만나고 또 그렇게 살아온 것 역시 운명인 것 같다. 내가 연기하는 아서 왕도 그런 면에서 어쩔 수 없는 운명의 굴레 속에서 사는 사람이다. 아서 왕은 그릇 자체가 큰 사람이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그릇 만큼 고독한 시간을 갖는다. 나는 왕은 아니지만 배우로서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현실에 없는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에서는 왕이 맞고, 그것을 위해 고독한 시간을 갖는다.
-5년 만의 복귀작인 <주유소 습격사건 2>은 안타깝게도 흥행에 참패했다.실패를 통해 얻는 게 많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열심히 하겠지만 좋은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두 시간 내내 배꼽 빠질 정도로 진짜 웃긴 작품이면 좋을 것 같다.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그 시간만큼은 즐겁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아들의 죽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통가장 큰 아픔은 6년 전 아들을 잃은 슬픔일 것이다. 2004년 3월 아들이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뜬 후 연예계 생활을 정리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연기는 더더욱 하기 힘들었다.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마저 아들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스스로 고통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5년이라는 시간을 방황했다.
-5년의 공백 기간, 아들의 죽음 때문이었는데.나는 운명론자다. 내가 노력하는 부분도 있지만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도 있더라. 아들과 나는 부모 자식 사이로 태어나 일찍 헤어졌다. 인간은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 다만 아들이 먼저 간 것이 가슴 아픈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먼저 간다는 건 순리가 아니다. 순리가 아니기 때문에 힘들고, 거기서 받는 충격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안 겪어 본 일이 없다. 돈도 잃어보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헤어져 봤지만 다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자식을 먼저 보내는 것은 정말 감당할 수 없었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감당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감당할 수 없어 매일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되겠더라. 내가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TV에 나와 활동하면서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다. 연기를 함으로써 거듭나야 하고, 관객과 소통하면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고통이 반드시 개인이나 세상을 파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아픔을 통해 어떤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집중력이 생긴다. 고통 없는 사람은 발전이 없다. 내가 겪은 고통에 비하면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5년의 시간이 지나고 배우로서 달라진 점이 있는가?메주는 곰삭고 숙성된 맛을 내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 배우는 고통을 잘 극복하면 그만큼 성숙해진다. 그래서 배우는 사람이 아닌 거다. 어떤 면에서는 구도자 같다. 고통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배우의 눈빛은 더 깊어진다. 나에게 지난 5년은 그런 시간이었다. 잘 모를 것 같아도 속상해서 울어본 사람들은 진짜 눈물과 가짜 눈물을 구분할 줄 안다.
-다시 태어나도 배우가 될 것 같나?세상은 밝은 쪽이 있으면 어두운 쪽도 있다. 예전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당연히 배우가 되었을 거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솔직히 이제는 못할 것 같다. 다시 태어난다면 평범하게 살고 싶다. 길을 걸어가도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그런 평범한 삶. 주어진 운명을 뜯어 고칠 수는 없고 하나를 가지면 반드시 다른 어려움이 있을 거다. 어쨌든 이 생애에서는 배우로 살아야 한다. 배우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나의 운명이고, 부모님이 세상에 나를 낳을 보람일 거다. 그게 아들을 위하고 부모님을 배신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간의 노폐물을 빼내고 싶었다
그가 뮤지컬 <스팸 어랏> 무대에 선다고 했을 때 의아했다. 5년의 긴 공백을 깬 작품이 그를 스타의 반열에 들어서게 한 <주유소 습격 사건>의 속편이었던 것은, 흥행 여부를 떠나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였다. 뮤지컬은 좀 달랐다. 몇 년 사이 뮤지컬 제작 편수가 늘고 있고 아이돌 스타나 인기 배우들이 뮤지컬 무대에 서고 있다지만, 환갑에 가까운 중년 배우가 뮤지컬에 선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으니까.
- 왜 뮤지컬을 선택했는가?연극배우로 시작했고, 뮤지컬 두 편을 한 적도 있으니 무대는 나에게 익숙한 공간이다.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이다. 사실 이 나이가 되면 할 수 있는 역할이 한정적이다. 주인공을 받쳐주는 아버지 역할이 대부분이다. 뮤지컬 섭외가 들어왔을 때 반가웠다. 젊은 사람이 노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이 배우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오래 쉬었기 때문에, 다시 시작하는 느낌으로 그동안 쌓였던 노폐물을 빼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젊은 배우들과 함께 열심히 땀 흘리면서 뛰어보자는 각오로 시작했다.
- 일주일에 세 번 공연, 게다가 노래뿐 아니라 춤도 춘다. 주인공이라 쉴 틈도 없다. 힘들 것 같은데?많은 사람들이 내게 그런 말을 한다. “힘들겠다.” 나는 그냥 웃으면서 속으로는 희열을 느낀다. ‘몸이 이렇게 가벼운데, 왜 걱정을 해?’하는 마음에서다. 전혀 힘들지 않다. 오히려 공연을 하고 내려오면 몸이 가뿐해져서 잠이 잘 온다. 피트니스에서 운동한 것처럼 몸이 풀리는 것이다. 두세 달 공연하면서 몸이 가벼워졌다. 3kg이 빠졌고 전보다 굉장히 건강해졌다. 1년 내내 공연을 해도 좋을 것 같다.
- 따로 체력관리를 하는가?수도원 생활하듯 절제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뮤지컬 연습을 하면서 사람들을 일체 만나지 않는다. 늦게까지 술을 마시면 다음 날 공연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감사한 건, 건강 체질을 타고 났다는 거다. 그래도 배우로서 자기 관리는 기본이다. 배우는 몸이 재산이기 때문에 활동을 할 때나 하지 않을 때나 한결같아야 한다.
-청중과 직접 만나는 기분이 어떤가? 반응이 좋을 때는 기분이  좋을 것 같은데?그 기분은 정말 말도 못한다. 그런 기분을 느끼기 위해 배우를 하는 거다. 우리 부모님은 그렇게 하라고 나를 낳아주신 거고. 그런 것들이 살아가는 의미고, 그것을 위해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할 것 같다.
-흥행성적도 좋고 평도 좋다. 지난 주 공연을 봤는데 관객 반응도 좋더라.그런 쪽으로 기사를 써줬으면 좋겠다.(웃음) 무엇보다 나는 내 또래 사람들이 공연장에 오는 게 좋더라. 뮤지컬 하면 젊은이의 문화라고 생각하지 않나. 사실 영국 오리지널 원작을 보고 많이 고민했다. 시종일관 웃기는데 그걸 번역 대본으로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영국식 유머가 한국에서도 통할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여기서 나는 웃기는 역할보다는 다른 배우들이 웃기도록 잘 받쳐주는 역할이다. 함께하는 젊은 배우들이 순발력도 좋고 연기도 잘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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