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6, 2011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사나이 김선혁


잘생긴 얼굴이 단번에 눈에 띄는 그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아직 그를 잘 알지 못한다. 다만 평일 오전 시간대의 주 시청자인 주부들에게만큼은 확실히 자리매김을 했을 것이다. 드라마 <엄마도 예쁘다>에서 히스테릭한 아내와 사랑하는 여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홍우진 역할을 맡은 김선혁. 그를 잘 알기 전에는 ‘신인배우치고는 어색하지 않게 연기한다’ 정도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면 속살 깊이 숨겨둔 이야깃거리가 넘쳐난다는 걸 알 수 있다. 무명 배우에서 아침드라마 주인공을 단번에 꿰차기까지는 그만큼의 사연과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는 법이니.
첫 번째 반전, 10여 년 전 길거리 캐스팅
올해로 서른네 살인 김선혁. 연기자로서 첫 데뷔가 스물아홉 살 때였으니 결코 이른 나이에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연예계 생활이 낯설지 않은 건 이미 한 차례 준비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갓 스무 살이 됐을 무렵, 그는 친구들과 춤을 추러간 곳에서 소위 말하는 ‘캐스팅’이 됐다. 그 당시 그를 포함한 친구
세 명은 소방차의 매니저였던 이로부터 명함을 건네받았다. 당장 다음 주에 오디션이 있으니 춤과 노래를 준비해오라는 미션을 받은 것. 얼떨결에 오디션 기회를 얻은 셈이다.
어릴 때부터 어딜 가거나 앞장서는 스타일이었던 그는 ‘연예인보다 더 연예인 같다’, ‘가수나 개그맨을 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기에 자연스레 가수가 돼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그때는 마냥 신났죠. 뭐가 되려나 보다 싶어서 친구들과 의기투합해서 나름대로 준비를 해갔어요. 그런데 막상 오디션 현장에 갔더니 100명 정도가 모여 있는 거예요. 그래도 운이 좋았는지 저와 친구들 셋은 최종까지 갔습니다.”
하지만 목표도 없이 쉽게 얻은 기회여서일까. 결국 의지 부족, 부모님의 반대 등의 이유로 가수가 되는 일은 싱겁게 무산됐다. 그리고 이후 몇 년간 묵묵히 학업의 길을 걷게 된다.
“그 당시에 전 ‘가수가 되어야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누가 해보라니까 혹해서 한 거였죠.
그래서 부모님이 만류하셨을 때 쉽게 의지를 꺾은 것 같아요.
 만일 그때부터 연예인의 길을 걸었다면 오히려 편하게 연기자가 됐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고민 한번 제대로
안 해보고 쉬운 길로만 걸어갔을 모습을 상상하면 아마도 남 배려도 할 줄 모르고 자기 잘난 맛에 빠져 있거나,
극도의 회의감으로 우울증에 걸렸거나…. 그리 좋은 모습이 연상되진 않네요.(웃음)”
뒤늦게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연기자로서 모습을 갖춰가고 있는 지금도 가끔씩 ‘그때 좀 더 결의를 다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숱한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모습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말이다.
그는 이제껏 그리 많은 작품을 하지는 않았지만, 매 작품마다 제작진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첫 작품 <식객>에서는 특유의 넉살과 당찬 모습으로 대사 하나 없는 단역 대신 조연 자리를 꿰찼다.
이력 하나 없는 무명인데도 감독의 기에 눌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던 것. 이후 <잘했군 잘했어>에 합류할 때도 단기간에 6kg을 감량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에게 첫 주연의 기회를 준 이번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몇몇 후보들과 함께 최종까지 올라간 그는 3일 정도 여유가 주어지자, 그 사이 수염을 기르고 3kg을 감량하며 단기간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어필했다. 게다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준비해갔고, 그 당시 한창 연습 중이던 대금을 무작정 들고 가서 즉석에서 연주해보였다. 이렇게 노력하는 모습은 제작진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주연 발탁으로까지 이어졌다.

두 번째 반전,
숨은 엄친아

연기자가 되기 전까지 그의 목표는 놀랍게도 교수였다. 평소 스킨스쿠버 등 해양스포츠에 관심이 많던 그는 대학에서 해양학을 전공하며 관련 분야에서 활동해왔다. 이후 부모님의 기대 속에 자신 역시 학자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예일대학교 박사 출신의 아버지, 유명 요리연구가인 어머니, 엘리트 코스를 밟고 대기업에 재직 중인 형 등으로 이루어진 가족 분위기에서 자연스레 생긴 꿈이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부푼 꿈을 안고 유학의 길에 올랐다. 하지만 아버지의 건강 문제, 사업 실패 등 상황이 악화되면서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의 좌절을 겪었지만
그 대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못 다한 꿈을 펼치리라 마음먹었다. 그럼에도 그의 의지는 확고하게 굳어지지 않았다.
“그때 많이 방황한 것 같아요. 유학이 좌절됐을 때도 그랬지만 한국에 돌아와 대학원에 들어가서도 제가 예상한 것과 많이 달랐거든요. 제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시스템적으로 그걸 가로막는 요소가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처음의 의지도 많이 꺾였고요.”
슬럼프가 찾아왔을 즈음 그는 한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 친구는 크리스천이었다. 술, 담배도 많이 하고,
종교에 거부감도 많던 그였지만 그 친구의 한 가지에 매료됐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어린 나이에 뭘 믿고 저렇게 확신에 차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다. 한창 방황하던 그의 눈에는 그의 모습이 신기하고 부러울 뿐이었다.
“은연중에 그 친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히 알고 있는 친구였거든요. 그러다가 어느 날, 꿈에서 환상이 보였어요. 마치 신 내림을 받은 것처럼 강렬했죠. 그때 연기에 대한 비전을 받았다고나 할까요? 정확하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무엇에 홀린 것처럼 제 마음속에 강렬하게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연기에 대한 마음을 굳히기 시작했어요.”
그는 20대 중반의 나이에 인생의 최대 기로에 섰다. 연기자의 길을 걷는 건 마지막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교수를 꿈꾸던 그에게 공부를 접어야겠다는 결심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단순한 호기심으로 뛰어들어보는 마음과는 확실히 달랐다. 결정을 하고 난 뒤엔 더 이상 돌아갈 길이 없었다. 교수님과 부모님에게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드러냈다.
“먼저 교수님에게 찾아가서 연기해야겠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당황하시더라고요. 어쩌면 한심하게 여기셨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순간의 수치심이나 이해 못할 시선을 받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그만큼 제 결심은 확고했거든요. 그 결의가 강하게 느껴졌는지 부모님은 한마디 반대 없이 허락해주셨습니다.
저를 믿고 지지해주셨다는 것에 정말 감사하죠.”
단호한 결심으로 대학원을 그만둔 후 그는 공연영상연구원에서 연기 실력을 갈고 닦았다.
연기를 배우고, 크고 작은 공연을 올리며 연기 전공이 아니라는 열패감을 4년간의 배움으로 채워나갔다.

세 번째 반전
, 의외성에 대한 고찰
현재 아침드라마 주연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는 연기자로서 이제 한 걸음을 뗀 셈이다. 작품을 시작한 지 3개월여. 매주 계속되는 강행군 촬영에도 익숙해져가고, 자신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에도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드라마를 보면 아시겠지만, 이 친구는 프로페셔널하고 매너도 좋고, 어떤 부분에서는 답답할 정도로 경직되어 있어요. 하지만 현실의 저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무척 밝거든요. 오디션 장에서도 인상이 강하다는 평을 많이 들어요. 하지만 저의 실제 모습에는 시트콤적인 면이 많습니다. 사람 좋아하고, 수다 떠는 게 취미일 정도죠.”
드라마에서 지적이고 단정한 이미지로 어필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진짜 매력은 ‘의외성’에 있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작업한 이들은 그의 첫인상과 다른 성격에 놀라고 숨겨진 스펙에 또 한 번 놀라곤 한다. 연기와는 전혀 다른 학문을 전공했다는 점,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해병대 출신이라는 점, 선후배를 아우르는 분위기 메이커로 활약하는 모습까지 그에게는 의외성이 다분하다.
“저만의 승부수는 그런 의외성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웃지 않고 얌전하게 있으면 그렇게 봐주실 테고, 전혀 다른 모습을 원하시면 진짜 제 안에 있는 걸 그대로 보여드리면 되잖아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점에서 저는 제가 가진 의외의 모습이
참 좋아요. 이럴 때 보면 늦게 들어선 배우의 길에 그간의 경험이 헛되지 않았구나 싶습니다.”
이제 삼십대가 무르익고 있는 그는 조급할 것 없이 천천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저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연기자로서 조용히 자신의 내공을 쌓는 것이 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로서 두 가지만 준비하는 게 있어도 조급함이 오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그는 날마다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여기에 오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상처도 많이 받고, 실망한 일도 많았죠.
부모님, 특히 어머니께서 마음을 많이 졸이셨을 거예요. 어머니는 요즘에도 가끔 ‘이번 드라마 끝나고 미니시리즈 같은 것 하나 들어가야 하는데…’라고 하세요. 그러면 전 ‘이제껏 이렇게 잘 왔잖아요’라고 해요. 서로 얼마나 힘들게 왔는지 아니까, 조급해하는 게 의미 없다는 걸 알거든요. 작은 일에 크게 들떠서 기뻐하고, 실망하고 그러지 않으려고요. 다만 지금의 밝은 모습은 나이 들어서까지 계속 가지고 가고 싶어요.
타성에 젖지 않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것, 그것이 연기자로서 저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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