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해 아빠’를 만나러 아침 일찍 인천국제공항을 찾았다. 시청률 35% 고지를 눈앞에 둔 일일극답게 강석우를 만나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오전에는 라디오, 토요일에는 MC, 일요일을 제외한 모든 평일과 주말에는 <웃어라 동해야> 촬영이 잡혀 있었다. 게다가 얼마 전엔 없는 틈도 쪼개 토크쇼 MC를 하나 더 맡았다. 그야말로 시를 분으로, 분을 초로 쪼개 생활하는 강석우의 스케줄에는 빈틈이 없었다. 그런 그와 수차례 문자를 주고받다 인천공항에서 하루 종일 촬영이 있는 날, 잠시 짬을 내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날 단 두 신을 제외한 모든 신에 등장하는 강석우를, 그 ‘두 신’ 동안 만날 수 있었다.
33년 연기생활그를 만나자마자 며칠 전 최고시청률을 경신한 <웃어라 동해야>의 고공행진을 축하했다. 그는 웃음을 머금으면서 한편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거라는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는 그보다 더 높았던 적이 당연스러울 만큼 많았다고 했다.“시청률을 매기기 시작한 게 80년대 후반부터인가 그래요. 그 전에 찍은 건, 모르긴 몰라도 시청률 50%는 훌쩍 넘기지 않았나 싶어요. 특히 <보통사람들>이라는 드라마로 데뷔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죠. 전 국민이 볼 정도로 어마어마했으니까요. 체감만 60%는 되는 것 같았어요.”
1978년에 영화 <여수>로 처음 데뷔한 강석우는 당시 흔치 않은 꽃미남 외모로 주목받았다. “약간 이국적인 마스크라고 해야 하나? 그런 말들을 주변에서 하더라고요. 연기하는 스타일도 조금 달랐고요. 그때는 ‘뱃심연기’라고 해서, 뱃심으로 하는 과장된 연기가 대부분이었어요. 왜 옛날 영화 보면 별 일 아닌 것에도 리액션이 굉장히 크잖아요, 이렇게(그는 친절하게도 과장되게 놀라는 포즈를 취해 보였다). 저는 그렇지가 않았거든요.”
그는 자신이 당시 배우들의 이른바 ‘뱃심연기’처럼 과장된 축에 속하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은 사극이나 연극판이 아니고서야 TV로 그런 과장된 연기를 보기 힘들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게 일반적이었고, 그는 마치 궤도에서 약간 빗겨간 듯 보였을 것이다. 주변 선배들에게 지적을 많이 받지는 않았을까. 그는 이렇게 답했다.
“1989년 드라마 <인현황후>에서 숙종 역을 맡았어요. 가뜩이나 뱃심연기가 안 되는데 <인현황후>는 사극이라 더 뱃심 연기가 필요했지요. 걱정을 하고 있는데, 함께 출연한 선배 중 한 분이 연습하는 걸 도와줄 테니 가끔 집에 들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정말 가끔이 아니라 매일매일 찾아갔어요. 그 선배가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을 거예요. 몇 년 지나고 나서 그 선배가 그러더라고요.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요.”
그는 시대가 요구하는 ‘뱃심 연기’에 부응하기 위해 7~8년을 계속 연습했다고 했다. 지금이야 TV에서 그런 연극식 연기를 보기는 힘들지만, 그때는 그게 그에게는 고쳐야 할 부분이었다. 끈질기게 노력하는 배우로 거듭나는 동안 어느새 하루에 수백 통씩 팬레터를 받는 인기 배우가 되어 있었다.
“종이학 같은 거 많이 받았지요. 지금도 일부는 간직하고 있어요. 한번은 내가 그동안 찍은 드라마랑 영화, CF랑 패션광고 전부 스크랩해서 책을 만들어 보낸 팬이 있었어요. 여러 광고를 찍다 보니까 내가 찍은 광고를 보지 못할 때도 많은데, 그 친구 덕분에 보게 된 것도 많았죠. 팬레터는... 글씨가 예쁘다거나 하면 좀 읽어봤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볼 수는 없었어요.(웃음)”
강석우는 작년 5월 사망한 고 곽지균 감독의 추모식 때 사회를 봤다. 그는 곽 감독과 3~4편의 작품을 함께 했다. 곽 감독과의 인연은 강석우의 데뷔작인 <여수> 때부터 시작됐다고 했다.
“<여수> 찍을 때 곽 감독은 연출팀 막내였고 나는 연기자 막내였어요. 그때 통영에서 한 10일에서 보름쯤 촬영을 한 적이 있었죠. 당시 없는 용돈 모아서 겨우 내려갔는데, 시골 여관에서 지갑을 잃어버린 거예요. 촬영하다 보면 중간에 밥도 먹고 차도 마셔야 하는데 돈이 한 푼도 없었죠. 어디에 말할 사람도 없었지만, 막내끼리는 얘기를 하니까 곽 감독에게는 사정을 얘기했어요. 그때 곽 감독이, 그럼 자기 용돈 중 얼마를 나눠쓰자고 하더라고요. 그 때 우리가 약속한 게 있어요. 지금은 둘 다 신인이지만 나중에 잘 되면 작품 꼭 같이 하자고요.”
그 후 1982년에 영화 <탄야>에서 곽 감독은 조감독 퍼스트로 올라가 각본까지 썼다고 했다. 그리고 1985년, 둘은 드디어 <겨울나그네>로 다시 만났다. 이 영화로 곽 감독은 신인감독상을, 강석우는 인기 스타로 명성을 얻었다. 이후 <그 여자의 집>과 <상처>로 연달아 작품을 함께했다. 둘은 막내시절에 한 약속을 그대로 지켰다.
1996년까지 누군가의 연인 혹은 친구로 꽃미남 연기를 선보였던 그는 2000년 드라마 <아줌마>에서 원미경의 남편 장진구 역으로 출연하며 캐릭터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그에게 변화의 기점이 된 작품이 있는지 물었다.
“2000년에 드라마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로 처음 악역을 맡았어요. 여가수를 등쳐먹는 악덕 매니저 역이었죠. 그 후 안재모, 최강희가 나온 드라마 <학교>에서는 성추행을 일삼는 못된 학주 역을 맡았어요. 그 이미지로 굳어질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었어요.”
그는 선한 역 악한 역을 떠나 밝고 재밌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민정, 정경호, 최불암 등과 함께 출연한 드라마 <그대 웃어요>를 언급했다. 그는 드라마가 끝나고 아내와의 결혼 20주년 파티를 준비하면서 <그대 웃어요>로 함께한 배우들을 모두 초대했다. 그 현장이 아침방송을 통해 공개되면서, 지난해 명문대에 합격한 강석우의 아들 강준영 군의 훈훈한 외모가 네티즌들의 블로그에 캡쳐되어 퍼지기도 했다.
훈남 아들, 가장 예뻐하는 딸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강석우는 가정적인 남편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술은 물론 담배도 끊었다. 그의 말마따나 ‘해 떨어지면 무조건 집에 들어간다’는 식이다. 그래서 작년 3월, 아내를 위한 결혼기념일 파티를 준비하는 모습이 방송을 타면서 그의 자상함을 눈으로 귀로 직접 볼 수 있었다. 특히 딸에 대한 애정은 화면으로도 느껴질 만큼 남달랐다.
“우리 딸은 나랑 성격이 똑같아요. 작은 일에 순간적으로 마음 상하고 상처받고. 그러다가도 좋으면 깔깔대고 웃죠. 제가 특별히 예뻐해요. 다은이가 중학교 때까지는 자기가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그게 웬 말이니, 너처럼 예쁜 애가 어딨다고”라는 말을 몇 년 동안 했어요. 네가 최고로 예쁘다고요. 지금은 친구들이 ‘서문여신’이라고 부른대요.”
강석우의 표정과 말에서 딸을 향한 무한 애정이 느껴졌다.
지난해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한 아들 역시 강석우의 자랑거리다. 검색창에 ‘강석우’를 검색하면 ‘강석우 아들’이 함께 뜰 정도로 잘생긴 ‘훈남’이다. 당시 방송에서, 미용실에 함께 간 아들에게 ‘앞머리가 너무 긴 것 같으니 자르는 게 어떠냐’고 묻자 군말 없이 아빠의 말을 따르는 준영 군의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한창 헤어스타일에 민감할 나이인데, 찡그린 표정 하나 없이 앞머리를 내놓는 모습이 보기 흐뭇할 정도였다. 아드님이 정말 착하게 자란 것 같다고 말하자 강석우가 의외의 답변을 했다.
“난 그 장면을 보고 아들한테 정말 미안했어요. 그리고 가슴이 참 아팠어요. ‘아들이 내 얘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구나, 그저 순종하는구나’ 하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다시는 그런 얘기 아들한테 안 하려고요. 내게는 굉장히 충격적인, 일생일대의 사건이에요.”
드라마 촬영으로 바쁜 요즘, 그는 매일 12시가 넘어야 집에 들어간다. 그 시간에 들어가도 대학교 2학년인 준영 군은 자신보다 더 늦게 들어 올 때가 많다고. 대학 새내기로 놀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는가 보다. 남은 방학을 마음껏 즐기는 아들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준영이가 고3 때 혼자서 공부를 했어요. 그래서 대학 들어가서는 1년 동안 마음껏 놀라고 방목을 했죠. 이제 곧 군대도 가니까요.”
강석우는 아들 딸과 비밀이 없는 사이라고 했다. 다은 양이 남자친구가 있는지 없는지도 다 알고 있다. 아들 역시 새로 사귀는 여자친구에 대해 아빠에게 스스럼없이 말한다. 지난주에는 ‘사진 한 번 보자’며 아들의 여자친구 사진도 봤다고. 그는 보기 드문 신세대(?) 아빠였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기자의 입가에도 절로 미소가 번졌다.
강석우와 몇 마디 더 나누기도 전에, 미국에 사는 도진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입국 장면을 찍을 차례가 왔다. 다시 극 중 ‘동해 아빠’로 돌아가 심각한 표정을 지을 시간이었다. 남은 2달 반의 촬영 동안 그가 연기할 99%의 잿빛 표정은 강석우의 인생에서 그가 찌푸린 얼굴의 99% 아닐까? 여전히 전성기의 궤도 안을 달리는 그가 늘 웃을 수 있는 연기자, 자상한 아빠, 노력하는 배우로 빛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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