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rch 7, 2011

국경과 편견 뛰어넘은 빛나는 사랑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리마리오 이상훈. 그는 예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마치 화보에서 막 뛰쳐나온 듯 귀여운 아들과 아름다운 아내가 그의 곁에 있다는 것만 빼면. 그는 전성기 시절 ‘더듬이 춤’을 출 때보다 한결 더 밝고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가장이라는 단어 앞에 자상함과 따뜻함이라는 단어를 덧씌웠다.    
“언론에 처음으로 결혼 사실이 알려졌을 당시 저는 일본에 있었어요. 한국에 돌아와 보니까 수십여 통의 전화가 와 있더라고요. 팬들께 먼저 알려드렸어야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어요. 그 점이 항상 죄송했어요.”
파란 눈을 가진 한국 며느리
이상훈과 알리나는 지난해 4월 혼인신고를 하고 부부가 되었고, 그해 8월 10일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그는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했다. 당시 그는 부모님에게 결혼 승낙을 받지 못한 상태였고, 또 다문화 가족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편견도 두려웠다.
“뜻하지 않게 세상에 알려진 다음 수많은 악플에 시달렸어요. 입에도 담기 싫은 말들이 많았어요. 특히 제 아내가 러시아 출신 댄서라는 이유만으로 ‘어느 술집에서 봤다’는 악플을 접했을 때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보다 우리나라 네티즌들의 수준이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아내와 대학로에서 ‘컬투쇼’ 라는 공연을 함께 하면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는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알리나의 모습을 보고 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알리나의 사고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 알리나의 집에 찾아갔을 때 제 눈을 의심했어요. 옷이 정말 몇 가지 없는 거예요. 무대의상과 집에서 입는 트레이닝복이 전부더라고요. ‘쓸데없는 옷들이 왜 필요하냐’고 되레 묻더라고요. 그렇게 알뜰하게 살면서 통장에 제법 많은 돈을 모았더라고요. 요즘 여자답지 않게 검소한 모습이 감동적이었어요.”
알리나는 생활력이 강했다. 함께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알리나가 외식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상훈은 언제나 손수 만든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곤 하는 알리나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 사람들이 모두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졌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해요. 하지만 지내고 보니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보수적인 부분이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된다’라는 생각에 전혀 거부감이 없어요. 동유럽 사람인데도 가족애가 아주 끈끈해요.”
지금 그들은 부모님과 함께 살지는 않는다. 하지만 매일 전화해서 안부를 묻고, 부모님 집에 먼저 찾아가자고 말하는 사람은 아내다. 그가 갑작스럽게 부모님을 찾아뵙자고 말해도 한마디 불평 없이 흔쾌히 따라주고, 어제 가고 오늘 또 가자고 말해도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오케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부모님은 무녀독남인 아들의 결혼을 심하게 반대했다.
“결혼 전 알리나를 친구라고 속이고 부모님께 인사를 시킨 적이 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눈치를 채시고는 ‘그냥 친구로 지내라’고 말씀하셨죠. 가슴이 철렁했어요. 하지만 더 이상 부모님을 속일 수는 없었어요. 아내의 배는 불러왔고, 아이를 낳아서 키우려면 혼인신고를 해야 했어요.”
그는 부모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혼인신고를 했고 4개월 뒤 아들 율이를 낳았다. 그때까지 부모님은 알리나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훈과 알리나는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가서 둘의 결혼을 인정해달라고 이해를 구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나라에도 여자들이 많은데 왜 하필 외국 여자냐. 다시는 너를 보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어머니는 ‘부모가 없는 것도 아니고 몸이 불편한 것도 아닌데 왜 힘든 선택을 했냐’며 통곡을 하셨죠. 나이 지긋하신 부모님들은 대체로 외국인 며느리에 대한 편견이 있으시잖아요.” 
심지어 부모님은 알리나의 임신 사실을 알고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아들에 대한 배신감이 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율이의 출산 소식을 듣고 찾아온 부모님은 ‘아기를 낳고 헤어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 행복하게 잘 살라’는 말을 건넸다.
“결혼까지 어려운 과정을 겪고 보니, 서로에 대한 애틋함 때문인지 싸울 일이 없어요. 가끔 제가 화를 내면 아내는 ‘자기 말고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나한테 화내고 소리치면 어떻게 해’ 이렇게 말하죠. 그러면 저절로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그 흔한 프러포즈도 하지 못했고, 프러포즈 반지도 끼워주지 못했다. 그저 ‘같이 살래?’라는 말로 마음을 표현했다. 부모의 반대가 극심했던 터라, 로맨틱한 프러포즈가 아니라 비장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는 ‘그저 믿고 따라와 달라’는 말로 그녀의 마음을 사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주변의 친구들에게 증인을 서달라고 하고 간소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하자마자 이혼해야 하는 현실
“부모님이 승낙을 해주시고 결혼을 축복해주시니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어요. 결혼하자마자 이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직까지 아내의 국적이 러시아입니다. 일 년에 한 번씩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찾아가서 비자를 갱신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내의 비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출입국 사무소에 찾아갔더니 양국의 혼인신고서가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러시아에서 혼인신고를 하려고 알아보니까, 한국에서 이혼을 하고 오라고 하더라고요. 러시아에서 알리나는 아직 미혼이고, 한국 국적인 저는 유부남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얼마 전 그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온 여성들은 비자를 갱신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 여성과 결혼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친구 아내는 한국 들어오는데 비자도 필요없고, 체류기간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너무 황당해서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아갔더니, 그저 법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만 해주더군요.”
결국 아내의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이혼을 하고 러시아에서 혼인신고를 한 다음 한국에서 다시 혼인신고를 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아내는 장기 비자를 받을 수 있고, 귀화도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외교부에서 인정을 안 한다면 대한민국 헌법에서도 인정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어보면 알리나는 ‘처’로 나오고 율이는 ‘아들’로 나옵니다. 그런데 왜 외교부에서는 부부로 인정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비단 자신의 가족만 그런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나라보다 경제력이 다소 떨어지는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시집을 온 모든 여성들이 겪는 아픔이다.
“아내는 내년 1월에 일 년짜리 비자를 받기 위해 다시 출입국관리사무소를 가야 해요. 이 모든 수고를 덜기 위해 저희 부부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한국에서 이혼 절차를 밟는 것이고요. 부모님의 반대라는 장벽을 걷어내니, 출입국사무소의 장벽이 남아 있네요.(웃음)”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아들
지난 8월 10일은 율이의 돌이었다. 건강한 아빠와 엄마 덕분인지 율이는 유독 다른 아이들에 비해 발육이 빠른 편이다. 부부는 아직까지 특별히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자라주는 율이가 고마울 뿐이다.
“아버지가 얼마 전에 많이 편찮으셨어요. 패혈증에 걸려서 많이 힘들어하셨는데. 그때 병원을 다니면서 아픈 아이들을 많이 보았어요. 식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율이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저 건강하게 자라줬으면 하는 겁니다.”
이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알리나도 율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데 지극정성을 쏟는다. 아이의 피부에 좋지 않다며 일회용 기저귀를 쓰지 않고 면으로 된 기저귀를 직접 손으로 빨고 삶아 쓴다. 뿐만 아니라 냉장고를 열면 멸치, 새우, 참치 등이 수북하다고 했다. 천연조미료를 직접 만들어 쓴다며 살뜰한 아내 자랑이 늘어진다.
“아내는 어린 시절 화재로 어머니를 잃었어요. 그리고 아버지의 재혼과 동시에 이복동생들이 생겼대요. 새어머니가 학교는 보내주지 않고 어린 동생들을 돌보게 해서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삐뚤지 않게 성장한 아내를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만점짜리 아내에게도 한 가지 함께 해줄 수 없는 것이 있다. 연어를 우리나라 홍어처럼 삭힌 러시아식 샐러드를 권할 때다. 먹는 순간 암모니아 특유의 구린내가 올라오는데, 그것만은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아내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 어떤 음식이든 뚝딱뚝딱 해내는 편이죠. 그리고 언제나 제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바로 해줍니다. 사실 아내가 임신했을 때부터 몸조리를 끝낼 때까지는 제가 거의 모든 음식을 만들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는 일찍 귀가를 했고요. 그러니 저도 꽤 사랑받을 만한 남편이라고 생각해요.(웃음)”
그는 결혼 이후에 비로소 가정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한때 모질게 대했던 부모님의 마음도 이해하게 됐다. 하지만 그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팬들에게 미처 결혼 사실을 알리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이 남았다고 했다. 그리고 잘사는 모습으로 보답하겠다고 밝히면서 조만간 TV를 통해 찾아뵙겠다는 인사를 꼭 전해달라고 했다. 사실 그와 나눈 오랜 시간의 대화 중에는 최근에 그가 생각해낸 아이디어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아직 공개하기는 때가 이르기에 비밀에 부쳐두었다. 앞으로 더듬이 춤을 추던 리마리오보다 더 강력한 무엇인가를 들고 등장할 그를 기대해본다.

양희은 그 너른 품으로 부르는 희망의 노래

‘공연이란 나의 삶을
               정화하는 카타르시스’

양희은은 요즘 각종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이리저리 TV 채널을 돌리다보면, 그녀가 어느 한갓진 시골집 툇마루에 걸터앉아 고추장과 온갖 나물을 쓱쓱 비벼먹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또 어느 프로에서는 조카뻘로 보이는 후배들과 함께 퀴즈를 풀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멋들어진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것 같아 아쉽게 느껴진다. 분명히 양희은이 활약했을 당시의 노래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말이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을 알았는지, 양희은이 팬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오는 10월 18일부터 3일간 삼성코엑스 아티움에서 그리고 11월 6일, 7일 양일간 세종문화회관에서 ‘느리게 걷기’라는 타이틀로 공연을 갖는다.


안녕하세요, 양희은입니다. 아 떨려
“팬들을 위해 일 년에 한 번씩 공연을 해요. 이유는 다양해요. 팬들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저를 위해서이기도 해요.
저에게 공연이란 자기증명과 같은 중요한 의식이거든요.”
그녀는 공연을 할 때 제일 편안하고, 행복하고, 따뜻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얼마나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비슷한 느낌의 단어들을 연방 나열했다. ‘좋아, 좋아. 바로 이걸 기다린 거야.’ 그렇게 공연을 기다리고 기다린다고.
“지금까지 함께해온 멤버들과 공연연습을 할 때가 제일 행복해요. 우리 집에서 밥을 해먹으면서 ‘이번 공연에서는 이걸 빼고 이걸 넣자. 나는 누나가 팝송을 부르는 게 좋은데…’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누죠. 혼자 노는 걸 많이 하는데, 콘서트 연습은 절대 혼자서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흥이 나요.”
그녀는 예전부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가수로 데뷔했을 때부터 DJ를 해왔기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많지 않았다. 또 일하는 시간도 달랐다. 새벽 4시쯤 라디오 진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한숨 자고 나면 어느덧 정오를 바라보는 시간이었고, 오후 6시가 넘으면 남편이 귀가한다. 때문에 그녀는 사소한 취미라도 함께할 친구가 많지 않았다.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을 찾다 보니까 무작정 걷거나 해발 87.7m(웃음)의 정발산을 올라요. 그게 전부죠. 그래서인지 낯가림도 심한 편이에요. 열린 직업의 폐쇄성이라고 해야 하나?”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말문을 트고, 말리지만 않으면 카메라 앞에서 주구장창 연설을 할 것 같은 그녀가 뜻밖에도 카메라와 무대 울렁증이 있다고 고백했다. 카메라만 앞에 오면 표정이 얼음처럼 굳고, 노래를 하려고 무대 위에 올라서면 10분 정도 시간이 지날 때까지 심장 뛰는 소리가 귀로 들릴 만큼 긴장을 한다. 최근 예능프로그램의 출연이 잦은 이유도 그런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시작한 도전이다.
“자꾸 피하다 보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요. 그나마 TV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게 ‘열린 음악회’ 정돈데, 그것도 일 년에 고작 네 번 정도입니다. 그 무대에 서면 보통 서너 곡을 부르는데, 겨우 노래를 부를 만하면 무대에서 내려와야 해요. 그래서 제가 출연했던 TV 프로그램을 보면 바보처럼 보일 때도 많아요.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겁니다.”


‘아침이슬’에 묻혀버린 코미디언의 꿈
두툼한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고백을 한 양희은. 그러나 그녀에게는 사람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꿈이 있다.
그녀는 얼마 전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카메라 울렁증이 극복되면 환갑이 되어서라도 코미디언으로 데뷔하겠다는 폭탄발언을 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 별명이 ‘여자 구봉서’였다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학창시절부터 제가 입만 열면 친구들이 까르르 웃었어요.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코미디언이 되는 게 꿈이었죠. 노래는 자발적으로 부른 적이 없어요. 애들이 신청을 하면 부르는 정도였죠. 그리고 초등학교 때부터 연기를 했어요. 아동극 대회에 나가 1등을 하기도 했지요.”
그녀가 원하는 것은 액션을 과장하는 슬랩스틱 코미디는 아니다. “가발도 쓰고, 흉물스러운 분장도 할 수 있겠느냐”는 농을 건네자 “이빨에 김 묻히고, 바보 연기하는 게 코미디의 전부는 아니지 않느냐”며 진지하게 답했다. 그녀는 자신의 그런 희극적인 면이 ‘아침이슬’에 묻혀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예전에 양희은이라는 이름은 ‘금지곡’ ‘민중가요’ ‘좌파’ 등의 단어들과 함께 따라다니는 연관검색어였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아침이슬’이 시대를 대변하는 노래가 되어버렸죠. 그래서 ‘아침이슬’은 나에게 올무가 되었어요. 그 부담을 씻어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몰라요.”
이념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고, 오히려 그런 시선을 두려워하는 그녀지만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은 피할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그녀는 노 전 대통령 취임식과 영결식에서 모두 노래를 부른 유일한 가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행동에 이념적인 색깔을 덧씌우는 것을 경계했다.
“솔직히 그런 제안이 부담되기는 했어요. 용기가 필요했던 게 사실이죠. 하지만 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자기를 찾는 무대가 있다면 당연히 서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 마음에 노래를 불렀는데, 수많은 악플에 시달렸어요. 예상했던 일이긴 하지만요.”
그녀의 홈페이지에는 ‘좌파’ ‘똥개’ ‘돼지’ 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글들이 올라왔다. 그녀는 그걸 읽으면서 분단국가의 슬픈 현실을 다시 절감했다. 그리고 어린 친구들이 악플 때문에 왜 목숨을 끊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색깔이 없어요. 이념에도 전혀 관심이 없고요. 그저 사람들이 나에게 그런 옷을 입혔을 뿐이죠. 내 노래 중에 ‘아침이슬’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소박한 사람들의 삶이나 사랑에 대한 노래들도 많아요. 하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금지곡이었죠. 민주주의를 그리워하는 노래라는 게 이유였어요.(웃음)”
시련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양희은에게 시련은 그뿐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찾아온 두 번의 암은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할 만큼 커다란 충격을 주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그것을 시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그녀는 암 치료를 권하는 의사의 충고를 거절하고 혼자의 힘으로 극복해냈다.
“암수술을 집행한 의사에게 ‘수술이 잘 됐다며? 자신 있다며? 수술자리가 깨끗하다며? 그러니까 나는 항암치료를 받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죠. 암에 대한 사전지식도 없었고, 이렇게 저렇게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던 것뿐인데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게 되어버렸어요. 근데 그렇게 극복하니까 여기저기서 ‘투병기를 쓰자’는 전화가 쇄도했죠.”
그래도 그녀는 당시 두 번의 수술을 해준 의사 선생님을 은인으로 생각한다. 그 의사선생님이 신중하게 수술을 해준 결과, 지금처럼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자궁부위는 목소리하고 연관이 있는데, 아직까지 그 의사선생님 덕분에 노래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투병생활을 하면서 하나 깨달은 게 있어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구분되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나를 위로해준다고 찾아와서 자신이 암에 걸리지 않은 것을 행복해하는 그런 눈물을 보였어요. 위로하는 입장을 즐기면서 ‘당장 내일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게 느껴졌어요.
또 실제로 그런 사람도 있었고요.”
그때 그녀는 많은 사람들을 붙잡고 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속내를 알아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친한 몇 사람을 제외하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자제했다.
“요즘도 일이 없으면 곧장 집으로 들어가요. 돈 버는 일이나 그것에 연관된 일이 아니면 바깥출입을 하지 않아요. 겉 친구 많을 필요 없어요. 속 친구 하나만 있으면 돼요. 내 창자가 쏟아질 때 손으로 받아주는 친구! 너무 비약이 심했나요?(웃음)”
그렇게 집으로 곧장 향하는 양희은의 취미는 무엇일까? 그녀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조조영화 보기, 걷기, 사우나하기.
하지만 지난해 겨울 어머니가 아프고 난 다음부터는 걷기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요즘은 다 귀찮아졌어요. 예전에는 음식 만들고 운동하는 걸 꽤 즐겼는데 요즘은 운동 대신 사우나에 다니고, 음식도 잘 안 해먹어요. 기운도 예전같지 않고요. 그리고 이상하게 운동을 좀 하면 불면증이 생기더라고요.”
세월 탓인지 점점 기력이 딸린다는 양희은. 하지만 일에 대한 욕심과 도전정신은 여느 젊은이 못지않았다. 그리고 공연문화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가수들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그녀가 한창 활동하던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무대가 많았다. 그래서 따로 노래 연습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매일 무대에서 노래를 했기 때문에 실전이 연습이고, 연습이 실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괜찮아요. 그렇게 적응하며 사는 거죠. 그래서 내가 자발적으로 공연을 하잖아요? 누가 어떤 무대를 만들어주느냐가 뭐가 중요해요? 팬들이 나를 보고 싶어하고, 내가 팬들을 보고 싶을 때 공연을 하면 되니까요.(웃음)”

서른둘 최강희 나를 찾아 떠나는 아이슬란드 旅行記


개그우먼 김숙은 최강희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기억한다.“어떤 애가 은이 언니랑 같이 왔는데, (걔 탤런트잖아) 펑크 난 티셔츠를 입고 있는 거야. 그리곤 낯을 가리면서 앉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웃겨) 우리 집에 3일이나 있었어. 지네 집에 안 가고. 그래서 내가 그때 ‘강자(최강희의 애칭)야, 너 일 좀 해’ 그랬지.” 또 다른 ‘절친’ 송은이의 이야기는 더 가관이다.
“강자, 이거 웃기는 애야, 얌전하게 생겨서는. 난 솔직히 얘 완전 ‘똘아이’인 줄 알았어.”
최강희에 대한 첫인상은 대개 이와 비슷하다. ‘4차원’이라는 단어는 이런 모습 속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첫인상일 뿐이다. 4차원 넘어 그곳엔 말간 자연인 최강희가 있다.

달에 갈 수 없어, 나는 아이슬란드로 간다
대중의 관심이 커지고, 그녀를 설명하는 수식어가 늘어나면서 최강희는 스스로도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연기를 통해 타인의 감성을 이해하고 상상하는 능력이 생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작 자신을 알 수 없었다. 결국 자신의 감정이 내 것인지 아닌지조차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저를 알고 싶었어요. ‘나는 어떤 사람일까. 서른두 살, 지금 나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그래서 한 번은 일기장을 펴놓고 글을 적으려 했지만 한 글자도 적을 수 없었어요. ‘나’란 무엇도 없는 느낌이었죠. 그립고 외로웠지만 그리움에는 대상이 없었고, 울고 싶었지만 눈물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어요.”
그때 가수 김C는 그녀에게 시규어 로스의 ‘헤이마’(‘집으로’라는 뜻)란 DVD를 건넸다. “네가 좋아할 것”이라면서. 시규어 로스는 아이슬란드를 대표하는 밴드로, 월드 투어를 마치고 고국에서 무료 투어를 한 뒤, 이 공연을 ‘헤이마’라는 DVD로 남겼다.
“DVD에 담긴 아이슬란드라는 나라와 음악은 정말 신비로웠어요. 뭔가 마음 둘 거리가 없었던 제게 당시 그것은 충격이었고, 김C의 말대로 그것에 빠져들었죠. 매일 아침, 그리고 저녁, 심지어 잠이 드는 순간까지 마치 종교의식처럼 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아이슬란드에 꼭 가보고 싶어졌죠.”
아이슬란드로 가고 싶다는 그녀의 소망은 마침내 이루어졌다. ‘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이라는 책을 준비하면서 책에 실릴 사진이 필요했고, 그 사진을 아이슬란드에서 작업하게 되었던 것.
“8월 초, 영화 ‘애자’ 촬영이 끝나고 아이슬란드에 다녀왔어요. 오래 머무르지는 못했어요. 아이슬란드 물가는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비싸거든요. 그래서 적은 인원으로 짧게 다녀와야 했죠. 아이슬란드는 전체 면적이 남한 정도 크기지만 인구는 30만 명에 불과해요. 어딜 가나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분위기는) 우울했고, 국민들은 예술가 같았어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좋은 컷을 얻기 위해 아이슬란드 전역을 돌면서 촬영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이슬란드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인간은 달에 갈 수 없어, 나는 아이슬란드에 간다.’
“달나라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이슬란드는 다른 행성 같기도 하고, 지구 본연의 모습 같기도 했어요. 암스트롱이나 예비 우주인들은 달에 가기 전 지형 충격을 대비하고 익히기 위해 아이슬란드를 찾는다고 해요. 그만큼 외계 지형과 같은 느낌이에요.” 최강희가 머물렀던 때는 마침 백야 기간이었다. 해는 새벽 1시에 져서 3시면 이내 떠올랐다. 그래서 아이슬란드는 더욱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인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가 원했던 분위기는 바로 그것이었다.

대단함을 꿈꾸는 사소함, 난 그게 좋고 편해
아이슬란드에 다녀온 기록은 고스란히 최강희의 ‘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에 담겼다. 아이슬란드의 이국적인 풍경과 최강희의 나른한 모습은 감각적인 글과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집 같다.
“글과 사진이 함께 있는 책이에요. 잘 쓰지는 못하지만, 글 쓰는 걸 좋아해서 생각이 날 때마다 단상으로 기록했고, 미니홈피에 올렸죠.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래도 언젠가 책으로 내고 싶었고, 동시에 부족하다고 생각해왔죠. 그런데 요즘 많은 연예인들이 책을 내는 것을 보고 용기가 생겼어요. 그분들의 책을 쉽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먼저 질러주시니까’ 용기를 내게 된 거예요.”
최강희는 오래전부터 미니홈피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했다. 자신의 생각을 올리고, 그 글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댓글을 통해 반응을 주고받는 것. 최강희는 이런 감정의 교류를 사랑한다.
“제 미니홈피에는 ‘내가 1빠’와 같은 장난스러운 댓글이 아니라, 각자의 감정을 나누는 댓글이 달려요. 사람들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설렘이나 외로움 등이죠. 차가운 컴퓨터를 통한 소통이지만, 그 안에 누군가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 때도 있고, 교감을 나누면서 짜릿한 기분도 들었어요. 이런 기분을 책을 통해서도 나누고 싶었어요.”
책 제목인 ‘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은 자연인 최강희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키워드인 듯싶다.
“저는 자신을 사소한 아이라고 생각하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항상 대단한 쪽을 꿈꾸는 사소한 쪽이라고 할까요? 그쪽이 편하고 그게 좋아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사소한 아이’로 결론이 난 것일까? 딱히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수식어 사이에 숨겨진 최강희의 모습은 이 책 안에 담겨 있고, 그것이 그녀가 찾은 답일 것이다.
“4차원, 동안, 패션, 환경 등이 여러분들께서 부각시켜주신 점이라면, 그 나머지의 제가 이 책 속에 있어요. 조금은 궁상맞고, 우울한 것을 즐기며 행복을 꿈꾸는 제 모습요. 제가 쓴 책이니까 제 이야기가 들어가잖아요. 상상으로든, 실제 제 이야기든, 제 기준이나 마음이 이 책에 많이 비춰졌어요.”
글과 사진만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초판을 구매하는 독자에 한해 주어질 부록 DVD도 만들었다. DVD에는 뮤직 비디오가 담겨 있는데, 아이슬란드에서 담아온 영상에 그녀가 직접 부른 노래를 입혔다.
“직접 노래를 부르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무래도 제 책이니까 직접 참여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노래까지 하게 되었죠. 뮤직 비디오는 ‘최강희의 여섯 가지 중독’을 만든 PD와 작업을 했는데 편집 과정에서 제가 참견을 많이 했어요. 하루에 잠을 두 시간씩밖에 안 자면서 진짜 열심히 만들었어요.”

기부, 나눔을 통해 얻는 또 하나의 행복
올해 하반기는 최강희에게 잊지 못할 시간으로 기억될 듯하다. 영화 ‘애자’는 관객을 200만 명 가까이 동원했고, ‘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은 출간 전부터 화제를 모으더니 출간 10일 만에 3만5천 부가 판매됐다. 현재 5쇄 인쇄에 들어갔으며, 초반 인쇄 분량의 두 배인 2만 부로 1쇄당 부수를 늘린 상태다. ‘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의 성공은 단순한 성공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최강희가 인세 전액을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책의 인세는 미혼모를 돕는 단체와 환경단체에 반반씩 기증하기로 했어요. 책을 통해 번 돈은 별로 가질 생각도 없었고, (책이) 제 영역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인세를 두 단체에 나눠 기부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한 단체를 지원함으로써 또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환경단체에 기부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환경녀’로 비춰지는 것이 부담스럽더라고요. 물론 저는 종이컵을 안 쓰고 있지만, 환경에 대한 일을 한다면 갑자기 제가 그 분야에서 무언가가 된 것처럼 보일 수 있거든요. 마침 미혼모는 예전부터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두 단체에 나눠서 기부하게 된 거예요.”
우연히도 책의 발매 시기가 최강희의 소속사 대표이기도 한 배용준의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의 그것과 겹치게 되었다. 같은 분야의 책은 아니지만 선의의 경쟁을 벌이게 된 셈. 배용준이 선배이자 대표로서 책에 대해 조언을 했을 법도 하지만, 그녀는 그를 제대로 만나본 적도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계약할 때 ‘욘사마’와 2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눈 것 이외에 만난 적이 없어요. 그나마 계약도 거의 끝나가네요. 그분 책을 보니 나라에서 해야 하는 일을 그분이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위해 역사나 전통, 문화유산에 대해 공부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도 책을 만들 때 일일이 다 간섭을 했는데, 뭔가 스스로 해내려고 하는 점에서는 그분과 잘 통할 것 같은 기분도 드네요.”
이 책에 담겨진 여행, 친구, 사랑에 대한 단상들, 그것들을 한마디로 정의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역시 그녀다운 대답이 돌아온다. “여행은 그 나라의 향기를 살짝 입고 오는 거예요. 공항에 들어서면 외국 여행 냄새가 느껴지거든요. 친구란 팔 한쪽이에요. 사랑은…. 아직 모르겠네요.”
최강희에게 요즘 행복한 일이 생겼다. 바로 자신의 작업실을 갖게 된 것. 그런데 이 역시 소소하다. 친구 작업실의 한쪽을 매달 15만 원의 사용료를 주고 사용하는 것이다. 소소한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최강희, 그런 그녀를 ‘사소한 아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미소년에서 진짜 남자로 고수, 4년 만에 컴백 인터뷰


고수는 지난해 12월 2일 첫 전파를 탄 SBS 수목드라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에서 술집 작부인 어머니를 따라 떠돌이생활을 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명석한 두뇌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패기로 똘똘 뭉친 당찬 차강진 역을 맡았다. 이 드라마는 차강진이 고등학교 때 첫 사랑인 한지완(한예슬)과 뜻하지 않게 헤어진 뒤, 8년 만에 우연히 만나면서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드라마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이후 4년 만의 브라운관 복귀작이다. 군복무 기간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긴 공백이다. 그동안 미디어 환경과 시청자들의 트렌드도 달라졌다. 이 때문에 방송 복귀가 두렵기도 했단다. 고수는 신인의 자세로 촬영에 임하면서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시청률보다는 좋은 작품에 올인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서는 느낌이 좋아요. 솔직히 대작인 <아이리스>와 같은 시간대에 방영되어서 시청률이 높지는 않지만, 훌륭한 작품에 출연하고 있어서 뿌듯해요. 시청률 부담에서 벗어나 ‘좋은 작품’에 출연했다는 기쁨이 커요. 공백기간이 길었던 거요? 쉬는 동안 꽃미남 스타들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제가 특별히 뒤처진다는 느낌은 없어요.”
이번 드라마는 <미안하다, 사랑한다>와 <이 죽일 놈의 사랑>의 이경희 작가가 극본을 썼고, <발리에서 생긴 일>의 최문석 PD가 연출을 맡았다. 그가 이번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이경희 작가의 적극적인 추천 때문이었다.
“저를 추천해주신 작가님의 마음이 감사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연기에 몰입하고 있어요. 지난 해 9월에 대본을 처음 봤는데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는 표현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용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이번 작품은 연기자로서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남아 있는 장면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그는 특히 이 작가의 대본을 보면 볼수록 새롭고, 지문 하나도 놓칠 수 없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랑에 대한 슬픔도 직설적인 표현 대신 은유적으로 표현한다는 것.
“제가 역을 맡은 강진은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마음의 문이 닫힌 인물로, 감정표현은 서툴지만 마음은 따뜻한 사람이에요. 또 제 성격과 달리 차갑고 이성적인 캐릭터라서 강진을 이해하고 분석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저는 내성적이긴 하지만 긍정적이고 밝은 편이거든요.”
그는 건축가인 강진을 완벽히 소화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드라마 촬영이 시작되기 전부터 건축 공부와 스케치 레슨을 따로 받았고, 서점에 가서 건축과 관련된 책들을 하루 종일 보았다. 덕분에 책 속에 있던 도면과 수치들이 많이 친근해졌다.
“지금까지 맡은 역할이 다 진지해 보이는 캐릭터였어요. <요조숙녀>를 통해 가벼운 역할도 하긴 했지만, ‘고수’라는 배우를 떠올리면 진지한 이미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번에도 진지한 역할이라 걱정이지만 캐릭터에 대한 표현이 다른 만큼 또 다른 매력을 볼 수 있을 거예요.”
군 입대 전에 출연한 드라마 <그린로즈>와 영화 <백야행>에서 모두 운명의 굴레 속에서 비극적인 사랑을 연기했지만, 이번에는 남녀 주인공이 서로 사랑하는 가슴 따뜻한 멜로 연기를 하고 있다.
연극은 짜릿한 경험
“극중에서는 지완(한예슬)을 사랑했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만나 새로운 러브스토리가 전개됩니다. 하지만 강진은 사랑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실제 그의 성격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자식아, 이 새끼야’라는 거친 표현을 쓰는 익살스러운 구석이 있다고 한다. 물론 여자친구에게 그런 거친 표현은 쓰지 않지만. 그렇다면 그의 실제 연애관과 이상형은 어떨까?
“연애할 땐 헌신적인 편이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쁜 남자의 모습을 보이기도 해요. 여자친구와 함께 있을 때는 최선을 다해서 잘해주려고 노력하지만 일할 때는 일에 집중하느라 소홀해지는 부분이 있어서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그럴 때가 가장 안타까워요. 이상형은 딱히 없는데, 첫인상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보통 첫눈에 반하는 경우가 많고, 상대가 마음에 들어오면 용감하게 대시를 하기도 합니다.”
그는 김희선, 김하늘, 김민희, 이다해, 박정아, 김현주 등 하나같이 큰 인기를 누리는 여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했다. 그리고 제대 후에도 영화 <백야행>에서는 손예진, 이번 드라마에서는 한예슬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대단한 여복을 타고 났다고 주변 남자배우들에게 시기 아닌 시기를 받는다고 한다.
“가만히 열거해보니 상대 여배우들이 정말 대단했네요. 그땐 역할만 생각하느라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그래서 사적으로 친구가 된 여배우가 없었어요. 지금 생각하니까 무척 후회가 되네요. 어떤 경우는 촬영이 끝난 뒤에도 제작팀과 연락을 하고 지내다 자연스럽게 상대 배우들과도 꾸준히 얼굴을 보기도 했죠. 하지만 그런 기회를 잘 살리지 못했어요. 전화번호조차 없어요.”


변화를 겪고 나니 삶이 달라졌다

그는 군을 제대한 이후 첫 번째 무대로 항상 동경해오던 연극을 택했다. 공익근무를 하고 있을 때도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는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다. 그리고 군 제대 후 드라마 <피아노>에 함께 출연했던 조재현의 추천으로 연극무대에 서게 됐다.
“사실 출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캐스팅 기사가 보도됐죠.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열심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어요. 사실 무척 힘들긴 했지만, 엄청난 쾌감이 있더라고요. 연극은 반응이 즉각적으로 오잖아요. 바로 앞에 앉은 관객들의 숨소리, 웃음소리가 들려오는데, 짜릿한 무언가가 솟구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배우들이 연극무대를 선택하는구나, 하고 알게 됐어요.”
그는 연극 <돌아온 엄사장>에 출연하면서 마치 극단의 단원이라도 된 듯 연습실을 드나들며 청소 등 잡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극단 사람들이 그의 소탈한 성격에 모두 놀랄 정도였다. 그는 연극을 통해 연기 외에도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배웠다.
“연극을 하면서 그간 제 연기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매일 느꼈어요. 연극은 TV 드라마나 영화와는 달리 발성법이나 표정 같은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어요. TV 드라마는 카메라가 해결해주는 부분이 많지만 연극은 배우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거든요.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고,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다면 무대에 계속 설 생각이에요.”
이렇듯 그는 그간 많은 변화를 겪었다. 특히 2년간의 군 복무기간 동안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다. 모든 것을 혼자 해내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됐다.
“늘 주변에 저를 도와주는 분들이 있었고, 또 많은 팬들의 따뜻한 시선을 받다가 갑자기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니 처음엔 모든 게 혼란스러웠어요. 점차 군 생활에 적응하다보니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더라고요. 결국 그게 제 삶이나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까지 변화시켰어요.”
첫 번째 변화는 연예계의 대표적인 의리파로 불릴 만큼 오랜 시간 함께 일해온 매니저와 결별을 선택했다. 온실의 화초가 되어간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어떻게든 혼자서 세상을 헤쳐나가고 싶었다.
“어느 순간 관리받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어딘가 갇혀 있는 느낌이 싫었어요. 친형처럼 저를 돌봐주던 매니저와 결별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주변의 살뜰한 보살핌보다는 세상에 나를 던지고 어떻게든 혼자 버텨보고 싶었어요.”
당시에는 감당하기 힘든 결정이었지만, 그는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해냈다. 그렇게 스스로 선택하고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접 부딪히면서 사물을 판단할 수 있게 되는 잣대를 마련한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고수는 배우들 사이에서도 말수가 적고 과묵한 스타일로 꼽힌다. 한 번 작품에 들어가면 무섭게 몰입한다. 그는 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것을 신경 쓸 여력이 되지 못한다며 겸손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욕심이 많고 열정이 넘치는 연기자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낸 매니저와 결별하고, 제대 후 첫 무대를 연극으로 택하고, 영화 <백야행>에서 잔인한 살인마 역을 맡게 된 것 모두 더 큰 배우가 되기 위해서 스스로 자청한 변화였다. 그는 지금 좀 더 큰 배우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틀을 깨부수고 있다.    

단아함으로 빛나다 한 혜 진

“한복과 잘 어울린다는 소리가 기분 좋은,
내 나이 스물아홉”


폭설에 이어 추운 날씨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었다. SBS 드라마 <제중원> 촬영에 한창인 한혜진을 만나기 위해 경북 문경으로 떠날 준비를 하던 참이었다. 문자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기자님, 날씨가 많이 추워요. 따뜻하게 입고 오시는 거죠?” 한혜진의 매니저였다. 차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접어들 때쯤 또 한 통의 메시지가 왔다. “점심은 먹고 오시는 건가요?”
<제중원> 촬영은 문경새재도립공원 내에 위치한 드라마 세트장에서 있었다. 도립공원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맑은 날씨임에도 바람을 따라 간간히 눈발이 날리곤 했다. 하늘이 아닌 산으로부터 날아오는 눈이었다. 스태프의 도움을 받아 한혜진을 찾았다. “석란아! 누가 찾아오셨네.” 임시로 만들어놓은 대기실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한혜진과 그곳까지 오는 내내 따뜻한 메시지를 보내주었던 매니저였다.
“멀리까지 오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추우시죠?”
대기실에 있었는데도 한혜진의 두 볼은 빨갰다. 한복은 얇디얇아 보였다. 새벽부터 내내 야외촬영이 이어졌으니 정작 추위와 피곤에 지친 사람은 본인이었을 터. 그럼에도 미안한 눈으로 기자를 걱정했다. 그녀를 만나본 팬이나 기자들이 한결같이 “한혜진은 연예인 같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인 듯했다.
동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배우
기자의 눈을 먼저 사로잡은 건 화려한 의상이었다. 한혜진은 한복이 정말 잘 어울렸다. 우아한 목선과 앞가르마를 타 길게 땋은 머리, 단아한 걸음걸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복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제중원>의 시대적 배경이 구한말이라 전통적인 한복이 아닌, 개화기 때의 한복으로 색깔이나 무늬가 과감하고 화려했다. 이날 한혜진은 다섯 벌의 한복을 갈아입으면서 촬영에 임했다. 그녀가 맡은 ‘석란’은 역관의 딸로서 서양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신여성이자 한국의 첫 양의(洋醫)다. 이 역할을 표현해내는 데 의상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한혜진은 한복의 아름다움에 만족스러워하면서도, 불편함은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와이어가 부착된 속치마를 겹겹이 입어야 해서 화장실 갈 때 무척 불편해요. 화장실 갈 때마다 오래 있으니까 사람들이 오해하시더라고요.(웃음) 추운 것도 단점이에요. 안에 잔뜩 껴입고 있는데도 한복을 입었다는 생각만으로도 왠지 춥거든요.”
한혜진은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바로 패딩 점퍼를 걸치고, 핫팩을 넣은 장갑을 끼고, 고무신을 부츠로 갈아 신었다. 하의는 여러 벌 겹쳐 입을 수 있지만 상의는 다르다. 개화기 때 한복이라 소매 폭이 유난히 좁아 내복을 입기도 힘들다.
“야외촬영이 많아서 어려워요. 그래도 함께 촬영하며 드라마를 전개해나가는 게 즐겁죠. 대본이 정말 재미있기 때문에 촬영을 하면서도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어요. 즐겁게 촬영하는 만큼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녀는 추운 날씨 속에서 지치기는커녕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함께 연기하는 배우 박용우, 연정훈과 허물없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겁게 촬영하고 있었다. 몇 시간씩 야외촬영을 하느라 입이 얼어 NG가 나는 상황도 이들에게는 즐겁게 느껴지는 듯했다. 제작발표회 때마다 으레 나오는 “촬영현장 분위기가 좋아서 피곤한 줄 모르겠어요”라는 말이 진심이었구나 싶을 정도였다.
“제가 맡은 ‘석란’은 이 시대 일반 여성과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요. 말투나 행동에서 남들보다 앞서려고 하죠. 남자와 어울리기 힘든 시대임에도, 처음 알게 된 남성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서는 성향도 있고요. 석란처럼 저도 함께 연기하는 박용우 씨나 연정훈 씨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서려고 해요. 그런 노력들이 연기할 때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떼루아> 실패 이후,
오히려 편안해졌다

한혜진을 이야기하자면 <주몽>을 빼놓을 수 없다. <주몽>은 그녀를 예쁜 연기자에서 연기 잘하는 배우로 만들어준 작품이다. 그러나 ‘소서노’의 이미지가 너무 컸던 것일까. 또다시 사극을 택하기까지는 긴 망설임의 시간이 있었다.
“제가 정말 두려워하고 못한다고 생각하는 장르가 사극이에요. <주몽>에서의 이미지가 너무 컸기 때문에, 사극 제안이 있을 때마다 망설여왔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떼루아>의 실패를 경험하고 나니 피하지 말고 부딪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떼루아>는 그녀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그 이전까지의 드라마는 모두 시청률 면에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오히려 성공만 거듭해온 상황이 그녀를 더욱 부담스럽게 했던 것 같다. 드라마를 선택하기에 앞서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따라다녔다. <주몽> 이후 1년 반 정도를 쉬면서 좋은 작품을 흘려보낸 것도 이 때문이었다. <떼루아>의 실패  이후 그녀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이 작품을 만났을 때, 부딪쳐서 넘어서보자는 도전의식이 마구 솟아났어요. 다시 사극에 도전해보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였죠. 홍창욱 감독은 제게 ‘한혜진 씨 외에는 다른 사람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거짓말이라도 그 말을 믿고 싶었죠. 사극이 제일 자신 없는 분야이기 때문에 두렵기도 하지만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촬영하고 있어요."
<제중원>의 시청률은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일단 ‘석란’의 도전은 성공이다. 한혜진 특유의 건강한 이미지는 쾌활하고 호기심 많은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
“서양 사상에 일찍 눈을 뜬 여성이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주몽>보다는 시대가 많이 올라와서 편해요. 사극 말투도 거의 안 써요. 개화기 시대 신여성 역할이라 사극이라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조금은 자유롭게 연기하려고 하죠.”
신여성, 그중에서 ‘의사’는 꽤 매력적인 캐릭터다.
“원래 전문직 여성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의사 역은 처음이라 걱정도 됐죠. 어릴 적 천식을 앓아 병원에 들락거렸던 적이 있는데, 당시 만났던 의사에 대한 나름의 동경도  있었어요. 의사 역할을 제대로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석란 캐릭터가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 같아요.”

나얼과 결혼? 지금 이대로가 좋고 편해오후 4시가 되자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내내 반사판을 들고 있던 스태프들은 길게 전선을 드리워 조명을 준비했다. 한혜진은 네 벌째 한복을 갈아입었다. 이날 촬영도 늦게까지 이어질 것이다.
피곤한 가운데에도 그녀는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 상대 배우 클로즈업이라 목소리와 어깨만 살짝 나오는 데도 힘을 빼는 법이 없다.
“감독님은 한 번 찍으면 대부분 오케이를 하시거든요.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지 잘못하면 어느새 카메라를 옮기고 있어요. 드라마는 순발력이 중요해요. 또 그런 면에서 매력이 있는 것 같고요.”
한혜진의 2010년은 뜻 깊게 기억될 듯하다. 그녀는 1월초 드라마 <제중원>과 영화 <용서는 없다>로 동시에 팬들을 만났다. 주연을 맡은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왜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지 않았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아직도 나에게 과분한 자리라고 생각돼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연기자들이 작품의 기회가 없어서 쉬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와 영화를 동시에 할 수 있으니 감사하네요.”
한혜진은 5년째 나얼과 공개 연애 중이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했던 “결혼하려고 연애하는 것 아닌가요?”라는 말이 “결혼하고 싶다”로 바뀌면서 결혼설의 주인공이 된 적이 있다.
“주변에서 ‘너무 오래 연애하면 힘들다, 결혼하라’고 많이 말씀하세요. 그런데 저희는 지금 상태로도 아주 좋고 편해요. 또 제가 열심히 일해왔던 것처럼 남자친구도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열어주고 싶네요.”
기자는 한혜진에게 초콜릿을 선물했다. 다양한 종류의 초콜릿이 낱개 포장되어 있는 버라이어티 팩이었다. 그녀는 초콜릿 박스를 들고 스태프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기자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나눠 먹어도 되죠?” 초콜릿은 스태프들에게 하나씩 돌아갔다. 내심 한혜진 혼자 먹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그 모습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 해가 떨어지고 쌀쌀해진 촬영장에 다시 온기가 돌았다.

배우 이미연, 나는 오후 1시를 지나고 있는 중이다

배우로서의 삶을 하루라고 본다면, 그녀는 지금 몇 시를 지나고 있을까? 골똘히 생각하던 이미연의 답은 ‘오후 1시’ 였다. 막 식사를 마친 포만감과 하루의 절반쯤 왔다는 안도감, 아침 동안 찌뿌드드했던 몸이 비로소 제 리듬을 찾는 시간이다. 1987년 열일곱에 데뷔해 23년을 달려온 여배우의 삶이 ‘이제야 조금은 편안해졌다’고 했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자’고 되뇔 정도다. 시청률이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시청률은 하늘이 내리는 거니까, 그저 하늘이 만덕의 편이길 바란다’며 해사하게 웃을 수 있을 정도이기도 하다. 배우 이미연이 <거상 김만덕>의 타이틀롤로 TV에 복귀했다. <명성황후> 이후 사극은 9년 만이고, 드라마로는 <사랑에 미치다> 이후 3년 만이다.

휴식休息

지난 3년이 휴식기만은 아니었다. ‘벌써 3년이나 됐나요? 정말 그렇게 됐네요’라며 새삼스레 놀란 건 쉬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배우였기 때문이다. 매번 다시 대중 앞에 설 때마다 ‘대중과 언론의 기대는 10배, 15배, 20배로 늘어난다’는 걸 그녀는 알았다. 그 기대치를 따라잡으려면 늘 숨이 턱에 차도록 뛰어야 했다. 작품과 작품 사이의 시간을 으레 공백기라고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공백이 없었다. 들어오는 시나리오와 대본을 꼼꼼히 살펴보고, 기존의 작품과 비교해보고, 연출자를 만나 의견을 조율했다. 그녀의 말을 빌자면 ‘마음으로 선택하게 되는 작품’을 만날 때까지 예의 작업은 계속됐다. 그리고 숙고 끝에 작품에 들어가면 선택에 대한 책임감, 기대치에 대한 의식 때문에 스스로를 더욱 채찍질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촬영장에는 늘 제시간에 도착해야 했고, 자신의 컨디션과는 상관없이 늘 완벽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다.
“지금 생각하면 뭘 그렇게까지 다 지키려고 했나 싶어요. 사람이 살다 보면 늦을 수도 있고 잘 못할 수도 있고 그런 건데…. 이제는 좀 여유를 가져보려고 해요. ‘괜찮아.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열심히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열심히 하면서도 좀 편안하게 하고 싶어요.” 
다시 사극을 한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나는 조선의 국모”라고 외치며 장렬히 최후를 맞이했던 <명성황후>의 그림자가 아직도 그녀에게 남아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최근 드라마 정국은 가히 사극의 춘추전국시대다. <선덕여왕>에 이은 <추노>의 선전. <제중원>과 <명가>가 그 뒤를 잇고 있고, <거상 김만덕>과 같은 시기에 천민 출신 여성의 성공기를 담은 <동이>도 방영된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번 작품을 선택했다. 사극이냐 아니냐보다, 어떤 배역인가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김만덕’이 또 카리스마를 요구하는 인물이었다면 저는 하지 않았을 거예요. 오히려 제약이 많은 인물이었죠. 제주 사람, 천민, 여자…. 그런데 그 장벽들을 하나씩 극복해 가잖아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거죠. 그게 좋았어요. 씩씩하고 희망적인 인물이라는 게.”
실제로 그녀는 자신이 맡은 인물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몰입이란 실제 그 인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기도 한다고 했다.
“‘나는 만덕이야. 와, 나랑 똑같다.’ 이렇게 주문을 외워요. 4개월 동안은 그냥 만덕이가 돼서 사는 거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고, 많이 웃기도 하고 그래요. 요즘은.”

배우俳優
김만덕의 아역을 맡은 심은경(16) 양을 이미연은 각별하게 바라본다. 그녀는 ‘내가 긴장해야 할 만큼 배역을 흡수하는 게 빠르다’ 고 했다. 어린 만덕이는 졸지에 고아가 되어 ‘할매’(고두심) 밑에서 일을 배우며 자란다. 자신에게 배분된 쌀을 몰래 장에 나가 팔기도 하고, 관아에 쫓기는 신세가 되기도 하고, 물에 빠지기도 하는 등 곡절이 많은 역할이다. 포스터 촬영을 위해 어린 만덕(심은경)과 어른이 된 만덕(이미연)이 장터에서 해후하는 장면을 찍을 때였다. 사진기사는 장사치로서 서로를 꼿꼿이 바라보기를 원했지만, 이미연은 어린 만덕을 애틋하게 바라보기를 원했다. 숱한 어려움에도 꿋꿋이 추위를 이겨내는 어린 만덕이 가엾고 자랑스러웠다. 그게 만덕의 마음이리라 믿었다. 결국 콘셉트는 바뀌었고 포스터가 완성되었을 때 스태프들은 그녀의 느낌이 옳았음을 알았다.
제주도에서 열린 <거상 김만덕> 제작발표회에서 그녀는 중간 중간 함께 출연하는 배우 고두심과 귀엣말을 나누었다. 평소 존경하던 선배이기도 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연기 안팎으로 그녀의 정신적 지주다. ‘이 역할은 네가 꼭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선배의 말에 결심을 굳혔을 정도다. 두 배우는 무슨 말을 나누는 걸까?
“실은 제가 낯을 좀 가리는 편이에요. 안 그래 보이겠지만.(웃음) 그래서 여전히 사람 많은 곳에 오면 떨리고 그럽니다. 이번 작품은 특히 선생님이 저보다 훨씬 깊이 알고 계시니까 제가 많이 의지하는 편이죠.” (고두심은 제주 출신 배우로, 1976년 <정화>라는 작품에서 김만덕 역을 맡았다.)  
그러고 보니 인터뷰 내내 그녀의 대답은 시종일관 간결했다. 그렇다고 성의 없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질문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면서, 때로는 눈썹을 찡긋하기도,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며 경청했다. 숱한 경험으로 말을 하다 보면 으레 장황해지거나 오도되기 쉬운 인터뷰의 속성을 간파했을 그녀의 말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제주도에 온 건 여러 차례 되지만 그녀는 ‘제주도가 좋다’고 했다. 쉬는 동안 내려와서 홀로  때로는 가족과 함께 ‘올레길’을 걷기도 했다며 그것이 상투적인 말이 아님을 증명했다.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올레에 보면 이렇게 리본이 묶여 있거든요. 그런데 어떤 길은 가다 보면 이게 길인가 싶을 정도로 길이 외지기도 해요. 뱀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아직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죠.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해본 일이 없는데, 최근에는 처음으로 ‘나중에 이런 데 내려와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아직 싸움이 남아 있다. 얼마 전 <선덕여왕>의 미실 역으로 사극 데뷔를 훌륭하게 해낸 절친 고현정의 후광과의 싸움도 아니고, 극중에서 동문객주 만덕의 라이벌 역으로 분한 서문객주 박솔미와의 대결도 아니다.
“배우에게는 다른 누가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중요해요. 누구를 보고 경쟁의식을 갖는다거나 자극을 받는 건 스스로에게 좋지 않죠. 현정이는 저하고 동국대 연극영화과 동기동창생(90학번)입니다. <선덕여왕> 전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잘 해내서 저도 기뻐요. 박솔미 씨는 같은 여자가 봐도 몸매가 너무 예쁘고(웃음). 여배우로서는 최근의 ‘여자 사극 열풍’이 경쟁할 일이라기보단 반가운 일이죠.”

김만덕1739~1812
조선시대 여자 상인으로 제주도에 대기근이 닥치자 전 재산을 풀어 육지에서 사온 쌀을 모두 구휼미로 기부하여 기아 상태의 제주도 민중을 구제했다. 이 때문에 제주에서는 ‘의녀’(義女)로 불린다. 전 재산을 풀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김만덕은 ‘관의 허락 없이 제주도민은 섬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규칙을 깨고 한양에서 정조임금을 알현하고 내의원 의녀반수 벼슬을 받기도 했다.
-출처 <세상을 빛낸 위대한 여성, 김만덕>

욕심慾心
그녀에게는 욕심이 있다. 마흔에도 더욱 빛나는 외모를 보면 그녀가 얼마나 자기관리에 철저한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큰 욕심은 사람들이 여배우를 볼 때 ‘주름이 얼마나 늘었는가가 아닌, 눈빛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봐주길 바란다는 거다. 10대에는 하이틴 스타로, 20대에는 스타 커플에서 돌아온 솔로로, 30대에는 영화와 드라마의 원톱으로 불렸던 그녀에게 단 하나 변하지 않는 이름은 ‘여배우’였다. 그녀는 캐릭터의 힘이나 상대 배우의 상승세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만으로 작품 전체를 이끌어가는 몇 안 되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렇게 23년을 쉼 없이 달려왔음에도 그녀의 시계는 이제 막 오후 1시를 지나고 있다. 점심을 먹고, 차를 한 잔 마시고 잠시 숨을 돌리고 나면 본격적으로 레이스를 즐길 수 있을 시간이다. 더구나 이제 막 연기가 즐거워지려는 참이다. 그녀에게는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배우고 싶은 일도 많다. 올 초에는 네팔로 자원봉사 활동을 다녀왔다. 네팔 소녀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이제 막 4개월의 대장정을 시작한 그녀는 말했다.
“만덕은 사업이 성공한 뒤에 가난한 이들을 도왔는데, 당시 제주도에 기부한 금액이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600억~700억원 정도 된다고 해요.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만덕이 정말 큰 인물이란 생각이 들죠. 작품이 끝나고 나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매번 작품을 통해서 하나씩 배워 나갑니다.” 
<거상 김만덕>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너는 네 욕심을 보았으니 괜찮을 것이다.
세상에는 제 욕심에 눈이 멀어 초심을 잃는 사람이 많다.’
이미연의 욕심은 여배우로서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이 욕심과 초심이 그녀 안에서 공존하는 한, 이 배우의 눈빛은 더욱 깊어갈 것이다.

중년 이후 전성기 맞은 배우 김혜옥

“폭탄 머리는 어떨까요?”
김혜옥은 인터뷰 전날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사진 촬영을 위해 이런 저런 상의를 하다가 헤어스타일 이야기가 나왔을 때였다. “폭탄 머리요?” 기자가 되묻자 “네, 폭탄 머리요!” 평소 그녀의 분위기로 봤을 때 잘 그려지지 않는 스타일. 알고 보니 폭탄 머리는 영화 <육혈포 강도단>에서의 콘셉트다. 2년 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연기에 몰입하면 현실로 돌아오는 시간이 있다”는 그녀의 말이 정말 맞았다. 한참 <며느리 전성시대>에서 표독스런 시어머니로 연기할 때와 달리,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밝다.

대선배와의 작업, 어려웠지만 많은 걸 배웠다

할머니 강도단을 그린 영화 <육혈포 강도단>의 인기가 뜨겁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나문희, 김수미, 김혜옥. 평균 나이 65세, 마파도를 잇는 ‘노익장’ 영화로 화제가 되고 있다. 감독은 처음부터 이 세 배우를 염두하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처음 김혜옥은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받고는 기뻤다. 그간 주로 젊은 배우들의 엄마 역할을 맡다 보니,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역할에 매력을 느꼈던 것. 이 영화에서는 젊은 배우라야 임창정 정도다. 그러나 마냥 좋아하기에는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우선 <솔약국집 아들들>, <두 아내>, <망설이지 마> 등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만 세 편, 불교방송에서 라디오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었다. 도저히 스케줄을 뺄 수 없는 상황. 게다가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은 그녀가 평소 어렵게만 생각했던 대선배들이었다. 김수미는 일곱 살, 나문희는 열일곱 살이나 많다.
“예전에는 선배들 앞에서 고개도 못 들고 다녔어요. 10년만 차이 나도 선생님이거든요. 김수미 선배님은 <전원일기>에 함께 출연하면서 곁에서 보는 것만 해도 공부가 되던 분이었어요. 김수미 선배님은 후배들에게 약간 까칠하세요. 본인도 그걸 아세요. 저도 확 트인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솔직히 이번 작품에 자신이 없었어요. 나문희 선배님은 엄마 같지만, 작품에 한해서는 굉장히 반듯하신 분이시고요.”
그래도 출연을 결정한 것은, 이 영화가 김혜옥에게 시간적인 어려움과 선배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이길 정도로 매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걱정 속에서 대선배들과의 작업이 시작됐다.
“작품을 많이 하다 보면, 웬만한 감정에는 흔들리지 않아요. 그런데 이번 영화를 하면서 많이 울고 많이 웃었어요. 선배들과 연기하면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덕분에 NG를 냈죠. 두 분은 연기가 대단하시거든요. 한수 배웠다고나 할까요? 옆에서 지켜보면서 ‘연기의 경지가 틀리구나’ 느꼈어요.”
김혜옥은 영화 작업 내내 김수미의 애드리브에 뒤로 넘어갈 정도로 웃었고, 나문희의 눈빛만 봐도 눈물이 났다.
“이분들 연기에 괜히 열광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연기가 삶 자체에서 묻어나는 것 같아요. 여러 풍파를 겪으며 살아오셨잖아요. 노력도 많이 하시고요.”
나의 비장의 무기는 ‘노력’
김혜옥은 선배들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보았다. 나이 드는 게 두려움이 아니라 또 다른 희망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선배들과 연기하다 보니 ‘나의 미래도 멋지겠다’고 생각되더라고요. 순간순간 사는 것이 너무 좋아요. 내 앞의 미래는 지나온 과거보다 훨씬 밝다고 생각해요. 나이 드는 것이 두렵지 않아요. 지금의 내가 좋아요.”
김혜옥은 지난 5년 동안 누구보다도 열심히 달렸다. 그녀만큼 많은 작품에 출연한 중년 배우는 없다. 어떤 캐릭터든 천 가지 얼굴로 소화해내 2007년 KBS 연기대상 여자 조연상을 받기도 했다.
“저처럼 재주 없는 배우도 없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거죠.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낼 수 있는 건, 제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가능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게 콤플렉스였어요. 주변에 재능 많고 미모가 출중한 분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분들에 비하면 저는 너무 모자란 거예요. 제 무기는 노력뿐인데, 그 비장의 무기가 진가를 발휘했던 것 같아요.”
자신이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어느 순간 장점이 되었다. 자신을 온전히 비워낼 수 있었기에 다양한 캐릭터를 담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너무 앞만 보고 달린 탓일까? 한동안 슬럼프에도 시달렸고, 체력적인 한계에도 부딪쳤다.
“예전에는 못 느꼈는데, 요즘에는 조금 버겁다 싶어요. 일할 때는 즐거웠는데 가끔은 짜증이 나기도 하고요. 이젠 휴식이 좀 필요한 것 같아요. 한창 바쁠 때는 몰랐는데, 드라마 <망설이지 마>를 끝내고 긴장이 풀어지더니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더라고요. 이젠 내 몸을 위한 시간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요.”

뒤늦게 딸을 인정했던 아버지,
항상 편이 되어주시던 어머니

가족은 늘 김혜옥에게 가장 든든한 지원자다. 특히 이번 영화를 가장 기대했던 가족은 바로 그녀의 어머니였다.
“영화 예고편을 보시고는 엄마가 무척 좋아하셨어요. 평소 드라마도 모니터를 많이 해주셨지만, 그동안 영화는 거의 젊은이들 이야기여서 공감하지 못하셨거든요. 이번 영화는 할머니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더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개봉하면 꼭 보겠다고 하셨죠. 그래도 식구들은 객관적으로 보지 못해요. ‘예쁘다’‘밉다’정도죠. 무조건 내 딸이 잘한다 하시고요.”
김혜옥은 지난 3월에 열렸던 기자 시사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날은 마침 아버지의 49제였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에게만 알렸던 아버지의 죽음은 시사회를 통해 알려졌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건 아니셨어요. 계속 병원에 계셨죠.”
김혜옥은 아버지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쉽게 이야기를 잇지 못했다. 잠시 고인을 생각한 듯 숨을 고르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제가 배우인지도 잘 모르셨어요. 드라마는 잘 안 보셨으니까요. 그러다 병원에 계시면서 딸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거예요. 병원에서는 TV를 많이 보게 되잖아요. 그 덕분에 제가 드라마에 제법 많이 나오는 배우라는 걸 알게 되셨죠. 게다가 딸이 병원에 오면 많은 분들이 좋아하니까 자랑스러워하셨어요.”
아버지는 그녀 덕분에 VIP 대접을 받았다. 든든한 백이 되어주는 딸이 아버지 입장에서 어찌 자랑스럽지 않을까. 그러나 아버지에게 인정받은 기쁨도 잠시, 아버지는 그녀를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젠 어머니 건강도 좋지 못하다. 그리 기대하던 딸의 영화도 아직 보지 못했다.
“엄마는 당뇨를 앓고 계세요. 오래 앉아 있거나 닫힌 공간 속에 앉아 있지 못하죠. 혈액 순환이 안 되거든요. 영화는 극장에서는 못 보고, DVD가 나오면 집에서 보셔야 할 것 같아요. 건강이 안 좋으시니 여행도 못하시고….”
그녀의 얼굴에 잠시 고통스러운 표정이 지나간다. 그러나 이 역시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냥 주어지는 시간은 없다고 해요. 고통이 온다면 그건 삶에서 꼭 필요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행복이 오면 꼭 와야 하는 시간이고요. 나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진리인 것 같아요.”
힘들고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그녀를 지켜준 건 다름 아닌 종교였다. 그녀는 독실한 불교 신자다. 아무리 바빠도 불교방송 진행을 놓지 않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종교는 나의 등불이자 길이에요. 갈 길을 몰라 헤맬 때 길을 찾아주고, 행복하게 사는 지름길을 알려줘요. 헤매고 허우적거리며 살다가 불교를 만난 뒤 나의 심리가 이런 거였구나, 깨닫게 되었어요. 그곳에 진리가 있었죠. 경전 그대로 살기는 힘들지만 많이 도움이 돼요. 제겐 종교가 심리 치료사라고 할까? 카운슬러가 따로 필요 없어요.”
김혜옥은 오래전 남편과 사별했다. “사랑은 안 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매순간 한다”며 웃는다.
“항상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요. 저 남자 좋아해요. 사랑 없이는 못 살아요. 이성이든 동성이든 매 순간 사랑하죠. 결혼요? 사랑하면 결혼도 해야죠. 아직 계획은 없어요. 세상에서 유일하게 위안이 되는 건 사람이이에요. 사람만 좋다면 어떤 고생도 감수할 수 있어요.”
김혜옥은 아이 같은 순수함을 지녔다. 계산에 서툴고 소녀처럼 로맨틱한 사랑을 꿈꾼다. 순수한 사람의 특권일까. 그녀는 행복이나 성공으로 가는 길을 잘 알고 있었다.
“만족하고 즐거운 것, 그게 행복 아닌가요? 사랑하면서 웃으면서, 그렇게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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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캔디에서 조선시대 캔디로 한효주의 새로운‘몰입’


드라마 <동이>는 조선시대 영조 임금의 생모이자 숙종의 후궁이었던 천민 출신 ‘동이’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드라마다. ‘동이’는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무수리 신분에서 내명부 최고의 품계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한효주는 이 드라마에서 노비, 무수리로부터 감찰부 궁녀를 거쳐 조선 19대 왕 숙종의 후궁(숙빈 최씨)에까지 이르는‘동이’역할을 맡았다. 그녀를 스타로 만든 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고은성’이 현대판 캔디라면, <동이>는 조선시대‘캔디’다.  

숙명처럼 다가온 <동이>

“사실 타이틀 롤을 맡았다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처음에는 솔직히 걱정이 앞섰죠. 동이가 실존 인물이고, 10대부터 50대까지 연기해야 하는데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녀가 동이를 선택한 건 운명이었다. <찬란한 유산>을 마치고 차기작을 고심하던 중 <동이>의 시놉시스를 보게 되었는데, 한눈에 <동이>라는 두 글자가 들어왔다. 그 이후 그녀에게는 <동이>라는 글자만 보였다. 결국 그녀는 ‘동이’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다행히 저에게 동이의 대본이 주어졌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담감과 욕심이 동시에 생겼어요. 하지만 지금은 모두 잊어버리고 최선을 다해 연기하고 있어요.”
<동이>는 한류 드라마 <대장금>과 <허준>을 연출한 ‘사극의 대가’이병훈 감독의 작품이다. ‘동이의 주연을 누가 맡느냐’가 한때 방송가의 큰 이슈였다. 이미 <동이>는 일본, 태국, 홍콩 등 주요시장에 선 판매돼 8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기 때문에 주연을 맡은 여배우는‘제2의 이영애’가 될 것이라는 말들이 나돌았다. 이에 많은 여배우들이 <동이>에 출연하기 위해 노력했다.
“시청률에 대한 부담은 없어요. 사실 시청률을 의식하기보다는 역할에 대한 부담감이 더 커요. ‘제2의 대장금’ ‘제2의 이영애’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위축되기도 하지만, 다 내려놓고 편하게 연기하고 싶어요.”
동이는 초반 시청률이 다소 낮았지만, 어린 동이가 성인이 되고, 한효주가 투입되면서 시청률에 탄력이 붙었다. ‘한효주 효과’가 나타났다는 분석이 쏟아졌지만, 정작 본인은 태연하다.
밝고 긍정적인 기운을 주는 연기자
“사극은 두 번째 출연이에요. 하지만 여전히 어려워요. 사극은 특정한 연기의 테크닉이 필요한 장르죠. 시선 각도와 움직이는 타이밍까지 신경을 써야 하니까요. 처음에는 저도 어색했는데, 지금은 조금씩 적응이 되어가고 있어요. ‘제2의 대장금’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열심히 연기해야죠.”
한효주는 처음에는 고풍스러운 촬영장 분위기나 어색하기만 했던 의상 때문에 맘고생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사극의 장점을 알아가고 있다. 옷이나 머리를 바꾸지 않고 촬영하기 때문에 대본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캐릭터에 완벽히 적응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2년 전 퓨전사극 <일지매>에 출연했던 경험 덕분에 생각보다 빨리 적응되는 것 같아요.”
동이는 시대만 과거로 돌렸을 뿐 만화 속 주인공 ‘캔디’와 비슷한 인물이다. 이처럼 밝고 씩씩한 캐릭터는 낯도 많이 가리고 말수가 적은 한효주의 캐릭터와 다소 거리가 있지만, 조금씩 거리를 좁혀 나갈 생각이다.
“<찬란한 유산>의 ‘고은성’은 풋풋하고 상큼한 매력이 있고, ‘동이’는 참하면서도 진취적인 구석이 있는 인물이죠. 그래서 저는 두 역할 모두 만족스러워요. 요즘같이 힘든 시기에 그런 캐릭터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이고 밝은 기운을 주거든요.”
한효주는 <찬란한 유산> 이후 밝고 긍정적인 힘을 주는 연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캔디 전문 배우’라는 이미지로 정착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우려를 ‘성급한 생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고은성’이나 ‘동이’는 주체적인 삶을 사는 여성들이 많아진 현대의 보편적인 여성상이기 때문이다. 

비로소 가장 편한 옷을 찾았다

“사극 특유의 말투나 조심스러운 행동들도 고정관념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말 그 시대에 그런 말투를 썼을지도 모르겠고요. 저는 ‘동이’에서 최대한 감정에 충실하면서 현실에서 공감이 가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한효주는 작품에 출연하기 전 특훈을 받았다. 이병훈 PD는 정확한 대사뿐만 아니라 소품, 배경까지 하나하나 챙기는 스타일이다. 때문에 타이틀 롤을 맡은 한효주도 이병훈 PD의 지도를 받아야 했다.
“최근까지 감독님께 하루 2시간씩 수업을 받았어요. <대장금> <이산>의 대사를 감독님 앞에서 수없이 반복했어요. 잘할 때까지요.(웃음) 하지만 그런 훈련이 참 많은 도움이 됐어요. 사실 이병훈 PD님께 그런 지도를 받았다는 게 연기자에게는 영광이죠.”
한효주의 사극 출연은 <동이>가 처음이 아니다. 그녀는 퓨전사극 <일지매>에 출연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마땅히 사극을 지도해줄 만한 선생님을 찾지 못해, 혼자서 사극을 모니터링하면서 대사를 따라할 수밖에 없었다.
“<찬란한 유산>이 제게 선물이었다면, <동이>는 제 앞에 놓인 ‘숙제’ 같은 작품입니다. 새롭고 어려운 또 하나의 도전인 셈이죠. 그만큼 많은 것을 느끼고 얻어가고 싶어요. 드라마가 끝날 때쯤 제 연기가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저도 참 궁금해요.”
학창시절 예쁘다는 소리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너스레를 떠는 한효주. 그녀는 2003년 미스 빙그레 선발대회에서 대상으로 입상하면서 연예계에 첫발을 디뎠다. 그리고  2005년 시트콤으로 데뷔해 이듬해 드라마 <봄의 왈츠> 여주인공으로 전격 발탁됐지만, 캐릭터와 융화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시청률 40%를 돌파한 <찬란한 유산>을 통해 자신의 진가를 톡톡히 발휘했다.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비로소 찾은 것이다.
“사실 여러 가지 다양한 역할을 맡고 싶지만, 웬만하면 밝은 역할을 하고 싶어요. 밝은 역할을 맡다 보니 실제 생활도 밝고 희망적으로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캔디’라고 불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동이가 어떻게 희망을 주는지, 한효주가 어떤 연기를 하는지 <동이>가 끝날 때까지 많은 분들이 지켜봐주셨으면 해요.”

Sunday, March 6, 2011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

패션 브랜드가 대중에게 성공적으로 안착하기까지 디자인, 홍보, 마케팅 등 수많은 과정을 총괄하는 역할을 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우종완은 그간 이같은 직책을 가지고 이혜영의 ‘미싱도로시’부터 이정재·정우성의 패션 브랜드 ‘더반’, 정우성의 화장품 브랜드 ‘뮤슈 제이’의 론칭을 도왔을 뿐 아니라 과거 고소영의 ‘닉스 청바지’로 스타마케팅을 시작했다. 그야말로 패션계에 굵직한 획을 그은 장본인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그는 (최근 이승연으로 교체되기 전까지) 하유미, 김효진과 함께 세상의 모든 핫한 아이템을 전해주는 트렌드세터다. 스토리온의 장수 프로그램 <토크앤시티>의 MC로 활약하며 조금씩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것. 얼마 전부터는 <해피투게더> <놀러와> 등을 통해 공중파로도 진출했다. 일회성 출연이었지만 여파는 엄청났다. 정우성, 이정재, 이소라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톱스타들과의 인맥, 수많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끝없는 에피소드로 내뱉는 발언마다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 패션이든 가십이든 그는 대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뒤늦게 단 명함, 방송인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지긴 했지만, 제 자신을 ‘방송인’이라고 소개하는 게 어색하긴 해요. 방송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저는 패션 쪽 일을 했는데, 아무래도 방송을 통해 얼굴이 알려지면서 방송인으로 아는 분도 많더라고요. 충분히 감사할 일이지만 제게 있어 방송은 패션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참여하는 것입니다. 어떤 방송을 하든지 패션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놀러와> 출연 이후로도 예능프로그램 섭외가 꽤 많이 들어와요. 하지만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내가 할 역할, 내 위치’ 등에 대해 항상 자문합니다.”
그는 현재 4년째 이어오고 있는 <토크앤시티>의 MC 활동을 중심으로 <스타일 베틀로얄 TOP CEO>의 고정 게스트로, 또 <무한도전>의 ‘2011년 달력 만들기 프로젝트’의 멘토로 출연 중이다. 이같은 활약 때문일까. 요즘은 음식점엘 가도, 길을 다닐 때도 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아본다. 심지어 그의 조카들은 학교에서 “우리 삼촌이 우종완이다”라고 자랑하면 친구들은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 이모는 김태희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라고. 확실히 대중의 머릿속에는 ‘우종완’이라는 뉴 페이스가 자리 잡고 있는 중이다.
그는 얼마 전 한 아침방송 프로그램과 촬영을 마쳤다는 소식도 전했다. 엄정화, 이승연, 하유미 등 그가 친하게 지내는 셀러브리티들 이야기와 이정재, 정우성, 고소영, 김희선 등과 함께 작업했던 패션 이야기, 방송 외 본업인 직장에서의 모습 등 모든 것을 쏟아낸 것. 방송을 통해 작은 인생을 보여준 셈이다.
이토록 수많은 콜을 받고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 그는 방송형 인간이다. 베테랑 배우들도 연기가 아닌 방송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울렁증을 드러내는 데 반해 그는 방송에서 꽤나 매끄러운 활약을 보여준다.
“원래 말을 못하는 편은 아니에요. 게다가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토크앤시티>를 촬영하다 보면 수다가 늘 수밖에 없죠(웃음). 세 명이 함께 이어가는 것이니 호흡이 중요한데, 그 호흡을 4년간 맞추다 보니 방송이 무섭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시청자들에게 좀 더 조리 있게 말을 전달하기 위한 고민이 많습니다.”
그를 알면서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 중 하나는 ‘수다’다. 내로라하는 스타들 사이에서도 결코 묻히지 않는 그의 입심의 원천은 가족이다. 개방적인 가족, 게다가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언제나 떠들썩하고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 속에서 자라왔다. 제법 터울이 많이 나는 남매들이지만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살 정도로 민주적인 분위기였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다.
“식구 수가 많으면 우선 복잡해요. 북적거리는 분위기에서도 형, 누나, 엄마 모두 친구 같은 분위기였죠. 서로 스스럼없이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마음을 터놓고 지냈거든요. 게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끝까지 지지해주시는 부모님 덕에 20대 때는 그렇게도 좋아했던 패션 공부를 위해 파리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7년간 특별한 벌이 없이도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던 건 누나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타도 감동시킨 그의 진정성
그를 이해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바로 ‘우정’이다. 워낙 폭넓은 인맥을 자랑하는 그이지만 더욱 놀라운 건 그와 관계 맺은 사람들 사이에는 ‘깊이’까지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가 한 방송을 통해 인생의 베스트 인연으로 꼽기도 했던 이정재와는 무려 20년 되는 인연이다. 그의 인맥은 화려하기만 한 줄 알았더니 오래 묵은 된장처럼 진하기까지 하다. 이처럼 주위 사람과 관계를 맺는 그만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그에게 인맥의 비법을 물었더니 단번에 ‘진심’이라고 대답했다.
“패션 일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톱스타들과 만날 일이 많았죠. 그렇지만 꼭 잘나가는 연예인들만 만난 것이 아니라 신인들도 많았어요. 일례로, 김희선 씨가 최고의 주가를 올릴 때 파트너로 그녀의 아우라를 받고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도록 신인을 기용했죠. 그때 만났던 게 이준기 씨, 이민기 씨, 강동원 씨 등이었습니다. 신인이라고 해서 결코 쉽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 한 명 한 명이 가지는 존재감도 만만치 않거든요. 그렇게 맺은 인연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진심으로 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게다가 워낙 한우물을 파는 성격이라, 새로운 사람도 좋지만 주변의 지인들을 한 번 더 돌아봐요. 장맛도 오래될수록 좋다고 하잖아요. 오래된 친구, 깊게 아는 사람들이 편하고 좋아요.”
인연을 더욱 탄탄하게 다질 수 있었던 건 특유의 마당발 근성이 발휘된 결과다. 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후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서로 연결시켜주면서 관계를 이어온 것. 그렇게 오래된 인연이 새로운 인연을 낳고, 더 큰 에너지를 내기도 한다고 그는 믿고 있다.
“얼마 전에는 엄정화 씨랑 나이듦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 분야에서 활동하다 보면 나이를 잊고 지내기 쉬운데, 저도 어느새 40대가 됐더라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잊혀간 배우들, 제가 어린 시절에 열광했던 그 시대 스타들에 대한 회상까지 하게 됐습니다. 민혜경, 이보희 등 당대 최고였지만 요즘 친구들은 잘 모를 수 있는 이들 말이죠. 기회가 된다면 그런 이들과 함께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느낌을 표현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멋진 리메이크 작업을 통해 나이 들어가는 것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싶은 바람입니다.”

늘 다른 길을 걷고 싶다

외모와는 달리 올해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그가 아직 싱글이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한다. 하지만 일을 대하는 태도만큼이나 그는 사랑에 대해서도 확실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저는 단연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다들 저를 싱글남이라고 하지만 지난 45년간, 단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요. 지독한 사랑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을 할 거예요. 결혼이 꼭 사랑의 종착지는 아니잖아요? 제 사랑은 쓰다 남은 일기장처럼 아직은 결론 나지 않은 것인가 봐요(웃음).”
일도 사랑도 열심인 그는 아직도 목마르다. 패션, 방송, 엔터테인먼트 등 수많은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재산으로 쌓아가는 지금 그가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껏 많은 분야를 경험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치열하게 살아왔죠. 앞으로는 이 모든 경험을 통해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싶어요. 그것이 뭐가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죠. 그리고 하나 더 바라는 게 있다면 제대로 된 기술을 하나 배우고 싶다는 것? 지금까지는 그저 머리로, 말로만 했는데 이제는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것 하나쯤은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요. 그림이 될 수도 있고 요리가 될 수도 있고 공예가 될지 그건 모르죠.”
낯선 곳에 당도했을 때,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취미라는 그의 말은 언뜻 낯설다. 하지만 모르는 길을 걷다 보면 새로운 길이 나오는 법. 파리 유학시절에도 무작정 낯선 곳으로 뛰어들어가서 언제나 자신만의 새로운 지도를 만들었던 그였다. 새로운 것을 발견할 때의 즐겁고도 경이로운 기분을 잊지 못하는 그는 여전히 인생의 지도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음악 신동에서 훈남 기대주로


‘진짜 공연은 이제부터 시작’

지난 4월의 어느 날,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명동의 한 거리에서 화려한 디자인의 피아노 한 대가 세워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피아노 연주 소리. 점심을 먹기 위해 나온 이들의 발걸음을 잡은 건 피아니스트 지용의 연주였다. 수많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기보다는 그의 음악에 매료되어 발길을 멈췄다.
지용은 10세이던 2001년, 뉴욕 필이 주최한 영 아티스트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기반으로 쿠르트 마주어의 지휘로 뉴욕 필과 협연하며 데뷔무대를 화려하게 치렀다. 이후 11세 때에는 세계적인 매니지먼트사인 IMG에 최연소 피아니스트로 들어가며 ‘피아니스트 신동’‘제2의 키신’(러시아의 유명 피아니스트) 등의 화려한 타이틀까지 얻게 된다.
그가 어린 시절 피아노를 공부하기 위해 한국을 떠나 지낸 지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온 그는 대중과 가장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거리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이번 길거리 게릴라 공연은 5월 15일에 열린 BBC오케스트라와 국내 첫 협연 무대를 앞두고 관객과 먼저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3일 동안 명동, 서울아산병원, 여의도 공원 등에 등장해 바쁜 도시인들에게 피아노 선율을 들려주며 잠깐 동안의 여유를 선물했다.
“공연 자체가 즉흥적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형식이어서 그런지, 격식 없는 아주 친근한 분위기였습니다. 공연 중간 중간에 멘트도 할 수 있었어요. 독특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는 것이 저에게도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을 때, 내가 이런 공연을 할 수 있을까 막막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런 경험을 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기쁘고 놀라운 일입니다.”

평범함 속 비범함을 꺼내다

한없이 해맑은 미소가 트레이드마크인 그의 모습을 보면 여느 스무 살 청년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연주가 시작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안에 담겨진 내공과 카리스마는 감히 범접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는 마치 그의 음악 인생과도 닮아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음악과 가까이할 수 있었다. 성악가 출신이자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던 어머니는 교회에서 불렀던 찬송가를 혼자 연주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일찌감치 아들의 재능을 감지했다. 그렇게 그의 음악의 길은 시작됐다. 이후 한국종합예술학교 예비학교에 다니면서 기본기를 닦아나갔다. 그곳에서도 그는 한국 쇼팽 콩쿠르 등에 우승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더 큰 무대로 나가라는 주위의 권유에 그의 부모님은 미국행을 결심하게 된다. 그가 9살 때 일이다. 윤리 교사인 아버지, 피아노 강사인 어머니와 함께 안정된 한국 생활을 버리고 온 가족이 그의 꿈을 위해 도전을 한 셈이다.
미국에서의 삶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그의 가족은 여느 한국 이민자들처럼 세탁소를 운영하며 어렵게 생활을 이어갔다. 부모님의 희생을 보고 자란 그는 그럴수록 더욱 열정적으로 음악에 대한 사랑을 키워갔다. 손목에 ‘아빠, 엄마, 누나’를 의미하는 별 모양의 문신을 새긴 것도 언제나 가족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에게 있어 가족은 또 다른 그의 모습을 담고 있다.
미국에서 그의 삶은 음악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홈스쿨링을 하며 음악에만 전념한 것이 아니라 여느 고등학생들처럼 평범하게 학창시절을 보내며 음악을 공부했다. 뮤지션으로서 좀 더 빨리 명성을 얻기보다는 연주 인생을 길게 보고 한 걸음씩 깊이 있게 성장하기를 바란 것이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음악가의 길이었다.
“뉴저지의 라마포 고등학교를 다니며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 똑같이 수업을 듣고 시험도 치고 마음껏 놀았어요. 연주 연습을 하러 간 곳에서도 과제물을 한 아름씩 안고 있기도 했습니다. 제가 원한 결정이었죠. 가족들은 그런 저를 믿어줬어요.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아티스트로서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는 대중이 ‘클래식은 일부 계층만의 전유물’이라 생각하는 건 음악가들이 자신의 세계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 믿는다. 다른 음악가들과 똑같은 길을 걷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것을 보고 들은 그의 연주는 그래서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의 실력은 <시카고 트리뷴>지의 평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6년 시카고의 오케스트라 홀에서 가진 그의 시카고 데뷔 무대에 대해 ‘놀랄 만큼 성숙한 소리와 스타일을 가진 연주자’‘넘치는 재능과 감각으로 반드시 대성할 것이다’는 등의 호평을 받았다.
크리에이티브를 위한 새로운 도전
2001년 뉴욕에서 뉴욕 필과 데뷔 무대를 화려하게 치른 그는 이후로도 시카고 오케스트라 홀, 프라하의 스메타 홀,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 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한국을 떠난 지 7년 만인 지난 2007년에는 한국에서 첫 독주회를 열기도 했다. 올해 19세인 그는 나이를 넘어서는 음악적 깊이와 테크닉을 모두 지닌 피아니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음악 인생에 정점을 찍고 있는 현재,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더욱 견고한 기반을 다지기 위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10년 솔로 활동을 시작하며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키워드는 바로 ‘크리에이티브’다. 이는 그간의 행보를 통해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지난 4월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과 함께한 무대에서 발레와 피아노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색다른 연출을 보여준 것. 이 외에도 지난 거리무대에서 선보인 화려한 색상의 피아노를 위해 팝아티스트 김태중과도 호흡을 맞췄다. 클래식이라고 하면 기존의 검은색 그랜드 피아노를 연상했던 대중의 선입견을 깨는 신선한 발상이었다.
“저와 매우 친한 친구들이 줄리아드 댄스 전문교육기관에 소속되어 있는데, 운 좋게도 저는 이 친구들을 통해 무용수와 함께 작업해볼 수 있었어요. 함께 무언가를 크리에이티브하게 만들어가는 것 자체가 너무 좋습니다. 이런 모든 작업은 예술을 좀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죠. 저의 이런 의도를 알았는지 재미있는 제안이 들어왔고, 흔쾌히 응했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이런 방식으로 계속 작업하고 싶어요.”
기존의 인식을 통렬하게 깨는 건 그의 취향으로도 알 수 있다. 존경하는 뮤지션으로 화려한 퍼포먼스와 자신만의 뚜렷한 개성을 지닌 것으로 유명한 팝가수 레이디 가가를 서슴없이 꼽았기 때문. 자신을 표현할 줄 알고 숨김없이 모든 것을 보여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레이디 가가의 곡들을 자신만의 느낌으로 연주하면서 언젠가 함께 무대에 서는 날도 상상해본다.
“기본적으로 저는 모든 종류의 예술에 마음을 열고 있습니다. 패션 역시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트워크 중 하나입니다. 저로 인해서 ‘클래식하는 사람도 패션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드릴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이런 다양한 분야를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대중과 소통하는 클래식을 꿈꾸다

그는 지난해부터 앙상블 ‘디토(Ditto)’에 참여했다. 디토는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을 비롯한 젊은 남성 연주자들이 모여 만든 클래식 프로젝트 그룹이다. 탄탄한 연주 실력을 기반으로 세련된 스타일, 깔끔한 외모 등으로 클래식계의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는 이들이다. 창단 3번째 시즌을 맞이해서 올해 디토 멤버로는 음악감독 용재 오닐(비올라), 수필가 故 피천득 선생의 외손자 스테판 재키브(바이올린), 패트릭 지(첼로), 쟈니 리(바이올린) 등 원년 멤버 4명 외에 피아니스트 지용과 첼리스트 마이클 니컬러스가 가세했다.
“처음에 디토의 기획사에서 저를 찾아 뉴저지까지 왔고, 좋은 취지를 들을 수 있었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건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다’라는 느낌이 바로 왔습니다. 정말 존경하는 형들과 함께하게 돼서 배울 점이 많습니다. 연주 이전에 형들로서도 정말 좋은 사람들입니다. 멤버들 중에서 제가 가장 어려요. 하지만 음악을 하는 이들에게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좋은 곡을 연주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것까지도 음악인의 역할이라고 믿는 그에게 디토의 다양한 활동을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6월에는 일본 무대에까지 오른다. 일본의 스타 바이올리니스트 고토 류의 적극적인 러브콜로 성사됐다. “일본 공연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저뿐만 아니라 디토 멤버들 모두가 흥분한 상태죠. 우리는 매일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그 공연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눠요. 더 많은 관객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잘됐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Stop & Listen>이라는 또 다른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극히 이례적으로 디지털 싱글 앨범까지 출시했다. 이번 앨범에는 모차르트의 ‘아, 어머님께 말씀드리죠 변주곡’, 쇼팽 폴로네이즈 ‘영웅’,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 등 평소 그가 가장 아끼는 피아노 소품들을 담았다. 언제나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에게는 늘 최고의 수식어가 붙곤 한다.
“언제나 ‘최연소’‘영재’ 등의 수식어를 붙여주셨어요. 굉장히 뿌듯하고 영광스럽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리고요. 하지만 그런 타이틀에 연연하기보다는 저만의 개성을 가진, 특징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클래식 연주자로서 대중에게 친근하게 클래식 음악을 알리고 싶어요.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는 아티스트로서 저의 재단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돕고 싶은 꿈도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피아노와 함께 해오며 힘겹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피아노를 멀리한다는 생각은 꿈에서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는 피아노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통해 기쁨을 느끼고, 피아노를 통해 꿈을 꾸는 그에게는 매일이 새로운 무대다.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하는 그의 무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사나이 김선혁


잘생긴 얼굴이 단번에 눈에 띄는 그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아직 그를 잘 알지 못한다. 다만 평일 오전 시간대의 주 시청자인 주부들에게만큼은 확실히 자리매김을 했을 것이다. 드라마 <엄마도 예쁘다>에서 히스테릭한 아내와 사랑하는 여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홍우진 역할을 맡은 김선혁. 그를 잘 알기 전에는 ‘신인배우치고는 어색하지 않게 연기한다’ 정도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면 속살 깊이 숨겨둔 이야깃거리가 넘쳐난다는 걸 알 수 있다. 무명 배우에서 아침드라마 주인공을 단번에 꿰차기까지는 그만큼의 사연과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는 법이니.
첫 번째 반전, 10여 년 전 길거리 캐스팅
올해로 서른네 살인 김선혁. 연기자로서 첫 데뷔가 스물아홉 살 때였으니 결코 이른 나이에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연예계 생활이 낯설지 않은 건 이미 한 차례 준비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갓 스무 살이 됐을 무렵, 그는 친구들과 춤을 추러간 곳에서 소위 말하는 ‘캐스팅’이 됐다. 그 당시 그를 포함한 친구
세 명은 소방차의 매니저였던 이로부터 명함을 건네받았다. 당장 다음 주에 오디션이 있으니 춤과 노래를 준비해오라는 미션을 받은 것. 얼떨결에 오디션 기회를 얻은 셈이다.
어릴 때부터 어딜 가거나 앞장서는 스타일이었던 그는 ‘연예인보다 더 연예인 같다’, ‘가수나 개그맨을 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기에 자연스레 가수가 돼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그때는 마냥 신났죠. 뭐가 되려나 보다 싶어서 친구들과 의기투합해서 나름대로 준비를 해갔어요. 그런데 막상 오디션 현장에 갔더니 100명 정도가 모여 있는 거예요. 그래도 운이 좋았는지 저와 친구들 셋은 최종까지 갔습니다.”
하지만 목표도 없이 쉽게 얻은 기회여서일까. 결국 의지 부족, 부모님의 반대 등의 이유로 가수가 되는 일은 싱겁게 무산됐다. 그리고 이후 몇 년간 묵묵히 학업의 길을 걷게 된다.
“그 당시에 전 ‘가수가 되어야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누가 해보라니까 혹해서 한 거였죠.
그래서 부모님이 만류하셨을 때 쉽게 의지를 꺾은 것 같아요.
 만일 그때부터 연예인의 길을 걸었다면 오히려 편하게 연기자가 됐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고민 한번 제대로
안 해보고 쉬운 길로만 걸어갔을 모습을 상상하면 아마도 남 배려도 할 줄 모르고 자기 잘난 맛에 빠져 있거나,
극도의 회의감으로 우울증에 걸렸거나…. 그리 좋은 모습이 연상되진 않네요.(웃음)”
뒤늦게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연기자로서 모습을 갖춰가고 있는 지금도 가끔씩 ‘그때 좀 더 결의를 다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숱한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모습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말이다.
그는 이제껏 그리 많은 작품을 하지는 않았지만, 매 작품마다 제작진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첫 작품 <식객>에서는 특유의 넉살과 당찬 모습으로 대사 하나 없는 단역 대신 조연 자리를 꿰찼다.
이력 하나 없는 무명인데도 감독의 기에 눌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던 것. 이후 <잘했군 잘했어>에 합류할 때도 단기간에 6kg을 감량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에게 첫 주연의 기회를 준 이번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몇몇 후보들과 함께 최종까지 올라간 그는 3일 정도 여유가 주어지자, 그 사이 수염을 기르고 3kg을 감량하며 단기간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어필했다. 게다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준비해갔고, 그 당시 한창 연습 중이던 대금을 무작정 들고 가서 즉석에서 연주해보였다. 이렇게 노력하는 모습은 제작진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주연 발탁으로까지 이어졌다.

두 번째 반전,
숨은 엄친아

연기자가 되기 전까지 그의 목표는 놀랍게도 교수였다. 평소 스킨스쿠버 등 해양스포츠에 관심이 많던 그는 대학에서 해양학을 전공하며 관련 분야에서 활동해왔다. 이후 부모님의 기대 속에 자신 역시 학자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예일대학교 박사 출신의 아버지, 유명 요리연구가인 어머니, 엘리트 코스를 밟고 대기업에 재직 중인 형 등으로 이루어진 가족 분위기에서 자연스레 생긴 꿈이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부푼 꿈을 안고 유학의 길에 올랐다. 하지만 아버지의 건강 문제, 사업 실패 등 상황이 악화되면서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의 좌절을 겪었지만
그 대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못 다한 꿈을 펼치리라 마음먹었다. 그럼에도 그의 의지는 확고하게 굳어지지 않았다.
“그때 많이 방황한 것 같아요. 유학이 좌절됐을 때도 그랬지만 한국에 돌아와 대학원에 들어가서도 제가 예상한 것과 많이 달랐거든요. 제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시스템적으로 그걸 가로막는 요소가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처음의 의지도 많이 꺾였고요.”
슬럼프가 찾아왔을 즈음 그는 한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 친구는 크리스천이었다. 술, 담배도 많이 하고,
종교에 거부감도 많던 그였지만 그 친구의 한 가지에 매료됐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어린 나이에 뭘 믿고 저렇게 확신에 차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다. 한창 방황하던 그의 눈에는 그의 모습이 신기하고 부러울 뿐이었다.
“은연중에 그 친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히 알고 있는 친구였거든요. 그러다가 어느 날, 꿈에서 환상이 보였어요. 마치 신 내림을 받은 것처럼 강렬했죠. 그때 연기에 대한 비전을 받았다고나 할까요? 정확하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무엇에 홀린 것처럼 제 마음속에 강렬하게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연기에 대한 마음을 굳히기 시작했어요.”
그는 20대 중반의 나이에 인생의 최대 기로에 섰다. 연기자의 길을 걷는 건 마지막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교수를 꿈꾸던 그에게 공부를 접어야겠다는 결심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단순한 호기심으로 뛰어들어보는 마음과는 확실히 달랐다. 결정을 하고 난 뒤엔 더 이상 돌아갈 길이 없었다. 교수님과 부모님에게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드러냈다.
“먼저 교수님에게 찾아가서 연기해야겠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당황하시더라고요. 어쩌면 한심하게 여기셨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순간의 수치심이나 이해 못할 시선을 받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그만큼 제 결심은 확고했거든요. 그 결의가 강하게 느껴졌는지 부모님은 한마디 반대 없이 허락해주셨습니다.
저를 믿고 지지해주셨다는 것에 정말 감사하죠.”
단호한 결심으로 대학원을 그만둔 후 그는 공연영상연구원에서 연기 실력을 갈고 닦았다.
연기를 배우고, 크고 작은 공연을 올리며 연기 전공이 아니라는 열패감을 4년간의 배움으로 채워나갔다.

세 번째 반전
, 의외성에 대한 고찰
현재 아침드라마 주연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는 연기자로서 이제 한 걸음을 뗀 셈이다. 작품을 시작한 지 3개월여. 매주 계속되는 강행군 촬영에도 익숙해져가고, 자신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에도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드라마를 보면 아시겠지만, 이 친구는 프로페셔널하고 매너도 좋고, 어떤 부분에서는 답답할 정도로 경직되어 있어요. 하지만 현실의 저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무척 밝거든요. 오디션 장에서도 인상이 강하다는 평을 많이 들어요. 하지만 저의 실제 모습에는 시트콤적인 면이 많습니다. 사람 좋아하고, 수다 떠는 게 취미일 정도죠.”
드라마에서 지적이고 단정한 이미지로 어필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진짜 매력은 ‘의외성’에 있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작업한 이들은 그의 첫인상과 다른 성격에 놀라고 숨겨진 스펙에 또 한 번 놀라곤 한다. 연기와는 전혀 다른 학문을 전공했다는 점,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해병대 출신이라는 점, 선후배를 아우르는 분위기 메이커로 활약하는 모습까지 그에게는 의외성이 다분하다.
“저만의 승부수는 그런 의외성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웃지 않고 얌전하게 있으면 그렇게 봐주실 테고, 전혀 다른 모습을 원하시면 진짜 제 안에 있는 걸 그대로 보여드리면 되잖아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점에서 저는 제가 가진 의외의 모습이
참 좋아요. 이럴 때 보면 늦게 들어선 배우의 길에 그간의 경험이 헛되지 않았구나 싶습니다.”
이제 삼십대가 무르익고 있는 그는 조급할 것 없이 천천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저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연기자로서 조용히 자신의 내공을 쌓는 것이 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로서 두 가지만 준비하는 게 있어도 조급함이 오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그는 날마다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여기에 오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상처도 많이 받고, 실망한 일도 많았죠.
부모님, 특히 어머니께서 마음을 많이 졸이셨을 거예요. 어머니는 요즘에도 가끔 ‘이번 드라마 끝나고 미니시리즈 같은 것 하나 들어가야 하는데…’라고 하세요. 그러면 전 ‘이제껏 이렇게 잘 왔잖아요’라고 해요. 서로 얼마나 힘들게 왔는지 아니까, 조급해하는 게 의미 없다는 걸 알거든요. 작은 일에 크게 들떠서 기뻐하고, 실망하고 그러지 않으려고요. 다만 지금의 밝은 모습은 나이 들어서까지 계속 가지고 가고 싶어요.
타성에 젖지 않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것, 그것이 연기자로서 저의 목표입니다.”

“난 더 이상 당신들의 여동생이 아니에요”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의 성공 이후, 문근영이 택한 작품은 다름 아닌 연극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녀가 맡은 역할이 <클로저>의 ‘앨리스’라는 사실이다. 앨리스는 스트립 댄서다. 클럽에서 비키니만 입은 채로 춤을 추며, 가만히 있어도 남자들이 다가올 정도로 섹시하고 도발적인 여자다. 섹스에 관한 거침없고 직설적인 이야기도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는다. 순한 눈빛을 가진 문근영과는 멀어도 한참 멀어 보이는 캐릭터다.
일단 무대를 통해 만난 문근영은 놀라웠다. 이제껏 전혀 접하지 못했던 도발적인 모습에 놀랐고, 생각보다 그 모습이 잘 어울려서 또 한 번 놀랐다. 마치 “나는 더 이상 당신들의 여동생이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연기나 대사에 대한 거부감은 없어요.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알 만큼 아는 나이니까요.(웃음) 다만 앨리스가 가만히 있어도 매력적이어서 사람을 끌리게 하는데, 제가 과연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일까 부담되고 걱정됐죠. 아직은 깊은 맛을 내기에는 부족함도 있어요. 그저 열심히 공부할 뿐이죠.”
무대에서 ‘인간 문근영’ 보여줄 터
여러 가지 생각이 문근영을 무대로 이끌었다. 우선 그녀는 “배우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무대에 대한 열망과 욕심”을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여기에 <신데렐라 언니>를 통해 만난 선배 김갑수의 독려가 본격적으로 불을 지피게 했다.
“오랫동안 무대에 대한 욕심이 있었어요. 전 작품을 선택할 때 재미있고 흥미 있게 연기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클로저>는 재미있는 작품이었고, 선뜻 출연을 결심하게 됐어요. 또 <신데렐라 언니>를 찍을 때 김갑수 선생님이 연극이 많은 도움이 될 거고, 생명력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조언하셨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미처 내지 못했던 용기를 내게 됐죠.”
오랫동안 그녀는 자신도 잘 알고 있는 ‘문근영’이라는 클리셰에서 벗어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 안에 갇혀 누가 문근영이고, 문근영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모호해지는 경험을 했다.
“가끔씩 내가 ‘문근영’으로 있는 건지, ‘사람들이 바라는 문근영’으로 있는 것인지 모를 때가 있어 외롭고 슬펐어요. 그러나 무대에서는 ‘인간 문근영’으로 살 수 있어서 좋았어요. 스스럼없이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좋고 사는 것 같아요.”
연극은 완전히 새로운 작업이었다. <바람의 화원>으로 연기 대상을 받고, <신데렐라 언니>를 통해 ‘미친 존재감’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지만, 무대에 서기 위해서 기초적인 발성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동안은 마이크가 목소리를 잡아주니까 또렷하거나 크게 하지 않아도 됐거든요. 그런데 무대에서는 대사 전달에서 문제가 생기더군요. 첫 연습 때부터 소리를 고루 크게 낼 수 있도록 훈련했어요. 발성 연습을 한다고 하는데, 아직 턱없이 부족한 면이 많아요.”
목소리뿐 아니었다. 편집으로 완성되는 드라마에 비해 날것의 연기를 보여주는 연극은 액션부터 호흡까지 많은 걸 신경 써야 했다.
“드라마는 내 온몸으로 연기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화면에 나오는 건 얼굴뿐일 때가 많잖아요. 연극에서는 전체가 다 오픈되니까 좀 더 신경 쓰게 돼요. 그리고 배우들과의 호흡도 신경 써야 하죠. 드라마는 호흡이 썩 좋지 않아도 편집을 통해서 좋게 보이게 하거든요. 촬영할 때는 별로인데 그럴듯하게 나올 때도 있고요. 연극은 그런 게 안 되니까 무대에서 배우와 더 호흡해야 하죠.”
연습과 실제는 또 달랐다. 그녀에게 무대와 객석은 너무도 넓은 공간이었다. 첫 무대에서 이성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떨림이 온몸을 지배했다.
“무대에 서기까지 정말 하나도 안 떨렸어요. 그런데 막상 무대에 올랐는데 너무너무 떨리는 거예요.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되뇌어도, 어느 순간 떨고 있더라고요. 그 떨림 때문에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었죠. 그러면서 한편으로 책임감이 많이 들더군요. ‘이제껏 이런 책임감을 갖고 연기를 해본 적이 있었던가.’ 첫 무대 이후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연인에게 다른 사람이 생기면 쿨하게 보내줄 것
<클로저>는 극작가 패트릭 마버의 대표작으로, 영화로도 제작되어 세계 팬들을 열광시킨 작품이다. 앨리스, 댄, 안나, 래리, 네 남녀의 아슬아슬한 사랑 이야기로, 댄이 앨리스와 안나를 동시에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클로저>가 무거운 사랑 이야기라는 건 맞지만 불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사랑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 남녀의 사랑이 어쩌면 우리 곁에 있는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 사랑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네 남녀의 모습을 통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인 것 같아요.”
앨리스는 모든 것을 다 걸고 사랑한다. 떠난 남자에게 복수를 하기도 하지만, 그가 다시 돌아올 때는 받아주는 여인이다. 문근영은 “앨리스의 사랑법이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치명적인 사랑에 빠져본 적이 있나?”라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다”며 소녀 같은 모습을 보였다.
“제가 그동안 사랑을 해봤다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안 해본 건 아니거든요. 저도 앨리스처럼 순간의 사랑에 솔직하고 올인할 수 있는 사랑이 좋아요. 그렇지만 사랑의 방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 자체가 아닐까요.”
만일 문근영이 앨리스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즉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생기게 되면 어떨까. 그녀는 질문을 받자마자, 주저 없이 “보내주겠다”고 말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보내줄 것 같아요. ‘너보다 저 여자가 좋아’라고 하면 그 여자와 사랑하게 하는 게 맞는 것 같고, 그게 저도 행복할 것 같아요. 아직 그래본 적은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요.”
일과 사랑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라는 질문에는 “둘 다 잘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야무지게 대답한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또 운명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우리를 이끈다. 어쩌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분위기가 됐다. “내일 촬영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데이트가 있다면?” 그러자 그녀는 똑 떨어지는 대답을 돌려준다. “촬영이요. 책임감이 있으니까요.”
‘국민 여동생’ 이미지, 평생 풀어가야 할 숙제
문근영을 따라다니던 ‘국민 여동생’이라는 수식어는 이제 바뀔 듯하다. 오랫동안 그녀는 여동생으로서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여동생도 어느덧 여자로 성장했다. <클로저>의 선택은 자신을 가두고 있던 ‘여동생’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국민 여동생 이미지가 짐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순간 짐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아무리 노력해도 봐주는 사람이 그렇게 보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야 하니까요. 이미지는 한순간에 생긴 게 아니라 오랫동안 쌓여서 이루어진 것이라서 어떤 작품을 ‘후끈’하게 한다고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아요. 그건 앞으로 제가 평생 연기하면서 풀어가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요.”
그러나 배우 문근영은 조급하지 않다. 답답해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자신의 노력이 있다면 얼마든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예전에 비해 마음이 좀 더 편해졌어요. 저는 나이를 안 먹을 줄 알았는데, 나이를 한 살씩 먹고 있더군요. 또 저를 바라보는 분들도 나이를 먹잖아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을까요. 제 이미지를 개인적으로는 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마도 <클로저>는 그 노력을 시작하는 첫걸음일 것이다. 그러기에 마음가짐이 새롭다. 나탈리 포트만이 연기한 앨리스와 비교될 때마다 “나만의 앨리스를 만들겠어”라는 오기도 생겼다.
“앨리스는 저와 나이가 비슷해요. 그래서인지 앨리스가 늘 도발적이고 섹시할 것 같지는 않아요. 저는 당연하게 그녀에게 소녀 같은 모습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어쩌면 그것이 저만의 앨리스를 표현하는 방식일 수 있어요. 하지만 내면의 깊은 연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공연 끝날 때까지 갖고 가야 할 고민거리라고 생각해요. 저만 느낀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과 정서를 관객들하고 함께 느껴야 하잖아요.”
이제 막은 올랐다. 문근영은 꼼짝없이 10월 10일까지 앨리스로 살아가야 한다. 연극이 끝날 때쯤 되면 그녀는 아마 무대를 통해 얻은 소중한 경험들을 걷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제가 40회 정도 공연을 해요. 그 기간 중 딱 한 번이라도 관객과 같이 울 수 있는 순간이 있었으면 해요. 공연이 끝나고, ‘앨리스는 너밖에 없어’라는 말을 듣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럴 수 있도록 노력, 또 노력해야겠죠.”
종종 아역 배우가 성인 배우로 가는 통과의례로 노출 연기를 감행하기도 한다. 물론 <클로저>에도 아슬아슬한 옷을 입고 골반춤을 주는 장면이 있다. 그러나 연극은 연기의 폭을 넓히면서도 훨씬 안전하고, 연기력까지도 높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역시 문근영은 똑똑했다.

나문희의 '션찮은 인생'이야기
















연극 <친정엄마> 리딩 연습을 마친 나문희의 눈은 번져 있었다. 공연까지 39일을 남겨두고 있는데, 작품이 너무 슬퍼 많은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공연 전까지 더 많이 울어놔야 공연 때는 자유로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눈물을 거르는 중’이라는 그녀는 뮤지컬 <친정엄마>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그녀는 썩 괜찮은 인터뷰이는 아니었다. 꽤 농익은 기자들에게 인터뷰하기 힘든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나문희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배우다. 좀처럼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유명한데다 막상 인터뷰가 진행되더라도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단답형 대답이 돌아오기로 유명하다.
그녀와 인터뷰를 앞두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잠까지 설칠 정도였다. 예상대로 나문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연기에 관한 대답은 비교적 양호한 편지만, 사생활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상식을 넘어서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애완용 동물을 키우냐”는 질문에 “그냥 쓰레기 버리는 걸 좋아해요”라고 하질 않나, 즐겨하는 운동이 있냐는 질문에는 “동네 목욕탕에서 찬물에 들어가 왔다 갔다 하는 거란다” 아무래도 기자에게 농을 건네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니 웃음기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얼마든지 대답해줄테니 어서 다음 질문을 하라”는 성실한 선생님의 얼굴을 하고 있다.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어려운 문제집을 산더미처럼 쌓아둔 학생처럼 자포자기 심정일 즈음, 순식간에 수수께끼 같은 ‘나문희 탐구’가 끝났다. “근데, 왜 연극 이야기는 묻지 않아요?” 고희를 코앞에 둔 노배우는 딸 연배의 기자에게 ‘사생활보다는 연기에 대한 질문을 던져달라’는 말을 차마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을 앓은 듯했다. 안경 너머로 여배우 나문희의 농염한 눈빛이 그제야 보였다.
   

공중 화장실 청소하는 여배우
뮤지컬 <친정엄마>는 어떤 작품인가요?외국 뮤지컬에 <맘마미아>가 있다면 한국 뮤지컬에는 <친정엄마>가 있어요. <친정엄마>는 2004년 초판 이후 30만 부 이상 판매된 고혜정 작가의 수필을 원작으로 만든 뮤지컬이죠. 60대 초반이 된 엄마가 딸을 시집보낼 준비를 하며 겪는 갈등과 해프닝을 그렸어요.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예요.
영화, 드라마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뮤지컬 무대에 섭니다. 뮤지컬이 다른 장르와 다른 매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연극이나 뮤지컬은 관객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배우와 관객이 질펀하게 함께 느낄 수 있잖아요. 나는 앞에서 뛰어놀고 관객들은 리액션을 보여주고요. ‘나, 잘하지?’라고 물어보면 ‘잘한다, 잘한다’ 박수 쳐주는 관객들이 바로 앞에 있다는 게 좋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같은 느낌으로 동화되는 걸 느낄 수 있죠.
이번 뮤지컬도 어머니와 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을 것 같아요. 엄마 생각도 많이 났고 딸 생각도 많이 났어요. 그런데 연습한 지 얼마 안 돼서 자꾸 울고 있어요. 연극 한 편 하면 많이 울어서 눈이 자꾸 내려와요. 나이 들어 보이게….
직접 노래도 부르나요?네, ‘무조건’‘대전부르스’ 두 곡을 불러요. 못하는데 잘하는 척 시치미 뚝 떼고 불러야 해요.(웃음)
지금까지 데뷔 초부터 다양한 어머니 역을 맡아왔어요. 혹시 다른 역할도 맡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나요?솔직히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워낙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입니다. 한편으로 다행스럽다고 생각되는 게 만약 다른 역할을 맡았다면 남편과 관계가 불편해졌을 것 같아요.
연기자로서 롤 모델이 있을 것 같아요. 특별한 오마주가 있나요?아니요. 나는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사람들에게서 새로운 캐릭터를 발견하는 편이에요. KBS 일일드라마 <바람은 불어도>에서 이북 사투리를 쓰는 억척스런 할머니를 맡았을 때는 동네에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는 분이 이북 출신이었는데, 어느 날 뭘 좀 사러 갔는데 그 양반이 “에이, 썅!”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나도 저런 모습을 연기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매일 찾아가서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어요. 저는 주로 시장, 구멍가게 등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오마주예요.
국민엄마라는 호칭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국민엄마로 불리는 배우들이 한두 명이 아니잖아요. 김혜자, 강부자, 김수미, 김혜숙, 고두심 등 너무 많아요.(웃음) 사람에 따라 자기 기준에 맞춘 어머니인 것 같아요. 나는 그냥 나문희식 국민엄마예요. 진짜 국민엄마는 낳아주고 길러주신 각자의 어머니죠.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연습하는 지독한 연기자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나는 연습을 정말 많이 하는 편이에요. 연습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대본을 처음 받게 되면 대사를 머릿속에 삭히려고 노력해요. 또 연습을 너무 많이 하자고 해서 상대역을 맡은 사람들이 귀찮고 피곤해하는 편이죠.
후배들에게 어떤 선배입니까?션찮은 선배요. (나문희는 션찮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마음이 약한 편이거든요. 하지만 때로는 고약스러운 선배이기도 해요. 예전엔 후배들에게 좀 못되게 굴었던 것 같아요. 저는 확실하고 분명한 연기자들을 좋아하는데, 약속을 안 지키거나 질서를 어지럽히면 따끔하게 지적하거든요. 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어떤 후배는 제가 ‘그렇게 하면 너랑 연기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저는 분명한 사람이 좋아요.
연기 생활이 어느새 49년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체력적으로 힘들진 않나요?나이가 드니까 화를 낼 일이 줄어들었는데, 촬영이 새벽 1시를 넘어가면 체력이 딸려서 화를 많이 내요. <거침없이 하이킥>을 찍을 때는 연출가와 많이 싸웠어요. 저는 언제나 첫 번째 찍은 컷이 가장 좋아요. 그래서 두 번 세 번까지는 참을 만하지만 네 번, 다섯 번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찍으라고 하면 화가 나요. 진액이 다 뽑히는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작품을 시작할 때 연출가에게 반복해서 찍자는 말은 되도록 삼가달라고 말을 하죠.
스무 살에 문화방송 성우로 방송 일을 처음 시작하셨죠?그해 여름 중앙예술학원이라는 곳에서 연출가, 문화방송 초대 사장, 배우들이 연기론을 강의한 적이 있어요. 그때 수업을 듣고 친구와 둘이서 문화방송 성우 모집에 응시해서 합격했어요. 그때 <주말의 극장> 여주인공 역은 거의 맡았어요. 그러다가 연기를 하게 됐어요. 하지만 다른 탤런트들이 워낙 자리를 잡고 있어서 성우들은 연기자들이 기피하는 다방 마담, 술집 주인 같은 역을 맡았죠.
여담이지만 영화 <걸스카우트>를 찍을 때 경기도 여주 세트장에서 여느 어머니처럼 화장실 청소를 하는 모습이 다른 배우들에게 자주 목격됐습니다. 왜 직접 화장실 청소를 하셨어요? 화장실 청소를 하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그런 건 항상 하는 일이에요. 나는 치우고 비우는 게 취미라서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데,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은 신기한가 봐요.누군가는 치워야하는데 제가 조금이라도 정리를 해놓으면 치우는 사람이 편하잖아요. 집에서도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것은 제 담당이죠. 난 치우고 비우는 게 취미예요.


부족한 엄마, 애교만점 딸
나문희는 슬하에 세 딸을 두었다. 첫째딸은 피아노, 둘째딸은 바이올린, 셋째딸은 디자인을 전공했다. 또한 그녀의 남편은 전직 영어교사로 5개 국어가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년퇴직 후에는 전시회를 열 정도로 그림에 몰두하고 있다. 나문희는 ‘션찮은’ 엄마이고 아내지만 여든아홉의 어머니에게는 ‘애교만점 딸’이라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예전 KBS 연기대상을 받고 수상소감에서 ‘어머니께 감사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아직도 곁에 계신가요?네, 어머니가 아직도 건강히 곁에 계셔요. 굉장히 인자하시고 똑똑하시죠. 이제 여든아홉 살인데, 저랑 어머니랑 아주 친해요. 지금도 3일에 한 번씩은 꼭 만나요. 가끔 제 연기에 대해서 말씀도 해주시곤 하는데, 어머니는 무조건 칭찬만 하세요. 어머니 덕분에 제가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슬하에 세 딸을 두었습니다. 딸들에게는 어떤 어머니인가요?나는 아무리 자식이라도 해도 구속하는 게 싫어요. 사람은 저마다 재주가 있고 살 수 있는 요소들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자식 걱정보다 내 걱정을 먼저 하는 엄마예요.(웃음) 그래서 딸들에게 션찮은 엄마죠. 어릴 때부터 걔네들은 나대신 아버지와 열심히 살았어요, 교육적인 부분은 남편이 담당했죠. 솔직히 나는 그때도 지금도 이쪽 일이 더 중요해요. 연기는 그야말로 만사를 제쳐놓고 해야 합니다.
과거 남편이 대장암 투병을 했습니다. 지금은 건강을 많이 회복했나요?다 나았어요. 그래도 꾸준히 관리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건강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위장과 대장에 좋은 옥수수, 고구마, 파프리카, 브로콜리 같은 음식들을 많이 먹고 있어요.
작품이 끝난 뒤 공백기는 어떻게 지내나요?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그냥 있어요. 그게 최고로 좋은 휴식이죠. 그리고 오페라나 교향곡, 가곡 등 고전 음악을 듣기도 하고요. 혼자 있는 시간을 제일 좋아해요.
어느 인터뷰에서 나이가 더 들면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연기는 언제까지 할 생각입니까?할 수 있다면 평생 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죠. 연기자들은 그렇게 까지 오래 연기하기 힘들어요. 수시로 감정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사람들이라서 우울증이 없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요즘도 지하철을 많이 이용해요. 나이가 드니까 사람들 시선에서 자유로워졌어요. 옆에서 “안녕하세요” 그러면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함께 수다를 떨어요. 예전에는 기억나지 않지만 요즘은 ‘여배우네 어쩌네’ 하는 고고한 자세는 없어지더라고요. 다만 제일 속상했을 때는 내가 욱하고 화를 냈을 때죠. 정말 화가 날 때 화를 내는 건 괜찮은데, 조금만 참아도 되는데 화를 내면 그게 그렇게 속상하더라고요. 그럴 때 자책감은 말로 표현하지 못해요.
앞으로 계획은 무엇입니까?
마지막 질문이죠? 인터뷰가 너무 힘들었어요. 다리가 후들거려서 사진이나 찍을 수 있을지 몰라. 앞으로 계획은 그냥 하던 것처럼 그렇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더 좋은 일을 바란다는 건 요행을 바라는 것 같아요.

고현정을 특별하게 하는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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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동안, 우아한 각선미
   1971년생인 고현정은 올해 마흔이 됐다. 그러나 외모는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데뷔 때보다 지금이 더 젊어 보인다는 평을 받고 있다. 고현정 하면 ‘동안’을 빼놓을 수 없다. 절대 동안의 비결은 통통하면서도 입체감이 살아 있는 얼굴 윤곽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중 가장 돋보이는 것이 ‘앞 광대’다. 일반적으로 남성적이고 드세 보이는 옆 광대와 달리 앞 광대가 살짝 있는 얼굴은 오히려 입체적인 볼륨감을 살려주기 때문에 한층 얼굴이 작고 어려 보이는 효과가 있다
.얼굴 윤곽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조화로움’이다. 고현정의 얼굴은 전체적인 흐름이 어색하거나 튀지 않고 균형 잡힌 자연스러움이 돋보인다. 즉 얼굴 윤곽의 조화로움이 그녀만의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적당히 돌출된 부드러운 고현정의 앞 광대와 날렵한 턱 선은 시원스럽고 동글동글한 눈, 코, 입을 더욱 돋보이게 하며 아름다운 ‘선’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한다
.여기에 웃으면 올라가는 입 꼬리와 도톰한 입술, 입체적이면서도 동그랗고 귀염성 있는 코 끝, 풍성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눈썹과 동그랗고 또렷한 눈매, 큰 눈동자, 얇은 쌍꺼풀 라인 등이 동안 느낌을 더해주는 주요 요소라 할 수 있다.
고현정은 마른 몸매는 아니다. 그러나 미스코리아 출신답게 시원하게 큰 키와 우아한 각선미를 갖고 있다. 이는 고풍스러운 느낌을 더 한다. 고현정은 이른바 ‘도자기 피부’의 대표주자다. 한 듯 안한 듯 내추럴한 메이크업으로 자연미를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그녀만의 생기 있는 표정, 특별한 꾸밈이나 화려함을 강조하지 않는 분위기는 그녀를 더욱 고고하고 지적인 이미지로 완성시킨다.

style
유행을 따르지 않는 ‘고현정’만의 스타일

여자라면 누구나 고현정에게 풍겨 나오는 분위기를 동경한다. 인형 같은 외모, 에스라인 몸매, 패셔너블한 수많은 연예인 가운데에서도 그녀는 단연 빛난다. 그럼에도 ‘고현정’ 하면 떠오르는 특별한 스타일은 없다. 
고현정은 여느 배우들처럼 공식 석상에 나타나 자신의 개성 있는 패션을 뽐내는 법도 없다. 시상식에는 나타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으며, 어쩌다 참석하는 자리에서는 주로 맨 다리가 드러나지 않은 팬츠나 롱스커트를 입곤 했다. 남들이 입으면 촌스러울 수 있는 패션일 수 있지만, 그녀만의 방식으로 기품 있고 세련되게 소화해냈다.
그녀의 패션은 오히려 드라마 속에서 빛난다. 특히 <대물>에서 그녀는 두 가지 상반된 스타일을 만날 수 있다. 털털한 성격의 아나운서와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대통령, 두 가지 모습이다.
여성 대통령으로서는 그녀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을 떠올리게 한다. 주로 단아한 투피스 패션을 선보인다. 자칫 지루하거나 나이 들어 보일 수 있는 컨셉트다. 그러나 패턴이나 디자인을 고급스럽고 화려한 것으로 선택해 고급스러움을 강조했다. 여기에 큼지막한 귀걸이나 브로치 등 럭셔리한 주얼리로 포인트를 줌으로써 격식을 갖춤과 동시에 기품이 느껴지도록 했다.
아나운서로서 스타일은 단정한 라인의 슈트나 단색의 드레스셔츠를 선택해 깨끗한 이미지를 연출했다. 여기에 블랙 백팩을 맨다거나 앵클부츠를 매치해 활동적인 성격을 부각시키고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헤어스타일은 주로 군더더기 없는 업스타일을 선호한다. 아나운서 시절을 연기할 때는 일명 ‘벼머리’로 화제를 모았다. ‘벼머리’란 앞머리와 옆머리를 같이 따는 스타일로, 색다르면서 여성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요즘 인기를 끄는 스타일이다. 대통령을 연기할 때 연출하는 업스타일 역시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준다.
attitude
당당함과 솔직함

한국에서 여성 대통령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될까? 원작이 있는 드라마는 언제나 캐스팅 논란이 있기 마련이다. 이미 원작을 접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고정된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제 각각. 그러나 서혜림 역에 고현정이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에 누구 하나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원작 캐릭터와도 어울리지만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로 나서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녀에게는 여장부에게서 느낄 수 있는 당당함이 있다.
컴백 이후 그녀는 조인성, 천정명 등 인기 절정인 연하 남자배우와 호흡을 맞췄다. 당시 그녀는 이들과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했다. 여기에 그녀는 과감한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를 적극적으로 해명하기보다는 “내가 조인성에게 결혼하자고 했다”고 말한 것.
그녀의 거침없는 발언은 어떤 곳에서든 계속된다. <대물> 제작 발표회에서 그녀는 “이번에 ‘결혼하자’고 말할 남자 배우가 없어서 아쉽다. 난 별로 안 가린다. 필이 오면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긴장들 하고 있어야 한다. 빈틈이 보이면 바로 공략한다”고 농담해 논란이 됐다. 이 때문에 “유부남도 오케이”라는 기사가 나기도 했고, 네티즌으로부터 비난도 받았다. 또한 이 자리에서 그녀는 “일을 할 때 (공사) 구분을 못하는 애들을 보면 짜증난다”고 한다거나, 경쟁작인 <도망자>에 대해서 “<도망자>가 좋으면 <도망자>를 봐도 된다. 자기가 좋은 드라마 보면 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자기감정을 숨기지 않은 솔직함 그리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던 상관하지 않는 대범함에 있다.
팬들의 반응은 호불호로 나뉜다. “역시 고현정이다. 솔직해서 좋다”는 의견도 있지만, “예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어차피 모든 사람을 팬으로, 혹은 내편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 솔직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걸 좋아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러한 당당함과 솔직함은 그녀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고, 이는 다른 배우와 그녀를 구분 짓게 하는 특별함이다.
acting
카리스마와 능청스러움

<대물>은 일찌감치 <도망자>를 따돌렸다. 드라마가 본격적인 궤도에 접어들면서 시청률은 두 배 가량 벌어졌다. 작위적인 설정, 감독과 작가의 교체설, 고현정 하차설 등 수많은 불안 요소에도 변함없이 채널이 고정되는 이유는 배우들, 특히 고현정의 안정된 연기력에 있다. 그녀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여자 대통령이라면 저 정도는 되어야’라고 생각할 정도다. 그녀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시청자들을 극에 온전히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고현정의 연기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그 정점을 찍은 작품이 바로 <선덕여왕>이다. 그녀가 맡은 ‘미실’은 고현정의 연기력으로 생명력을 얻었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와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잔인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했다. 미실은 그녀의 매력이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였다. 미실로 그녀는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2009 연기대상을 거머쥐었다.
고현정의 연기력은 15년 전부터 인정받았다. 당시 그녀는 신인답지 않은 안정된 연기로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등 연이어 대작에 출연했다. 대배우들과 나란히 연기해도 주눅 들지 않은 당당함과 어떤 역할을 해도 드러나는 기품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10년이라는 공백기를 지나 연기자로 복귀했을 때, 그녀의 연기는 훨씬 깊어지고 원숙해졌다. 컴백 작인 <봄날>에서 보여준 내면 연기는 아직도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이후 그녀는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왔다. 가끔은 ‘너무 모험하는 것이 아닌가’ 할 때도 있다. <여우야 뭐하니>는 특히 의외의 작품이었다. 남자 경험 없는 성인잡지 기자 역할로, 그녀에게는 첫 코믹 연기 도전이었다. 이미지 변신의 위험성과 낮은 흥행 확률이 예견되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그녀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재미있는 소재와 맞물리면서 기대를 뛰어 넘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 드라마가 그 정도의 주목을 받았을까. 이후 택한 드라마마다 성공을 거두면서 ‘흥행 보증수표’로 인정받게 된다. 작품을 고르는 눈과 어디서든 빛나는 연기력, 이 두 가지가 빚어낸 결과다.

Idol Star Best 6

  2AM  조권 

조권은 확실한 자기 색깔을 가졌다. 현재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장 잘나가는 아이돌 스타로 꼽히는 그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라면 망가지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가는 몸매로 일명 ‘깝춤’을 추거나 연상의 아내(<우리 결혼했어요> 중)에게 아이처럼 사랑을 보채기도 한다. 꼭 안아주고 싶은 이 남자, 여성의 가장 강한 본성인 모성을 자극한다. 반대로 가수로는 남성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가창력과 감성은 기본, 탄탄한 복근과 팔 근육으로 ‘짐승돌’의 면모까지 갖췄다.



믹키유천동방신기 시절 믹키유천은 ‘우윳빛깔 미소’가 매력적인 예쁘장한 아이돌 스타였다. 귀공자풍 얼굴에, 쏙 들어간 보조개는 그를 더욱 사랑스럽게 한다. 그의 목소리는 저음이든 고음이든 부드럽다. 여기까지는 그의 일면에 불과하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 그는 숨겨진 또 하나의 매력을 드러냈다. 팬들을 잠 못 이루게 하는 건 무뚝뚝함과 고지식함 속에 숨어 있는 다정함이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미세하게 흔들리는 그의 눈빛이었다. 절제된 그의 목소리는 가슴 속 가장 깊은 곳을 건드려 메아리치게 한다.


2PM  닉쿤
다비드상을 연상시킬 만큼 조각 같은 얼굴, 180센티미터가 넘는 훤칠한 키, 여기에 운동으로 단련된 근육질 몸매. 이것만으로도 그는 완벽하다. 그러나 그를 특별하게 만드는 매력은 따로 있다. ‘태국왕자’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그에게는 왕족의 품위가 묻어난다. 서툰 발음은 오히려 그를 더 사랑스럽게 한다. 그의 눈웃음은 상대방을 무장해제시키는 능력을 가졌다. 해맑게 웃는 모습은 천사와 같다. 아이스크림보다 달콤하고 부드럽다.

FTIsland  이홍기
일본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스타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노란 머리, 때로는 빨강 머리로 불쑥 나타난다. 설령 그 머리가 단발이거나 묶음 머리라 해도 좋다. 그의 애교스러운 웃음 한 방이면 모든 것이 용인된다. 그에게는 탄산수 같은 톡 쏘는 매력이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이 남자. 어느 날 갑자기
다 버리고 자유롭게 떠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영원히 소년에 머물러 있을 것 같은 장난꾸러기.
BEAST 이기광
그는 완벽하지 않다. 180센티미터가 훌쩍 넘는 수많은 아이돌 중에서 그는 드물게 170센티미터 작은 키의 소유자다.
예능 스타로 떠오르고 있지만 과감하게 망가지지는 않는다. 훈남인 척 가식도 부리지 않는다. 귀여움과 사랑스러움? 그런 것도 없다. 대신 그에게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버리는 과감성이 있다. 짜증이 나면 짜증을 낸다. 그런데 이 모습은 묘하게 귀엽고 사랑스럽다. 비슷비슷한 아이돌 스타들 틈에서 그가 더 특별한 이유다.

 
CNBLUE  정용화

깨끗하고 뽀얀 피부를 가진 정용화는 동화 속 왕자님을 닮았다. 살짝 처진 눈과 도톰한 입술은 누나들의 보호 본능을 일으키지만 시크한 턱 선에서는 타협을 모를 것 같은 고집스러움이 묻어난다. 여자의 마음을 모르는 듯 무심하게 보인다. 그런 남자의 따뜻함은 더 감동스러운 법이다.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서와 달리 록그룹 멤버로서 그는 더 없이 남자답다. 거칠고 부드러운 면을 모두 겸비한 이 남자, 치명적이다.  

마음에 별이 되어준 당신, 감사합니다



<아저씨> 원빈
2010년은 단연 <아저씨>, 원빈의 해였다. 투박하고 단순한 ‘아저씨’라는 단어가 그로 인해 더없이 특별해졌다.
그는 이제껏 스크린 속에서 누군가에게 보호를 받아왔던 캐릭터였다. 형에게 혹은 엄마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런 그가 소년의 이미지, 곱상한 외모의 한계를 깨고 테스토스테론이 넘치는 강한 남성이 됐다. 변신은 더없이 성공이다. 대종상 남우주연상은 그에게 덤일 뿐이다. 영화에서 강한 남성성을 보여줬다면, CF에서는 더없이 달콤한 남자였다. 아저씨의 대명사가 된 원빈. ‘아저씨’가 그냥 커피라면, 원빈은 TOP다.



<된장> 이요원
‘선덕여왕’ 이요원이 올해 선택한 작품은 다른 아닌 영화 <된장>이다. 희대의 살인마의 걸음을 멈추게 한 된장의 비밀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영화로, 장진 감독이 제작자로 나서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흥행은 물론, 이 영화의 존재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 영화 속 주인공과 이요원은 비슷한 부분이 있다. 영화 속 미스터리한 비밀을 간직한 여인처럼 그녀는 좀체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는다. 영화와 관련해 홍보 활동을 전혀 하지 않은 이유에는 이러한 성격도 한몫 했을 것이다. 대한민국 영화대상 레드카펫에 나타난 이요원은 오프 솔더 순백색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베일에 싸인 듯한 그녀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드레스였다.



 <하녀> 전도연50년 전 김기영 감독의 화제작을 리메이크한 <하녀>는 개봉 전부터 숱한 이슈를 뿌렸다. 일단 전도연이 출산 후 택한 첫 번째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고, 게다가 노출 수위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남자의 아내와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도 그녀는 여전히 프로였다. 아쉬움을 많이 남겼던 이 영화에서, 순박함과 광기를 넘나드는 전도연의 연기력은 단연 압권이었다. 여유로운 모습으로 레드카펫에 등장한 그녀는 더 아름다워졌다. 귀여운 뱅 헤어스타일에 건강해 보이는 구릿빛 피부, 슬릿이 들어간 파격적인 드레스…. 세 번째 대종상 여우주연상은 도전에 그쳤다. 그래도 어떠랴. 그녀는 세계가 인정한 배우인 것을.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서영희
바야흐로 서영희의 시대다. 올해에만 그녀가 수상한 여우주연상은 모두 네 개. 대한민국 영화대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판타스틱페스트 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그녀를 올해 최고의 여배우로 꼽았다. 데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개성 있는 조연을 맡아온 그녀는 영화 <추격자> 이후 연기 인생에 서광이 비쳤다. 대한민국영화대상의 수상 소감에서 그간의 어려움이 묻어났다. “왜 나는 한 계단이 높고 험난할까 많이 생각했다. 내가 자질이 없는 건가? 그만 둬야 하나? 꿈은 꿨지만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배우로서 인정받아서 기쁘다.” 올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만 세 편이다. 서영희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이다.



 <시> 윤정희, 김희라대종상 여우주연상은 <시>의 윤정희에게 돌아갔다. 그녀에게 통산 세 번째 대종상 여우주연상이다. 16년이라는 공백이 거름이 된 것일까. 그녀의 연기는 평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이고 뭉클하기까지 했다. 감동의 물결은 나라 밖까지 흘러 넘쳤다. 윤정희는 지난 5월 칸영화제에서 강력한 여우주연상 후보였다. 이 영화에는 또 한 명의 관록 있는 배우가 출연했다.
김희라다. 사업 실패, 뇌졸중 등 연이은 악재로 인해 대중과 멀어졌던 그는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블랙 슈트에 보타이

대한민국 영화대상에 참석한 남자배우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블랙 슈트에 보타이를 맸다. 악마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 <악마를 보았다>의 최민식,
드라마 <파스타>를 통해 최고의 까칠남으로 등극하고 올해 <옥희의 영화>에 날 것의 연기를 보여준 이선균, <깡패 같은 내 애인>으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박중훈. 비슷한 의상을 다른 분위기로 소화해낸 이들의 센스가 놀라울 따름이다.



드레스 코드, 블랙!
약속이라도 한 것일까? 대종상 시상식에 참가한 몇몇 배우들을 제외하고, 여배우들은 모조리 블랙 롱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에 섰다. 이날 사회를 맡은 김정은은 한쪽 어깨만 드러난 심플한 블랙 드레스를 입었다. 김윤진은 정교한 어깨 장식이 돋보이는 블랙 드레스를 선보였고, 황정음은 한쪽 어깨만 드러난 원피스에 슬릿이 들어간 드레스로 섹시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조여정은 가슴골 라인이 살며시 드러나는 블랙 튜브톱 드레스로 차별화를 줬다. 그런가 하면 이민정의 드레스는 하얀 코르사주로 포인트를 줘 소녀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이날의 승자는 민효린이었다. 가슴이 살짝 드러나는 오프 숄더에 반짝이는 장식으로 강조한 허리, 로맨틱하게 부푼 치마는 마치 파티에 참석한 신데렐라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