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6, 2011

음악 신동에서 훈남 기대주로


‘진짜 공연은 이제부터 시작’

지난 4월의 어느 날,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명동의 한 거리에서 화려한 디자인의 피아노 한 대가 세워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피아노 연주 소리. 점심을 먹기 위해 나온 이들의 발걸음을 잡은 건 피아니스트 지용의 연주였다. 수많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기보다는 그의 음악에 매료되어 발길을 멈췄다.
지용은 10세이던 2001년, 뉴욕 필이 주최한 영 아티스트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기반으로 쿠르트 마주어의 지휘로 뉴욕 필과 협연하며 데뷔무대를 화려하게 치렀다. 이후 11세 때에는 세계적인 매니지먼트사인 IMG에 최연소 피아니스트로 들어가며 ‘피아니스트 신동’‘제2의 키신’(러시아의 유명 피아니스트) 등의 화려한 타이틀까지 얻게 된다.
그가 어린 시절 피아노를 공부하기 위해 한국을 떠나 지낸 지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온 그는 대중과 가장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거리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이번 길거리 게릴라 공연은 5월 15일에 열린 BBC오케스트라와 국내 첫 협연 무대를 앞두고 관객과 먼저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3일 동안 명동, 서울아산병원, 여의도 공원 등에 등장해 바쁜 도시인들에게 피아노 선율을 들려주며 잠깐 동안의 여유를 선물했다.
“공연 자체가 즉흥적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형식이어서 그런지, 격식 없는 아주 친근한 분위기였습니다. 공연 중간 중간에 멘트도 할 수 있었어요. 독특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는 것이 저에게도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을 때, 내가 이런 공연을 할 수 있을까 막막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런 경험을 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기쁘고 놀라운 일입니다.”

평범함 속 비범함을 꺼내다

한없이 해맑은 미소가 트레이드마크인 그의 모습을 보면 여느 스무 살 청년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연주가 시작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안에 담겨진 내공과 카리스마는 감히 범접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는 마치 그의 음악 인생과도 닮아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음악과 가까이할 수 있었다. 성악가 출신이자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던 어머니는 교회에서 불렀던 찬송가를 혼자 연주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일찌감치 아들의 재능을 감지했다. 그렇게 그의 음악의 길은 시작됐다. 이후 한국종합예술학교 예비학교에 다니면서 기본기를 닦아나갔다. 그곳에서도 그는 한국 쇼팽 콩쿠르 등에 우승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더 큰 무대로 나가라는 주위의 권유에 그의 부모님은 미국행을 결심하게 된다. 그가 9살 때 일이다. 윤리 교사인 아버지, 피아노 강사인 어머니와 함께 안정된 한국 생활을 버리고 온 가족이 그의 꿈을 위해 도전을 한 셈이다.
미국에서의 삶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그의 가족은 여느 한국 이민자들처럼 세탁소를 운영하며 어렵게 생활을 이어갔다. 부모님의 희생을 보고 자란 그는 그럴수록 더욱 열정적으로 음악에 대한 사랑을 키워갔다. 손목에 ‘아빠, 엄마, 누나’를 의미하는 별 모양의 문신을 새긴 것도 언제나 가족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에게 있어 가족은 또 다른 그의 모습을 담고 있다.
미국에서 그의 삶은 음악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홈스쿨링을 하며 음악에만 전념한 것이 아니라 여느 고등학생들처럼 평범하게 학창시절을 보내며 음악을 공부했다. 뮤지션으로서 좀 더 빨리 명성을 얻기보다는 연주 인생을 길게 보고 한 걸음씩 깊이 있게 성장하기를 바란 것이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음악가의 길이었다.
“뉴저지의 라마포 고등학교를 다니며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 똑같이 수업을 듣고 시험도 치고 마음껏 놀았어요. 연주 연습을 하러 간 곳에서도 과제물을 한 아름씩 안고 있기도 했습니다. 제가 원한 결정이었죠. 가족들은 그런 저를 믿어줬어요.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아티스트로서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는 대중이 ‘클래식은 일부 계층만의 전유물’이라 생각하는 건 음악가들이 자신의 세계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 믿는다. 다른 음악가들과 똑같은 길을 걷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것을 보고 들은 그의 연주는 그래서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의 실력은 <시카고 트리뷴>지의 평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6년 시카고의 오케스트라 홀에서 가진 그의 시카고 데뷔 무대에 대해 ‘놀랄 만큼 성숙한 소리와 스타일을 가진 연주자’‘넘치는 재능과 감각으로 반드시 대성할 것이다’는 등의 호평을 받았다.
크리에이티브를 위한 새로운 도전
2001년 뉴욕에서 뉴욕 필과 데뷔 무대를 화려하게 치른 그는 이후로도 시카고 오케스트라 홀, 프라하의 스메타 홀,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 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한국을 떠난 지 7년 만인 지난 2007년에는 한국에서 첫 독주회를 열기도 했다. 올해 19세인 그는 나이를 넘어서는 음악적 깊이와 테크닉을 모두 지닌 피아니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음악 인생에 정점을 찍고 있는 현재,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더욱 견고한 기반을 다지기 위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10년 솔로 활동을 시작하며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키워드는 바로 ‘크리에이티브’다. 이는 그간의 행보를 통해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지난 4월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과 함께한 무대에서 발레와 피아노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색다른 연출을 보여준 것. 이 외에도 지난 거리무대에서 선보인 화려한 색상의 피아노를 위해 팝아티스트 김태중과도 호흡을 맞췄다. 클래식이라고 하면 기존의 검은색 그랜드 피아노를 연상했던 대중의 선입견을 깨는 신선한 발상이었다.
“저와 매우 친한 친구들이 줄리아드 댄스 전문교육기관에 소속되어 있는데, 운 좋게도 저는 이 친구들을 통해 무용수와 함께 작업해볼 수 있었어요. 함께 무언가를 크리에이티브하게 만들어가는 것 자체가 너무 좋습니다. 이런 모든 작업은 예술을 좀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죠. 저의 이런 의도를 알았는지 재미있는 제안이 들어왔고, 흔쾌히 응했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이런 방식으로 계속 작업하고 싶어요.”
기존의 인식을 통렬하게 깨는 건 그의 취향으로도 알 수 있다. 존경하는 뮤지션으로 화려한 퍼포먼스와 자신만의 뚜렷한 개성을 지닌 것으로 유명한 팝가수 레이디 가가를 서슴없이 꼽았기 때문. 자신을 표현할 줄 알고 숨김없이 모든 것을 보여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레이디 가가의 곡들을 자신만의 느낌으로 연주하면서 언젠가 함께 무대에 서는 날도 상상해본다.
“기본적으로 저는 모든 종류의 예술에 마음을 열고 있습니다. 패션 역시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트워크 중 하나입니다. 저로 인해서 ‘클래식하는 사람도 패션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드릴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이런 다양한 분야를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대중과 소통하는 클래식을 꿈꾸다

그는 지난해부터 앙상블 ‘디토(Ditto)’에 참여했다. 디토는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을 비롯한 젊은 남성 연주자들이 모여 만든 클래식 프로젝트 그룹이다. 탄탄한 연주 실력을 기반으로 세련된 스타일, 깔끔한 외모 등으로 클래식계의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는 이들이다. 창단 3번째 시즌을 맞이해서 올해 디토 멤버로는 음악감독 용재 오닐(비올라), 수필가 故 피천득 선생의 외손자 스테판 재키브(바이올린), 패트릭 지(첼로), 쟈니 리(바이올린) 등 원년 멤버 4명 외에 피아니스트 지용과 첼리스트 마이클 니컬러스가 가세했다.
“처음에 디토의 기획사에서 저를 찾아 뉴저지까지 왔고, 좋은 취지를 들을 수 있었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건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다’라는 느낌이 바로 왔습니다. 정말 존경하는 형들과 함께하게 돼서 배울 점이 많습니다. 연주 이전에 형들로서도 정말 좋은 사람들입니다. 멤버들 중에서 제가 가장 어려요. 하지만 음악을 하는 이들에게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좋은 곡을 연주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것까지도 음악인의 역할이라고 믿는 그에게 디토의 다양한 활동을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6월에는 일본 무대에까지 오른다. 일본의 스타 바이올리니스트 고토 류의 적극적인 러브콜로 성사됐다. “일본 공연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저뿐만 아니라 디토 멤버들 모두가 흥분한 상태죠. 우리는 매일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그 공연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눠요. 더 많은 관객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잘됐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Stop & Listen>이라는 또 다른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극히 이례적으로 디지털 싱글 앨범까지 출시했다. 이번 앨범에는 모차르트의 ‘아, 어머님께 말씀드리죠 변주곡’, 쇼팽 폴로네이즈 ‘영웅’,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 등 평소 그가 가장 아끼는 피아노 소품들을 담았다. 언제나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에게는 늘 최고의 수식어가 붙곤 한다.
“언제나 ‘최연소’‘영재’ 등의 수식어를 붙여주셨어요. 굉장히 뿌듯하고 영광스럽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리고요. 하지만 그런 타이틀에 연연하기보다는 저만의 개성을 가진, 특징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클래식 연주자로서 대중에게 친근하게 클래식 음악을 알리고 싶어요.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는 아티스트로서 저의 재단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돕고 싶은 꿈도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피아노와 함께 해오며 힘겹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피아노를 멀리한다는 생각은 꿈에서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는 피아노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통해 기쁨을 느끼고, 피아노를 통해 꿈을 꾸는 그에게는 매일이 새로운 무대다.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하는 그의 무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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