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홍요섭을 인터뷰하기 며칠 전, 매니저에게 베스트를 포함한 스리피스 정장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 정장 재킷은 무난한 블랙보다 체크 무늬가 들어간 캐주얼한 느낌이 좋겠다고 했다. 가능하면 캐멀색 코트도 여벌로 요청했다. 그만큼 신사의 이미지가 잘 어울렸다. 반대로 목숨까지 내걸 만큼 도전을 즐기는 모험가이기도 했다.
데뷔를 굉장히 오래전에 했네요. _활동을 띄엄띄엄 했어. 1980년대는 상황이 많이 달랐지. 하고 싶은 역이 있어도 맘대로 하지 못했고, 할 수도 없었어. 배우가 작품을 선택할 기회가 거의 없었거든. 시나리오 받아보면, 바지부터 벗는 게 많았지. 시대가 그랬어. 여기에 휘둘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니까 활동도 뜸해졌어.
요즘은 자주 나오시잖아요. _지금 내게 이곳(방송계)은 재밌는 곳, 가끔 생각나는 곳일 뿐이야. 살아보니까, 인생 사는데 뭐 목숨 걸고 이런 거 없어요. 이제는 목숨 내놓고 하진 않아요. 그만큼 귀한 것도 없고. 그때 잠깐인 거지. 이제는 말할 수 있어요.
연기를 시작할 때도 치열함보다 재미가 우선이었나요? _처음엔 치열했지. 치열하다기보다... 소위 말하는 시대에 대한 반감이었지. 우리 시대에 연극이나 연기를 시작하는 건 다 그래. 탈출구였지. 지금도 그 이상의 의미를 두지는 않아. 재미있고 뜻이 있는 곳이지만, 목숨 걸고 할 만한 게 배우라고는 생각하지 않거든. 재밌는 건 많아. 이것저것하면서 길을 찾아가는 거지. 스쿠버다이빙도 그랬고, 골프도 마찬가지고.
한때 그는 남태평양에 머무르며 스쿠버다이빙에 빠졌다. 해양스포츠 전문지 <해저여행>에는 그가 쓴 글이 여러 편 있다. 골프 실력은 싱글. 티칭 프로 자격증이 있고 대학에서 골프 관련 강의를 한 적도 있을 만큼 상당한 수준이다. 하지만 무릎을 크게 다치는 바람에 지금은 손 안 댄 지 오래. 대신 승마에 발을 들였다. 승마는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요? _무릎을 다쳤는데 병원에서 말을 타라고 하더라고. 해보기 전엔 부르주아 스포츠라고 생각했어. 근데 해보니 굉장히 좋은 운동이야. 어떤 부부에게 소개시켜줬는데 나중에 고맙다며 산삼까지 받았다니까.
‘올레’라는 애마가 있다고 들었어요. _어려서 철이 없어. 다섯 살이야. 2008년엔가 샀는데, 그때 갑자기 올레 CF가 뜨더라고. 그래서 올레라고 지었어.
낙마 조심하셔야겠어요. _여러 번 떨어졌는데, 괜찮아.
승마하기 전에는 오지 여행도 많이 다녔다고 들었어요. _주접도 많이 떨었지. 사진전도 열고. 고작 몇 달 다녀와서 원고지도 얼마 안 나오는 걸 가지고 글도 쓰려고 했어. 글을 재밌게 풀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말이야. 근데 카메라 던져놓고 나가기 시작하니까 얼마나 편한지 몰라.
카메라 놓고 다닌 건 언제쯤이셨어요? _한 11년 됐지. 그 전엔 사진도 많이 찍고, 뭘 남기려고 했어. 기록하는 걸 좋아했거든. 그냥 가서 가만히 돌아다니고 이러면 얼마나 재밌는데. ‘사진을 찍어야겠다, 뭔가를 기록해야겠다’ 하는 순간 힘들어져. 나 같은 사람이 뭘 남길 이유가 있겠어.
에이, 아니에요. _인터뷰도 가끔 이렇게 한 번씩은 해요. 부풀려지고 왜곡되는 게 싫어서 자주는 안 해요. 그리고 뭐 얘기할 게 있어야지. 영화를 찍는다거나, 이혼했다가 재혼을 한다든가.(웃음) 내가 하는 말이 잘못 받아들여지면 ‘저 사람은 (뜸하더니) 놀았구나, 부진했구나’ 하고 생각해요. 다른 식으로 포장되는 거, 제일 싫어해요. 난 그동안 아주 치열했거든.
TV에서 보는 그대로 그의 목소리와 말투는 낮고 차분했다. 하나 더하면 신중했다. 연기도 하고 싶지 않은 걸 억지로 하기보다 아예 안 하는 걸 선택했다. 그래서 작품 활동보다 취미 활동에 더 깊이 빠졌다. 질려서 싫을 만큼, 다쳐서 못할 만큼. 그렇게 돌아 돌아 다시 연기하는 배우로 왔다.
<이웃집 웬수> 끝나고 <프레지던트> 하고 계시잖아요. _그건 뭐, 들러리 한 번 서달라고 해서 서주는 거야.
정치인 역할인데, 어떤가요? _바른 사람이지. 바른 정치인 해보려고 정도를 걷는 사람인데 오히려 ‘왜 저렇게 답답하냐, 정치를 모르네’ 하는 소리를 듣는 사람. 그런 사람이 정상으로 보여야 맞는데 외계인으로 보인다는 거지.
사극은 한 번 해보셨잖아요. 현대극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_힘들더라고. 움직임이 힘들어. 뛰어다녀야 되고. 근데 현대극은 더 힘들어. 사극은 과장되게 말하고 행동하면 되거든. 요즘은 미니시리즈에서 총 쏘고 뭐 그런 걸 하는데, 난 그런 걸 사극이라고 말해. 칼이 총으로, 말이 스포츠카로 바뀌었을 뿐이지. 그런 건 영화에서나 다루는 거지. 내용도 과장돼 있고 현실 감각이 없어. 안방이나 거실에서 쉬면서 보는 게 드라마인데, 그 메커니즘이 깨지니까 엉망이 된 거야. 그런 것만 보고 자란 애들이 어떻게 클까 고민해야 돼.
사극이 TV로 방영되면 안 된다는 건가요? _정통사극은 괜찮아. 근데 변형된 사극은 아니라는 거지.
사극은 <자명고> 한 편 찍으셨는데, 또 사극 제의가 들어오면 하실 건가요? _해보고 싶어. 시청률이 너무 안 나왔거든. 수염도 붙여보고, 재밌었어.
지금은 전보다 시나리오를 덜 가려 받으시죠? _응. 예전엔 먹어보지도 않고 거절했어. CF도 안 한다 그랬는데 지금은 안 그래. 연기를 하면서 ‘홍요섭 때문에 이 작품 망했다’ 소리는 안 듣고 싶어. 진짜 이 일(배우) 하고 싶은 사람들 많아. 중년배우도 마찬가지지. 이순재 선생님 같은 분들은 거의 1만 명 중 한 명이야. 시작부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남아 있지 못하는 이유는 뭔가요? _자의로든 타의로든 관두는 거지. 20~30대까지 많이 추려지고. 30~40대에는 훨씬 더. 50대에 가서는 아버지 역을 할 배우가 거기서 거기야. 할아버지 역을 할 사람은 아버지 역을 했던 사람 중 1~2명이야.
이순재 선생님처럼 계속 연기하고 싶으세요? _재미있으니까 하고는 있는데, 잘하는 사람 많으니까.
재미있어서 하는 연기. 어떻게 배우의 길로 접어들게 됐을까. 먼저 학창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는지 물었다.학창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는지 궁금해요. _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은 내가 배우라는 데 황당해하는 친구들이 많아.
조용했구나. _지금도 끼는 없어.(웃음)
평범한 학생, 그뿐이었나요? _집안 분위기가 엄격했고, 형제들 성격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부딪치는 성격이었어. 정치적인 문제아였지. 도망 다니고. 독재는 어쨌든 나쁜 거였으니까.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런 영향을 받게 되더라고. 재수 시절에 양 박사라는 유명한 사람이 있었어. YMCA에서 그 사람이 특강을 한다기에 찾아갔지. 근데 특강은 안 하고 소극장에서 사람들이 연극을 하고 있는 거야. 아주 시원하게 이 말 저 말, 잡혀갈 소리를 막 하기에 무슨 얘기하나 가만히 들었어. 그날 이후 대학에서 연극 수업을 듣기 시작했지.
전과를 한 거에요? _응. 결국 그 졸업장(중앙대 연극영화과) 가지고 아무것도 못하게 만든 거지. 취직도 제대로 못 했고.
정을영 PD와 인연이 있다고 들었어요. _같이 작품을 많이 했으니까. 많이 싸우기도 했고.(웃음) 그 아들(정경호)과 사극을 같이 찍으면서도 몰랐어. 나중에야 알았지. 세월이 이렇게 빠르구나. 돌잔치도 갔는데 말이야.
정경호 씨는 후배로서 어땠나요? _요새 친구들 같진 않았어요. 오래 할 수 있는 배우다 아니다가 이젠 감이 오는데, 오래 할 것 같아.
<다함께 차차차> 종방연 때 열악한 제작 환경에 대해 한 마디 하셨던데. _열악하죠.
출연료 문제를 지적한 건가요? _캐스팅 비용은 어쩔 수 없다고 봐요. 그들이 그만큼 벌어들이잖아. 중국에서 벌어오고 일본에서 벌어오는 걸. 제작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안 할 수가 없지. 배우가 벌어들일 수 있는 가격을 책정하니까.
그럼 무엇에 신경을 써야 할까요? _정책이 필요하겠지만, 제일 중요한 건 ‘자성’이겠지. 난 시상식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오라 그래도 안 가. 한두 달 인기 있다고 (드라마가) 진행되는 중에 상을 주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어. 프로덕션의 힘 때문에 그래. 타이틀(수상 경력)이 걸려야 되니까. 그래야 하나라도 더 팔 수 있거든.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전부터 쓴소리는 곧잘 하셨죠? _옛날에는 쓴소리 심하게 했지. 그래서 한 3년은 방송 못 했어. 떠날 수도 있었지. 근데 못 떠나는 친구들도 있잖아. 보기 싫다고 떠나는 것만이 다는 아닌 것 같아.
이순재 선생님이나 정보석 씨처럼 이미지 변화를 시도할 생각은 없으세요? _안 그래도 얼마 전 영화 시나리오가 하나 들어왔어요. 근데 역할이 조폭 대장이야. 그야말로 완전 변신이었지. 첫 대사가 욕부터 시작해. 차 안에서 내가 대사를 읊조리니까, 우리 매니저가 “선생님, 그냥 하지 마세요”하더라고.(웃음) 그러니까, 이건 변신이 아니라 배신인 거야. 내가 20~30년 하면서 만들어온 이미지를 너무 저버리는 것도 팬들에 대한 배신이거든. 기존의 내 모습에 바라고 기대하는 게 있으니까. 그래서 너무 다른 쪽으로 가는 것도 아닌 것 같아.
꽃중년이라는 별명이 맘에 드느냐고 묻자, 그는 ‘나쁘진 않다’고 답하며 웃었다. 기존의 이미지에서 너무 벗어나는 건 변신이 아닌 배신이라고 했다. 남태평양 해저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할 만큼의 모험심은 여전하지만, 캐릭터에서 그만한 도전을 보기는 힘들 것 같다. 기자 역시 지금의 이미지 그대로를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이 조금은 있었다.
딸이 있으면 저만한 나이일 것 같아요. _87년생.저보단 어리네요. _(웃음)
자식들도 선생님처럼 하고 싶은 걸 하도록 내버려두는 편인가요? _어려서부터 뭘 시키질 않아서 한 박자씩 느려. 2~3년씩 늦어도 되니까, 하고 싶은 거 하라고 놔뒀거든. 그랬더니 초등학교 때 보면 둘 다 늦자라더라고.
뭐가 하고 싶다고 하던가요? _딸은 법 공부한다고 법대에 갔어. 지금 로스쿨 준비 중이야. 큰애에게 철학을 공부하라고 했어. 아니면 심리학이나. 혼자 고시원에 처박혀 책만 읽는다고 좋은 의사 되고 판사 되는 거 아니거든. 우물 안을 생각하면 안 된다. (철학이) 제일 답답한 학문이지만, 가장 기본이기도 하니까.
아들은 아빠를 닮았나요? _축구하고 놀다가 공부는 좀 늦게 떼었지. 중2 때까진 그냥 놀았어. 대안학교에 다니다가 지금은 외국 가 있어. 잘 못 따라갈 것 같더니 이젠 잘 따라가더라고. 외국은 수준이 몇 년 늦으니까. 화상 채팅을 거의 매일 1시간씩 해서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자주 보는 것 같아.
공부를 강요하는 부모가 아니라 좋네요. _그래도 요즘은 조금 푸시하고 있어.(웃음) 자식들과 많이 못 놀아줘서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가족이란 게 원체 그런 것 같아. 우리는 서로의 생활에 간섭하지 않아요. 어쩌면 놀아준다는 것도 허세 같아.
사모님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_1980년대 초에 우연히 장인, 장모님을 알게 됐어요. 데뷔 초라 인기도 있을 때였지. 나를 좋아하셨어요. 배우라는 직업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웃음) 어느 날, 집에 딸이 하나 있는데 밥이나 한번 사주라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만나게 됐어요.
어떤 부분이 맘에 드셨나요? _수더분해요.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는 일에 간섭하는 성격도 아니고요. 신뢰가 가장 중요하겠죠. 10개 중 다섯은 좋고,
세 개는 대화로 풀고, 남은 두 개는 개성으로 남겨둬요. 그렇게 서로 이해하면서 살아요.
가족이 함께한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언젠가요? _아들이 대안학교에서 서너 달 기본 과정을 마친 다음,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어요. 근데 그때 드라마를 찍다가 갑자기 다리가 주저앉았지. 골프 때문에 아팠던 무릎이 버티다 버티다 그렇게 된 거야. 수술했어요.
여행은 못 가셨겠네요? _휠체어 타고 목발 짚고 다녀왔어요. 11박 12일쯤이었나. 다들 무리라고 했지. 그래도 아들과 약속했으니까. 힘든 여행이었는데,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아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그에게 다음 여행지는 어디냐고 물었다. 웬만한 오지는 다 돌아다녔지만 안 가본 곳이 한 곳 있다고 했다.
“알래스카. 제일 가고 싶은 곳이라 아껴놨는데 이젠 늙어서 못 갈 지경이 돼버렸어.(웃음) 1~2년 내에는 가야할 것 같아. 돌아가신 아버지가 꼭 구경하고 오라고 하셨거든. 내가 만날 힘든 데 가니까 아내가 별로 좋아하진 않아요. 그래도 이번엔 같이 가려고. 기간은 최소 2, 3주는 돼야 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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