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6, 2011

영화제작자로 변신한 탤런트 송기윤의





저예산으로 제작된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제30회 영평상, 제47회 대종상, 제8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등 지난해 주요 시상식에서 감독상, 여우주연상, 작품상 등을 휩쓸었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당초 잔혹한 표현과 투자문제로 개봉 여부조차 불확실했으나, 제63회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대되면서 새롭게 조명을 받은 작품이다. 당초 30여 개 상영관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연이은 수상소식으로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며 개봉관을 100개까지 확대해 전국에서 16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 같은 성적은 저예산영화 신드롬을 일으킨 <똥파리>의 흥행기록을 뛰어넘는 것이다. 또 그는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에서 영화제작자로서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화제작자는 연기인생의 클라이맥스
“연기자가 영화를 제작하는 것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서 처음에는 영화를 제작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대종상영화제 때 장철수 감독이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저에게 고맙다’는 소감을 말하는 바람에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됐어요.”
그는 ‘필마픽쳐스’라는 영화제작사의 회장을 맡고 있다. 남들에게는 갑작스러운 소식일 수도 있지만, 그는 연기생활을 하면서 항상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읽는 순간 ‘바로 이 작품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받고 눈물을 펑펑 흘렸거든요. 하지만 영화를 제작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예산이 부족해서 속을 많이 태웠고, 무엇보다 잔혹한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촬영지를 섭외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영화촬영지를 여수에 위치한 금호도로 결정하고 촬영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한 스태프가 그곳에 시나리오를 흘리고 오면서 말썽이 생긴 것. 섬 주민 전체가 살인을 당한다는 잔인한 시나리오를 뒤늦게 읽은 그곳 주민들이 강력히 반발했기 때문이다.
“섬 주민들은 영화촬영 이후 관광지로 소문이 날 거라고 기대했는데, 시나리오가 너무 잔혹해서 관광객 유치는커녕 섬 이미지가 오히려 나빠질 거라는 판단을 내렸던 것 같아요. 결국 금호도를 관할하고 있는 여수시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겨우 촬영을 할 수 있었죠.”
이처럼 힘든 과정을 겪은 영화는 관객들과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지난해 가장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이라는 인정을 받았다.하지만 그는 제작자로서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 많다. 영화 속영상미가 생각보다 미흡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번 영화를 찍은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최근 두 편의 영화를 더 제작하고 있다.
“두 번째 영화는 <고래를 찾는 자전거>라는 작품입니다. 울산남구청에서 일부 지원을 받고 촬영을 거의 마쳤습니다. 배우 이문식과 아역배우 출신 박지빈이 출연하는 영화인데, 오빠가 불치병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여동생에게 마지막으로 고래를 보여주기 위해 남원에서 장생포로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입니다.”
그는 세 번째 작품은 엄청난 제작비가 드는 대작이라고 귀띔했다. 시나리오는 이미 완성되었고, 김하늘과 하정우를 섭외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아직 공개할 수 없다.
“영화제작은 제 연기인생의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해요. 영화가흥행을 하든 그렇지 않든 좋은 시나리오가 있다면, 뜻을 함께하는 배우들과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우리나라 관객들의 수준이 높아서 좋은 영화는 반드시 찾아주시거든요.”

나는 평생 광대언제나 입가에 한가득 미소를 머금고 있는 표정과 서글서글한 몸매, 어떤 말을 해도 다정스럽게 들리는 베이스 톤의 목소리. 그는과거에 공처가 역할의 일인자였다. 또 코믹스러운 역할을 주로 맡아왔던 시트콤 연기의 원조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최근 한국경제 TV에서 방영한 <김과장 & 이대리>에 출연해 열연을 펼쳤다. 총 5회 방영된 이 드라마는 종영 후 더 뜨거운 관심을 모으며 다시보기 클릭 건수가 50만 건이 넘는 대기록을 남겼다. 시청자들은 송기윤의 능청스러운 코믹연기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원래 제가 풍자적인 역할을 즐기는 편이라서 마치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었어요. <오경장> <이수일과 심순애> 등 여러 편의 시트콤에 출연한 경험이 있거든요. 유쾌한 일이 별로 없는 요즘,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즐겁게 촬영했어요. 앞으로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고, 울고 있어도 웃음이 나는 그런 연기를 하고 싶어요.”
그는 한때 시청률 제조기였다. <딸부잣집> <바람은 불어도> <궁합이 맞습니다>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 <이 부부가 사는 법> 등 그가 출연했던 드라마는 모두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어려운 시절은 있었다.
“언제나 연기자로서 승승장구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도 오랜 공백기가 있었죠. 그럴 때마다 내게 배역이 없으면, ‘다른 연기자가 그 배역을 맡겠구나’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편안하게가졌어요.”
그는 항상 자신보다는 다른 연기자들을 배려한다. 때문에 그의주변에는 항상 많은 선후배가 있다. 또 지난해 6월까지 한국방송실연자협회 이사장을 맡으면서 작가에게만 지불되었던 재방송료를 연기자도 받을 수 있도록 관철시켰고, 현재는 사단법인 ‘중소기업 성공을 돕는 사람들’이라는 단체의 이사장을 맡으면서 어려운 중소 기업인을 위해서 발 벗고 뛰고 있다.
“세상은 잘난 사람 혼자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연기자든사업을 하는 사람이든 잘나가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서로 돕고 살았으면 하고 바라요. 설사 지금은 남들보다 많은 돈과 명예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걸 지켜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또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을수록 주변을살펴보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 자신이 최고의 자리에 있다고 어려운 사람들을 외면하거나무시하는 경우를 보면 참 안타깝더라고요. 결국 베풀어야 돌아온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요?”
그는 이처럼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서도 항상 주변을 돌아보고 어려운 사람들을 살뜰히 살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많은시청자들은 그가 연기자로 돌아와 예전처럼 왕성한 활동을 하기를 바란다.
“연기는 평생 할 생각입니다. 언제나 광대라는 본분을 잊지 않고 있어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언제든 저에게 어울리는 역할이 있다면 어떤 작품이든 출연할 의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PD나 작가가 갑자기 저를 필요로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긴 여행도 떠나지 못해요.”

요리하는 아빠 장금
송기윤은 1988년 서른여덟의 나이에 CF 모델 출신의 열 살 연하의 아리따운 신부와 결혼했다. 슬하에 우석(20)과 우주(18)남매를 두었다. 대학에 입학한 큰아들 우석이는 엄마를, 고등학교 2학년인 딸 우주는 그를 닮았는데 성격은 그 반대라고 한다. 그의 아내는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특히 그의 딸 우주는 지난해 6월 SBS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에 출연해 뛰어난 미모를 자랑했다.
“결혼이 좀 늦었어요. 원래는 아이를 많이 낳고 싶었는데, 결혼을 늦게 했고, 신혼 초에 아내와 여행을 다니느라 마흔에 첫 아이를 낳았죠. 그래도 두 아이를 키우는 재미가 쏠쏠해요. 특히우주는 딸이라서 애교가 많아요. 피곤에 지쳐 집에 돌아가서 다리 좀 주물러달라고 이야기하면 우석이는 건성으로 몇 번 주무르고 마는데, 우주는 손가락이 아파도 끝까지 주무르죠.”
그는 사업차 미국에 머무르는 아내의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서 여느 아빠보다 아이들을 챙기는 편이다. 특히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잠을 자기 전엔 늘 가족회의를 한다.
“아이들을 모아놓고 일과를 돌아보게 합니다. 혹시 오늘 남에게 피해주는 일은 없었는지 뜻하지 않게 남에게 상처는 주는 말을 하지 않았는지, 정말 하고 싶었는데 용기가 없어서 망설인 적은 없었는지를 물어봐요. 아이들은 하루쯤은 거르고 일찍 자고 싶겠지만, 그것만큼은 제가 양보 하지 않죠.”
그는 공부보다는 인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무리 중요한 시험을 앞뒀더라도, 집안의 애경사가 있으면 반드시 참석시킨다. 그는 아이들이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공부만 잘하는 이기적인 사람보다는, 성적은 그리 뛰어나지 않아도 손해를 보더라도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고, 예의를 갖춘 사람이기를 바란다.
“식탁문화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식탁풍경이 인스턴트식으로 바뀌었지만, 원래 우리나라는 뜸 문화입니다. 보글보글 끓었다고 바로 먹는 게 아니라 뜸을 들이는 거죠. 때문에 아이들에게 숟가락을 들었다고 바로 밥을 먹는 게 아니라 어른이 밥숟가락을 들어야 차례가 돌아온다고 강조합니다. 또 먹을거리도 햄버거보다는 빈대떡을 직접 해줬어요.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인스턴트 음식보다는 한식을 더 좋아합니다.”
그는 어떤 아빠보다 자녀들에게 충실한 아버지이다. 하지만 가슴 한 편에는 사업차 미국에 거주하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도 있을 터. 그에게 기러기 남편 생활을 얼마나 했는지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몇 년 됐어요. 이제는 뭐 따로 사는 게 너무 익숙해졌어요. 오히려 친구들 중에는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가끔 등이 허전하기도 하지만, 내 나이 정도 되면 부둥켜안고 지내지 않거든요. 취침 시간이 달라서 방을 따로 쓰는 부부들도 많아요. 솔직히 헤어지고 싶지만 어느 한 쪽이 경제적인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함께 사는 부부도 보았고요. 저는 아내와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살고 있어서 더 좋은 것들을 생각해요.”
무엇보다 그는 요리를 잘하는 남자로 소문이 자자하다. 중식, 양식, 한식 못하는 요리가 없다. 또 그의 손을 거치면 어떤 요리도 일품요리가 된다고 한다. 그는 음식점에서 비법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한 숟가락 먹고, 물 한 컵 마시면 음식에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단번에 맞추는 남자 ‘장금’이다.
“아이들은 제가 해주는 요리를 무척 좋아해요. 저는 인스턴트 자장라면도 남들과 다르게 요리해요. 우선 면을 끓는 물에 삶아서 건져내고, 양파를 따로 볶고, 새우, 소고기가 있으면 그걸 첨가하고, 올리브유를 넣어요.”
그는 된장국, 김치찌개, 우거지국, 미역국 같은 국과 찌개 요리는 수준급의 솜씨를 자랑한다. 신혼 초에도 시간이 있을 때마다 장을 봐서 음식을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는 주변을 어지르지않고 치우면서 음식을 하기에 새우튀김을 해도 튀김가루조차 떨어뜨리지 않는다고 한다.
“연예인 중에서는 30년 지기 친구인 (이)미영이가 집을 자주 방문하는 편이죠. 밥 챙겨먹기가 귀찮을 때는 ‘오빠 밥 줘’ 하고 찾아오죠. 미영이는 제게 이혼 문제도 털어놓을 만큼 속 깊은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는 더불어 산다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그는 연기 속 이미지와 실제 모습이 비슷한 연기자다. 그의 넉넉한 품에는 자신뿐만 아니라어려운 이웃을 함께 보듬고 있다. 그것이 인간답게, 연기자답게 사는 진짜 값어치 있는 ‘송기윤만의 예술인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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