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6, 2011

나문희의 '션찮은 인생'이야기
















연극 <친정엄마> 리딩 연습을 마친 나문희의 눈은 번져 있었다. 공연까지 39일을 남겨두고 있는데, 작품이 너무 슬퍼 많은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공연 전까지 더 많이 울어놔야 공연 때는 자유로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눈물을 거르는 중’이라는 그녀는 뮤지컬 <친정엄마>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그녀는 썩 괜찮은 인터뷰이는 아니었다. 꽤 농익은 기자들에게 인터뷰하기 힘든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나문희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배우다. 좀처럼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유명한데다 막상 인터뷰가 진행되더라도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단답형 대답이 돌아오기로 유명하다.
그녀와 인터뷰를 앞두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잠까지 설칠 정도였다. 예상대로 나문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연기에 관한 대답은 비교적 양호한 편지만, 사생활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상식을 넘어서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애완용 동물을 키우냐”는 질문에 “그냥 쓰레기 버리는 걸 좋아해요”라고 하질 않나, 즐겨하는 운동이 있냐는 질문에는 “동네 목욕탕에서 찬물에 들어가 왔다 갔다 하는 거란다” 아무래도 기자에게 농을 건네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니 웃음기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얼마든지 대답해줄테니 어서 다음 질문을 하라”는 성실한 선생님의 얼굴을 하고 있다.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어려운 문제집을 산더미처럼 쌓아둔 학생처럼 자포자기 심정일 즈음, 순식간에 수수께끼 같은 ‘나문희 탐구’가 끝났다. “근데, 왜 연극 이야기는 묻지 않아요?” 고희를 코앞에 둔 노배우는 딸 연배의 기자에게 ‘사생활보다는 연기에 대한 질문을 던져달라’는 말을 차마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을 앓은 듯했다. 안경 너머로 여배우 나문희의 농염한 눈빛이 그제야 보였다.
   

공중 화장실 청소하는 여배우
뮤지컬 <친정엄마>는 어떤 작품인가요?외국 뮤지컬에 <맘마미아>가 있다면 한국 뮤지컬에는 <친정엄마>가 있어요. <친정엄마>는 2004년 초판 이후 30만 부 이상 판매된 고혜정 작가의 수필을 원작으로 만든 뮤지컬이죠. 60대 초반이 된 엄마가 딸을 시집보낼 준비를 하며 겪는 갈등과 해프닝을 그렸어요.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예요.
영화, 드라마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뮤지컬 무대에 섭니다. 뮤지컬이 다른 장르와 다른 매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연극이나 뮤지컬은 관객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배우와 관객이 질펀하게 함께 느낄 수 있잖아요. 나는 앞에서 뛰어놀고 관객들은 리액션을 보여주고요. ‘나, 잘하지?’라고 물어보면 ‘잘한다, 잘한다’ 박수 쳐주는 관객들이 바로 앞에 있다는 게 좋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같은 느낌으로 동화되는 걸 느낄 수 있죠.
이번 뮤지컬도 어머니와 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을 것 같아요. 엄마 생각도 많이 났고 딸 생각도 많이 났어요. 그런데 연습한 지 얼마 안 돼서 자꾸 울고 있어요. 연극 한 편 하면 많이 울어서 눈이 자꾸 내려와요. 나이 들어 보이게….
직접 노래도 부르나요?네, ‘무조건’‘대전부르스’ 두 곡을 불러요. 못하는데 잘하는 척 시치미 뚝 떼고 불러야 해요.(웃음)
지금까지 데뷔 초부터 다양한 어머니 역을 맡아왔어요. 혹시 다른 역할도 맡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나요?솔직히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워낙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입니다. 한편으로 다행스럽다고 생각되는 게 만약 다른 역할을 맡았다면 남편과 관계가 불편해졌을 것 같아요.
연기자로서 롤 모델이 있을 것 같아요. 특별한 오마주가 있나요?아니요. 나는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사람들에게서 새로운 캐릭터를 발견하는 편이에요. KBS 일일드라마 <바람은 불어도>에서 이북 사투리를 쓰는 억척스런 할머니를 맡았을 때는 동네에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는 분이 이북 출신이었는데, 어느 날 뭘 좀 사러 갔는데 그 양반이 “에이, 썅!”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나도 저런 모습을 연기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매일 찾아가서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어요. 저는 주로 시장, 구멍가게 등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오마주예요.
국민엄마라는 호칭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국민엄마로 불리는 배우들이 한두 명이 아니잖아요. 김혜자, 강부자, 김수미, 김혜숙, 고두심 등 너무 많아요.(웃음) 사람에 따라 자기 기준에 맞춘 어머니인 것 같아요. 나는 그냥 나문희식 국민엄마예요. 진짜 국민엄마는 낳아주고 길러주신 각자의 어머니죠.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연습하는 지독한 연기자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나는 연습을 정말 많이 하는 편이에요. 연습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대본을 처음 받게 되면 대사를 머릿속에 삭히려고 노력해요. 또 연습을 너무 많이 하자고 해서 상대역을 맡은 사람들이 귀찮고 피곤해하는 편이죠.
후배들에게 어떤 선배입니까?션찮은 선배요. (나문희는 션찮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마음이 약한 편이거든요. 하지만 때로는 고약스러운 선배이기도 해요. 예전엔 후배들에게 좀 못되게 굴었던 것 같아요. 저는 확실하고 분명한 연기자들을 좋아하는데, 약속을 안 지키거나 질서를 어지럽히면 따끔하게 지적하거든요. 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어떤 후배는 제가 ‘그렇게 하면 너랑 연기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저는 분명한 사람이 좋아요.
연기 생활이 어느새 49년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체력적으로 힘들진 않나요?나이가 드니까 화를 낼 일이 줄어들었는데, 촬영이 새벽 1시를 넘어가면 체력이 딸려서 화를 많이 내요. <거침없이 하이킥>을 찍을 때는 연출가와 많이 싸웠어요. 저는 언제나 첫 번째 찍은 컷이 가장 좋아요. 그래서 두 번 세 번까지는 참을 만하지만 네 번, 다섯 번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찍으라고 하면 화가 나요. 진액이 다 뽑히는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작품을 시작할 때 연출가에게 반복해서 찍자는 말은 되도록 삼가달라고 말을 하죠.
스무 살에 문화방송 성우로 방송 일을 처음 시작하셨죠?그해 여름 중앙예술학원이라는 곳에서 연출가, 문화방송 초대 사장, 배우들이 연기론을 강의한 적이 있어요. 그때 수업을 듣고 친구와 둘이서 문화방송 성우 모집에 응시해서 합격했어요. 그때 <주말의 극장> 여주인공 역은 거의 맡았어요. 그러다가 연기를 하게 됐어요. 하지만 다른 탤런트들이 워낙 자리를 잡고 있어서 성우들은 연기자들이 기피하는 다방 마담, 술집 주인 같은 역을 맡았죠.
여담이지만 영화 <걸스카우트>를 찍을 때 경기도 여주 세트장에서 여느 어머니처럼 화장실 청소를 하는 모습이 다른 배우들에게 자주 목격됐습니다. 왜 직접 화장실 청소를 하셨어요? 화장실 청소를 하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그런 건 항상 하는 일이에요. 나는 치우고 비우는 게 취미라서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데,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은 신기한가 봐요.누군가는 치워야하는데 제가 조금이라도 정리를 해놓으면 치우는 사람이 편하잖아요. 집에서도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것은 제 담당이죠. 난 치우고 비우는 게 취미예요.


부족한 엄마, 애교만점 딸
나문희는 슬하에 세 딸을 두었다. 첫째딸은 피아노, 둘째딸은 바이올린, 셋째딸은 디자인을 전공했다. 또한 그녀의 남편은 전직 영어교사로 5개 국어가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년퇴직 후에는 전시회를 열 정도로 그림에 몰두하고 있다. 나문희는 ‘션찮은’ 엄마이고 아내지만 여든아홉의 어머니에게는 ‘애교만점 딸’이라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예전 KBS 연기대상을 받고 수상소감에서 ‘어머니께 감사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아직도 곁에 계신가요?네, 어머니가 아직도 건강히 곁에 계셔요. 굉장히 인자하시고 똑똑하시죠. 이제 여든아홉 살인데, 저랑 어머니랑 아주 친해요. 지금도 3일에 한 번씩은 꼭 만나요. 가끔 제 연기에 대해서 말씀도 해주시곤 하는데, 어머니는 무조건 칭찬만 하세요. 어머니 덕분에 제가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슬하에 세 딸을 두었습니다. 딸들에게는 어떤 어머니인가요?나는 아무리 자식이라도 해도 구속하는 게 싫어요. 사람은 저마다 재주가 있고 살 수 있는 요소들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자식 걱정보다 내 걱정을 먼저 하는 엄마예요.(웃음) 그래서 딸들에게 션찮은 엄마죠. 어릴 때부터 걔네들은 나대신 아버지와 열심히 살았어요, 교육적인 부분은 남편이 담당했죠. 솔직히 나는 그때도 지금도 이쪽 일이 더 중요해요. 연기는 그야말로 만사를 제쳐놓고 해야 합니다.
과거 남편이 대장암 투병을 했습니다. 지금은 건강을 많이 회복했나요?다 나았어요. 그래도 꾸준히 관리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건강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위장과 대장에 좋은 옥수수, 고구마, 파프리카, 브로콜리 같은 음식들을 많이 먹고 있어요.
작품이 끝난 뒤 공백기는 어떻게 지내나요?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그냥 있어요. 그게 최고로 좋은 휴식이죠. 그리고 오페라나 교향곡, 가곡 등 고전 음악을 듣기도 하고요. 혼자 있는 시간을 제일 좋아해요.
어느 인터뷰에서 나이가 더 들면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연기는 언제까지 할 생각입니까?할 수 있다면 평생 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죠. 연기자들은 그렇게 까지 오래 연기하기 힘들어요. 수시로 감정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사람들이라서 우울증이 없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요즘도 지하철을 많이 이용해요. 나이가 드니까 사람들 시선에서 자유로워졌어요. 옆에서 “안녕하세요” 그러면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함께 수다를 떨어요. 예전에는 기억나지 않지만 요즘은 ‘여배우네 어쩌네’ 하는 고고한 자세는 없어지더라고요. 다만 제일 속상했을 때는 내가 욱하고 화를 냈을 때죠. 정말 화가 날 때 화를 내는 건 괜찮은데, 조금만 참아도 되는데 화를 내면 그게 그렇게 속상하더라고요. 그럴 때 자책감은 말로 표현하지 못해요.
앞으로 계획은 무엇입니까?
마지막 질문이죠? 인터뷰가 너무 힘들었어요. 다리가 후들거려서 사진이나 찍을 수 있을지 몰라. 앞으로 계획은 그냥 하던 것처럼 그렇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더 좋은 일을 바란다는 건 요행을 바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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