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rch 7, 2011

국경과 편견 뛰어넘은 빛나는 사랑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리마리오 이상훈. 그는 예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마치 화보에서 막 뛰쳐나온 듯 귀여운 아들과 아름다운 아내가 그의 곁에 있다는 것만 빼면. 그는 전성기 시절 ‘더듬이 춤’을 출 때보다 한결 더 밝고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가장이라는 단어 앞에 자상함과 따뜻함이라는 단어를 덧씌웠다.    
“언론에 처음으로 결혼 사실이 알려졌을 당시 저는 일본에 있었어요. 한국에 돌아와 보니까 수십여 통의 전화가 와 있더라고요. 팬들께 먼저 알려드렸어야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어요. 그 점이 항상 죄송했어요.”
파란 눈을 가진 한국 며느리
이상훈과 알리나는 지난해 4월 혼인신고를 하고 부부가 되었고, 그해 8월 10일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그는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했다. 당시 그는 부모님에게 결혼 승낙을 받지 못한 상태였고, 또 다문화 가족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편견도 두려웠다.
“뜻하지 않게 세상에 알려진 다음 수많은 악플에 시달렸어요. 입에도 담기 싫은 말들이 많았어요. 특히 제 아내가 러시아 출신 댄서라는 이유만으로 ‘어느 술집에서 봤다’는 악플을 접했을 때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보다 우리나라 네티즌들의 수준이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아내와 대학로에서 ‘컬투쇼’ 라는 공연을 함께 하면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는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알리나의 모습을 보고 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알리나의 사고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 알리나의 집에 찾아갔을 때 제 눈을 의심했어요. 옷이 정말 몇 가지 없는 거예요. 무대의상과 집에서 입는 트레이닝복이 전부더라고요. ‘쓸데없는 옷들이 왜 필요하냐’고 되레 묻더라고요. 그렇게 알뜰하게 살면서 통장에 제법 많은 돈을 모았더라고요. 요즘 여자답지 않게 검소한 모습이 감동적이었어요.”
알리나는 생활력이 강했다. 함께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알리나가 외식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상훈은 언제나 손수 만든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곤 하는 알리나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 사람들이 모두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졌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해요. 하지만 지내고 보니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보수적인 부분이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된다’라는 생각에 전혀 거부감이 없어요. 동유럽 사람인데도 가족애가 아주 끈끈해요.”
지금 그들은 부모님과 함께 살지는 않는다. 하지만 매일 전화해서 안부를 묻고, 부모님 집에 먼저 찾아가자고 말하는 사람은 아내다. 그가 갑작스럽게 부모님을 찾아뵙자고 말해도 한마디 불평 없이 흔쾌히 따라주고, 어제 가고 오늘 또 가자고 말해도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오케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부모님은 무녀독남인 아들의 결혼을 심하게 반대했다.
“결혼 전 알리나를 친구라고 속이고 부모님께 인사를 시킨 적이 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눈치를 채시고는 ‘그냥 친구로 지내라’고 말씀하셨죠. 가슴이 철렁했어요. 하지만 더 이상 부모님을 속일 수는 없었어요. 아내의 배는 불러왔고, 아이를 낳아서 키우려면 혼인신고를 해야 했어요.”
그는 부모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혼인신고를 했고 4개월 뒤 아들 율이를 낳았다. 그때까지 부모님은 알리나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훈과 알리나는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가서 둘의 결혼을 인정해달라고 이해를 구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나라에도 여자들이 많은데 왜 하필 외국 여자냐. 다시는 너를 보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어머니는 ‘부모가 없는 것도 아니고 몸이 불편한 것도 아닌데 왜 힘든 선택을 했냐’며 통곡을 하셨죠. 나이 지긋하신 부모님들은 대체로 외국인 며느리에 대한 편견이 있으시잖아요.” 
심지어 부모님은 알리나의 임신 사실을 알고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아들에 대한 배신감이 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율이의 출산 소식을 듣고 찾아온 부모님은 ‘아기를 낳고 헤어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 행복하게 잘 살라’는 말을 건넸다.
“결혼까지 어려운 과정을 겪고 보니, 서로에 대한 애틋함 때문인지 싸울 일이 없어요. 가끔 제가 화를 내면 아내는 ‘자기 말고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나한테 화내고 소리치면 어떻게 해’ 이렇게 말하죠. 그러면 저절로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그 흔한 프러포즈도 하지 못했고, 프러포즈 반지도 끼워주지 못했다. 그저 ‘같이 살래?’라는 말로 마음을 표현했다. 부모의 반대가 극심했던 터라, 로맨틱한 프러포즈가 아니라 비장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는 ‘그저 믿고 따라와 달라’는 말로 그녀의 마음을 사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주변의 친구들에게 증인을 서달라고 하고 간소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하자마자 이혼해야 하는 현실
“부모님이 승낙을 해주시고 결혼을 축복해주시니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어요. 결혼하자마자 이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직까지 아내의 국적이 러시아입니다. 일 년에 한 번씩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찾아가서 비자를 갱신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내의 비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출입국 사무소에 찾아갔더니 양국의 혼인신고서가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러시아에서 혼인신고를 하려고 알아보니까, 한국에서 이혼을 하고 오라고 하더라고요. 러시아에서 알리나는 아직 미혼이고, 한국 국적인 저는 유부남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얼마 전 그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온 여성들은 비자를 갱신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 여성과 결혼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친구 아내는 한국 들어오는데 비자도 필요없고, 체류기간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너무 황당해서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아갔더니, 그저 법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만 해주더군요.”
결국 아내의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이혼을 하고 러시아에서 혼인신고를 한 다음 한국에서 다시 혼인신고를 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아내는 장기 비자를 받을 수 있고, 귀화도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외교부에서 인정을 안 한다면 대한민국 헌법에서도 인정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어보면 알리나는 ‘처’로 나오고 율이는 ‘아들’로 나옵니다. 그런데 왜 외교부에서는 부부로 인정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비단 자신의 가족만 그런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나라보다 경제력이 다소 떨어지는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시집을 온 모든 여성들이 겪는 아픔이다.
“아내는 내년 1월에 일 년짜리 비자를 받기 위해 다시 출입국관리사무소를 가야 해요. 이 모든 수고를 덜기 위해 저희 부부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한국에서 이혼 절차를 밟는 것이고요. 부모님의 반대라는 장벽을 걷어내니, 출입국사무소의 장벽이 남아 있네요.(웃음)”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아들
지난 8월 10일은 율이의 돌이었다. 건강한 아빠와 엄마 덕분인지 율이는 유독 다른 아이들에 비해 발육이 빠른 편이다. 부부는 아직까지 특별히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자라주는 율이가 고마울 뿐이다.
“아버지가 얼마 전에 많이 편찮으셨어요. 패혈증에 걸려서 많이 힘들어하셨는데. 그때 병원을 다니면서 아픈 아이들을 많이 보았어요. 식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율이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저 건강하게 자라줬으면 하는 겁니다.”
이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알리나도 율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데 지극정성을 쏟는다. 아이의 피부에 좋지 않다며 일회용 기저귀를 쓰지 않고 면으로 된 기저귀를 직접 손으로 빨고 삶아 쓴다. 뿐만 아니라 냉장고를 열면 멸치, 새우, 참치 등이 수북하다고 했다. 천연조미료를 직접 만들어 쓴다며 살뜰한 아내 자랑이 늘어진다.
“아내는 어린 시절 화재로 어머니를 잃었어요. 그리고 아버지의 재혼과 동시에 이복동생들이 생겼대요. 새어머니가 학교는 보내주지 않고 어린 동생들을 돌보게 해서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삐뚤지 않게 성장한 아내를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만점짜리 아내에게도 한 가지 함께 해줄 수 없는 것이 있다. 연어를 우리나라 홍어처럼 삭힌 러시아식 샐러드를 권할 때다. 먹는 순간 암모니아 특유의 구린내가 올라오는데, 그것만은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아내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 어떤 음식이든 뚝딱뚝딱 해내는 편이죠. 그리고 언제나 제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바로 해줍니다. 사실 아내가 임신했을 때부터 몸조리를 끝낼 때까지는 제가 거의 모든 음식을 만들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는 일찍 귀가를 했고요. 그러니 저도 꽤 사랑받을 만한 남편이라고 생각해요.(웃음)”
그는 결혼 이후에 비로소 가정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한때 모질게 대했던 부모님의 마음도 이해하게 됐다. 하지만 그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팬들에게 미처 결혼 사실을 알리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이 남았다고 했다. 그리고 잘사는 모습으로 보답하겠다고 밝히면서 조만간 TV를 통해 찾아뵙겠다는 인사를 꼭 전해달라고 했다. 사실 그와 나눈 오랜 시간의 대화 중에는 최근에 그가 생각해낸 아이디어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아직 공개하기는 때가 이르기에 비밀에 부쳐두었다. 앞으로 더듬이 춤을 추던 리마리오보다 더 강력한 무엇인가를 들고 등장할 그를 기대해본다.

양희은 그 너른 품으로 부르는 희망의 노래

‘공연이란 나의 삶을
               정화하는 카타르시스’

양희은은 요즘 각종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이리저리 TV 채널을 돌리다보면, 그녀가 어느 한갓진 시골집 툇마루에 걸터앉아 고추장과 온갖 나물을 쓱쓱 비벼먹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또 어느 프로에서는 조카뻘로 보이는 후배들과 함께 퀴즈를 풀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멋들어진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것 같아 아쉽게 느껴진다. 분명히 양희은이 활약했을 당시의 노래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말이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을 알았는지, 양희은이 팬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오는 10월 18일부터 3일간 삼성코엑스 아티움에서 그리고 11월 6일, 7일 양일간 세종문화회관에서 ‘느리게 걷기’라는 타이틀로 공연을 갖는다.


안녕하세요, 양희은입니다. 아 떨려
“팬들을 위해 일 년에 한 번씩 공연을 해요. 이유는 다양해요. 팬들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저를 위해서이기도 해요.
저에게 공연이란 자기증명과 같은 중요한 의식이거든요.”
그녀는 공연을 할 때 제일 편안하고, 행복하고, 따뜻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얼마나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비슷한 느낌의 단어들을 연방 나열했다. ‘좋아, 좋아. 바로 이걸 기다린 거야.’ 그렇게 공연을 기다리고 기다린다고.
“지금까지 함께해온 멤버들과 공연연습을 할 때가 제일 행복해요. 우리 집에서 밥을 해먹으면서 ‘이번 공연에서는 이걸 빼고 이걸 넣자. 나는 누나가 팝송을 부르는 게 좋은데…’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누죠. 혼자 노는 걸 많이 하는데, 콘서트 연습은 절대 혼자서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흥이 나요.”
그녀는 예전부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가수로 데뷔했을 때부터 DJ를 해왔기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많지 않았다. 또 일하는 시간도 달랐다. 새벽 4시쯤 라디오 진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한숨 자고 나면 어느덧 정오를 바라보는 시간이었고, 오후 6시가 넘으면 남편이 귀가한다. 때문에 그녀는 사소한 취미라도 함께할 친구가 많지 않았다.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을 찾다 보니까 무작정 걷거나 해발 87.7m(웃음)의 정발산을 올라요. 그게 전부죠. 그래서인지 낯가림도 심한 편이에요. 열린 직업의 폐쇄성이라고 해야 하나?”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말문을 트고, 말리지만 않으면 카메라 앞에서 주구장창 연설을 할 것 같은 그녀가 뜻밖에도 카메라와 무대 울렁증이 있다고 고백했다. 카메라만 앞에 오면 표정이 얼음처럼 굳고, 노래를 하려고 무대 위에 올라서면 10분 정도 시간이 지날 때까지 심장 뛰는 소리가 귀로 들릴 만큼 긴장을 한다. 최근 예능프로그램의 출연이 잦은 이유도 그런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시작한 도전이다.
“자꾸 피하다 보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요. 그나마 TV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게 ‘열린 음악회’ 정돈데, 그것도 일 년에 고작 네 번 정도입니다. 그 무대에 서면 보통 서너 곡을 부르는데, 겨우 노래를 부를 만하면 무대에서 내려와야 해요. 그래서 제가 출연했던 TV 프로그램을 보면 바보처럼 보일 때도 많아요.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겁니다.”


‘아침이슬’에 묻혀버린 코미디언의 꿈
두툼한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고백을 한 양희은. 그러나 그녀에게는 사람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꿈이 있다.
그녀는 얼마 전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카메라 울렁증이 극복되면 환갑이 되어서라도 코미디언으로 데뷔하겠다는 폭탄발언을 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 별명이 ‘여자 구봉서’였다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학창시절부터 제가 입만 열면 친구들이 까르르 웃었어요.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코미디언이 되는 게 꿈이었죠. 노래는 자발적으로 부른 적이 없어요. 애들이 신청을 하면 부르는 정도였죠. 그리고 초등학교 때부터 연기를 했어요. 아동극 대회에 나가 1등을 하기도 했지요.”
그녀가 원하는 것은 액션을 과장하는 슬랩스틱 코미디는 아니다. “가발도 쓰고, 흉물스러운 분장도 할 수 있겠느냐”는 농을 건네자 “이빨에 김 묻히고, 바보 연기하는 게 코미디의 전부는 아니지 않느냐”며 진지하게 답했다. 그녀는 자신의 그런 희극적인 면이 ‘아침이슬’에 묻혀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예전에 양희은이라는 이름은 ‘금지곡’ ‘민중가요’ ‘좌파’ 등의 단어들과 함께 따라다니는 연관검색어였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아침이슬’이 시대를 대변하는 노래가 되어버렸죠. 그래서 ‘아침이슬’은 나에게 올무가 되었어요. 그 부담을 씻어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몰라요.”
이념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고, 오히려 그런 시선을 두려워하는 그녀지만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은 피할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그녀는 노 전 대통령 취임식과 영결식에서 모두 노래를 부른 유일한 가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행동에 이념적인 색깔을 덧씌우는 것을 경계했다.
“솔직히 그런 제안이 부담되기는 했어요. 용기가 필요했던 게 사실이죠. 하지만 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자기를 찾는 무대가 있다면 당연히 서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 마음에 노래를 불렀는데, 수많은 악플에 시달렸어요. 예상했던 일이긴 하지만요.”
그녀의 홈페이지에는 ‘좌파’ ‘똥개’ ‘돼지’ 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글들이 올라왔다. 그녀는 그걸 읽으면서 분단국가의 슬픈 현실을 다시 절감했다. 그리고 어린 친구들이 악플 때문에 왜 목숨을 끊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색깔이 없어요. 이념에도 전혀 관심이 없고요. 그저 사람들이 나에게 그런 옷을 입혔을 뿐이죠. 내 노래 중에 ‘아침이슬’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소박한 사람들의 삶이나 사랑에 대한 노래들도 많아요. 하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금지곡이었죠. 민주주의를 그리워하는 노래라는 게 이유였어요.(웃음)”
시련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양희은에게 시련은 그뿐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찾아온 두 번의 암은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할 만큼 커다란 충격을 주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그것을 시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그녀는 암 치료를 권하는 의사의 충고를 거절하고 혼자의 힘으로 극복해냈다.
“암수술을 집행한 의사에게 ‘수술이 잘 됐다며? 자신 있다며? 수술자리가 깨끗하다며? 그러니까 나는 항암치료를 받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죠. 암에 대한 사전지식도 없었고, 이렇게 저렇게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던 것뿐인데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게 되어버렸어요. 근데 그렇게 극복하니까 여기저기서 ‘투병기를 쓰자’는 전화가 쇄도했죠.”
그래도 그녀는 당시 두 번의 수술을 해준 의사 선생님을 은인으로 생각한다. 그 의사선생님이 신중하게 수술을 해준 결과, 지금처럼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자궁부위는 목소리하고 연관이 있는데, 아직까지 그 의사선생님 덕분에 노래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투병생활을 하면서 하나 깨달은 게 있어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구분되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나를 위로해준다고 찾아와서 자신이 암에 걸리지 않은 것을 행복해하는 그런 눈물을 보였어요. 위로하는 입장을 즐기면서 ‘당장 내일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게 느껴졌어요.
또 실제로 그런 사람도 있었고요.”
그때 그녀는 많은 사람들을 붙잡고 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속내를 알아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친한 몇 사람을 제외하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자제했다.
“요즘도 일이 없으면 곧장 집으로 들어가요. 돈 버는 일이나 그것에 연관된 일이 아니면 바깥출입을 하지 않아요. 겉 친구 많을 필요 없어요. 속 친구 하나만 있으면 돼요. 내 창자가 쏟아질 때 손으로 받아주는 친구! 너무 비약이 심했나요?(웃음)”
그렇게 집으로 곧장 향하는 양희은의 취미는 무엇일까? 그녀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조조영화 보기, 걷기, 사우나하기.
하지만 지난해 겨울 어머니가 아프고 난 다음부터는 걷기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요즘은 다 귀찮아졌어요. 예전에는 음식 만들고 운동하는 걸 꽤 즐겼는데 요즘은 운동 대신 사우나에 다니고, 음식도 잘 안 해먹어요. 기운도 예전같지 않고요. 그리고 이상하게 운동을 좀 하면 불면증이 생기더라고요.”
세월 탓인지 점점 기력이 딸린다는 양희은. 하지만 일에 대한 욕심과 도전정신은 여느 젊은이 못지않았다. 그리고 공연문화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가수들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그녀가 한창 활동하던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무대가 많았다. 그래서 따로 노래 연습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매일 무대에서 노래를 했기 때문에 실전이 연습이고, 연습이 실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괜찮아요. 그렇게 적응하며 사는 거죠. 그래서 내가 자발적으로 공연을 하잖아요? 누가 어떤 무대를 만들어주느냐가 뭐가 중요해요? 팬들이 나를 보고 싶어하고, 내가 팬들을 보고 싶을 때 공연을 하면 되니까요.(웃음)”

서른둘 최강희 나를 찾아 떠나는 아이슬란드 旅行記


개그우먼 김숙은 최강희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기억한다.“어떤 애가 은이 언니랑 같이 왔는데, (걔 탤런트잖아) 펑크 난 티셔츠를 입고 있는 거야. 그리곤 낯을 가리면서 앉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웃겨) 우리 집에 3일이나 있었어. 지네 집에 안 가고. 그래서 내가 그때 ‘강자(최강희의 애칭)야, 너 일 좀 해’ 그랬지.” 또 다른 ‘절친’ 송은이의 이야기는 더 가관이다.
“강자, 이거 웃기는 애야, 얌전하게 생겨서는. 난 솔직히 얘 완전 ‘똘아이’인 줄 알았어.”
최강희에 대한 첫인상은 대개 이와 비슷하다. ‘4차원’이라는 단어는 이런 모습 속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첫인상일 뿐이다. 4차원 넘어 그곳엔 말간 자연인 최강희가 있다.

달에 갈 수 없어, 나는 아이슬란드로 간다
대중의 관심이 커지고, 그녀를 설명하는 수식어가 늘어나면서 최강희는 스스로도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연기를 통해 타인의 감성을 이해하고 상상하는 능력이 생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작 자신을 알 수 없었다. 결국 자신의 감정이 내 것인지 아닌지조차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저를 알고 싶었어요. ‘나는 어떤 사람일까. 서른두 살, 지금 나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그래서 한 번은 일기장을 펴놓고 글을 적으려 했지만 한 글자도 적을 수 없었어요. ‘나’란 무엇도 없는 느낌이었죠. 그립고 외로웠지만 그리움에는 대상이 없었고, 울고 싶었지만 눈물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어요.”
그때 가수 김C는 그녀에게 시규어 로스의 ‘헤이마’(‘집으로’라는 뜻)란 DVD를 건넸다. “네가 좋아할 것”이라면서. 시규어 로스는 아이슬란드를 대표하는 밴드로, 월드 투어를 마치고 고국에서 무료 투어를 한 뒤, 이 공연을 ‘헤이마’라는 DVD로 남겼다.
“DVD에 담긴 아이슬란드라는 나라와 음악은 정말 신비로웠어요. 뭔가 마음 둘 거리가 없었던 제게 당시 그것은 충격이었고, 김C의 말대로 그것에 빠져들었죠. 매일 아침, 그리고 저녁, 심지어 잠이 드는 순간까지 마치 종교의식처럼 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아이슬란드에 꼭 가보고 싶어졌죠.”
아이슬란드로 가고 싶다는 그녀의 소망은 마침내 이루어졌다. ‘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이라는 책을 준비하면서 책에 실릴 사진이 필요했고, 그 사진을 아이슬란드에서 작업하게 되었던 것.
“8월 초, 영화 ‘애자’ 촬영이 끝나고 아이슬란드에 다녀왔어요. 오래 머무르지는 못했어요. 아이슬란드 물가는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비싸거든요. 그래서 적은 인원으로 짧게 다녀와야 했죠. 아이슬란드는 전체 면적이 남한 정도 크기지만 인구는 30만 명에 불과해요. 어딜 가나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분위기는) 우울했고, 국민들은 예술가 같았어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좋은 컷을 얻기 위해 아이슬란드 전역을 돌면서 촬영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이슬란드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인간은 달에 갈 수 없어, 나는 아이슬란드에 간다.’
“달나라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이슬란드는 다른 행성 같기도 하고, 지구 본연의 모습 같기도 했어요. 암스트롱이나 예비 우주인들은 달에 가기 전 지형 충격을 대비하고 익히기 위해 아이슬란드를 찾는다고 해요. 그만큼 외계 지형과 같은 느낌이에요.” 최강희가 머물렀던 때는 마침 백야 기간이었다. 해는 새벽 1시에 져서 3시면 이내 떠올랐다. 그래서 아이슬란드는 더욱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인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가 원했던 분위기는 바로 그것이었다.

대단함을 꿈꾸는 사소함, 난 그게 좋고 편해
아이슬란드에 다녀온 기록은 고스란히 최강희의 ‘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에 담겼다. 아이슬란드의 이국적인 풍경과 최강희의 나른한 모습은 감각적인 글과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집 같다.
“글과 사진이 함께 있는 책이에요. 잘 쓰지는 못하지만, 글 쓰는 걸 좋아해서 생각이 날 때마다 단상으로 기록했고, 미니홈피에 올렸죠.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래도 언젠가 책으로 내고 싶었고, 동시에 부족하다고 생각해왔죠. 그런데 요즘 많은 연예인들이 책을 내는 것을 보고 용기가 생겼어요. 그분들의 책을 쉽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먼저 질러주시니까’ 용기를 내게 된 거예요.”
최강희는 오래전부터 미니홈피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했다. 자신의 생각을 올리고, 그 글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댓글을 통해 반응을 주고받는 것. 최강희는 이런 감정의 교류를 사랑한다.
“제 미니홈피에는 ‘내가 1빠’와 같은 장난스러운 댓글이 아니라, 각자의 감정을 나누는 댓글이 달려요. 사람들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설렘이나 외로움 등이죠. 차가운 컴퓨터를 통한 소통이지만, 그 안에 누군가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 때도 있고, 교감을 나누면서 짜릿한 기분도 들었어요. 이런 기분을 책을 통해서도 나누고 싶었어요.”
책 제목인 ‘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은 자연인 최강희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키워드인 듯싶다.
“저는 자신을 사소한 아이라고 생각하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항상 대단한 쪽을 꿈꾸는 사소한 쪽이라고 할까요? 그쪽이 편하고 그게 좋아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사소한 아이’로 결론이 난 것일까? 딱히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수식어 사이에 숨겨진 최강희의 모습은 이 책 안에 담겨 있고, 그것이 그녀가 찾은 답일 것이다.
“4차원, 동안, 패션, 환경 등이 여러분들께서 부각시켜주신 점이라면, 그 나머지의 제가 이 책 속에 있어요. 조금은 궁상맞고, 우울한 것을 즐기며 행복을 꿈꾸는 제 모습요. 제가 쓴 책이니까 제 이야기가 들어가잖아요. 상상으로든, 실제 제 이야기든, 제 기준이나 마음이 이 책에 많이 비춰졌어요.”
글과 사진만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초판을 구매하는 독자에 한해 주어질 부록 DVD도 만들었다. DVD에는 뮤직 비디오가 담겨 있는데, 아이슬란드에서 담아온 영상에 그녀가 직접 부른 노래를 입혔다.
“직접 노래를 부르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무래도 제 책이니까 직접 참여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노래까지 하게 되었죠. 뮤직 비디오는 ‘최강희의 여섯 가지 중독’을 만든 PD와 작업을 했는데 편집 과정에서 제가 참견을 많이 했어요. 하루에 잠을 두 시간씩밖에 안 자면서 진짜 열심히 만들었어요.”

기부, 나눔을 통해 얻는 또 하나의 행복
올해 하반기는 최강희에게 잊지 못할 시간으로 기억될 듯하다. 영화 ‘애자’는 관객을 200만 명 가까이 동원했고, ‘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은 출간 전부터 화제를 모으더니 출간 10일 만에 3만5천 부가 판매됐다. 현재 5쇄 인쇄에 들어갔으며, 초반 인쇄 분량의 두 배인 2만 부로 1쇄당 부수를 늘린 상태다. ‘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의 성공은 단순한 성공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최강희가 인세 전액을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책의 인세는 미혼모를 돕는 단체와 환경단체에 반반씩 기증하기로 했어요. 책을 통해 번 돈은 별로 가질 생각도 없었고, (책이) 제 영역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인세를 두 단체에 나눠 기부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한 단체를 지원함으로써 또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환경단체에 기부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환경녀’로 비춰지는 것이 부담스럽더라고요. 물론 저는 종이컵을 안 쓰고 있지만, 환경에 대한 일을 한다면 갑자기 제가 그 분야에서 무언가가 된 것처럼 보일 수 있거든요. 마침 미혼모는 예전부터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두 단체에 나눠서 기부하게 된 거예요.”
우연히도 책의 발매 시기가 최강희의 소속사 대표이기도 한 배용준의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의 그것과 겹치게 되었다. 같은 분야의 책은 아니지만 선의의 경쟁을 벌이게 된 셈. 배용준이 선배이자 대표로서 책에 대해 조언을 했을 법도 하지만, 그녀는 그를 제대로 만나본 적도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계약할 때 ‘욘사마’와 2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눈 것 이외에 만난 적이 없어요. 그나마 계약도 거의 끝나가네요. 그분 책을 보니 나라에서 해야 하는 일을 그분이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위해 역사나 전통, 문화유산에 대해 공부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도 책을 만들 때 일일이 다 간섭을 했는데, 뭔가 스스로 해내려고 하는 점에서는 그분과 잘 통할 것 같은 기분도 드네요.”
이 책에 담겨진 여행, 친구, 사랑에 대한 단상들, 그것들을 한마디로 정의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역시 그녀다운 대답이 돌아온다. “여행은 그 나라의 향기를 살짝 입고 오는 거예요. 공항에 들어서면 외국 여행 냄새가 느껴지거든요. 친구란 팔 한쪽이에요. 사랑은…. 아직 모르겠네요.”
최강희에게 요즘 행복한 일이 생겼다. 바로 자신의 작업실을 갖게 된 것. 그런데 이 역시 소소하다. 친구 작업실의 한쪽을 매달 15만 원의 사용료를 주고 사용하는 것이다. 소소한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최강희, 그런 그녀를 ‘사소한 아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미소년에서 진짜 남자로 고수, 4년 만에 컴백 인터뷰


고수는 지난해 12월 2일 첫 전파를 탄 SBS 수목드라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에서 술집 작부인 어머니를 따라 떠돌이생활을 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명석한 두뇌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패기로 똘똘 뭉친 당찬 차강진 역을 맡았다. 이 드라마는 차강진이 고등학교 때 첫 사랑인 한지완(한예슬)과 뜻하지 않게 헤어진 뒤, 8년 만에 우연히 만나면서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드라마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이후 4년 만의 브라운관 복귀작이다. 군복무 기간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긴 공백이다. 그동안 미디어 환경과 시청자들의 트렌드도 달라졌다. 이 때문에 방송 복귀가 두렵기도 했단다. 고수는 신인의 자세로 촬영에 임하면서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시청률보다는 좋은 작품에 올인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서는 느낌이 좋아요. 솔직히 대작인 <아이리스>와 같은 시간대에 방영되어서 시청률이 높지는 않지만, 훌륭한 작품에 출연하고 있어서 뿌듯해요. 시청률 부담에서 벗어나 ‘좋은 작품’에 출연했다는 기쁨이 커요. 공백기간이 길었던 거요? 쉬는 동안 꽃미남 스타들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제가 특별히 뒤처진다는 느낌은 없어요.”
이번 드라마는 <미안하다, 사랑한다>와 <이 죽일 놈의 사랑>의 이경희 작가가 극본을 썼고, <발리에서 생긴 일>의 최문석 PD가 연출을 맡았다. 그가 이번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이경희 작가의 적극적인 추천 때문이었다.
“저를 추천해주신 작가님의 마음이 감사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연기에 몰입하고 있어요. 지난 해 9월에 대본을 처음 봤는데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는 표현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용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이번 작품은 연기자로서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남아 있는 장면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그는 특히 이 작가의 대본을 보면 볼수록 새롭고, 지문 하나도 놓칠 수 없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랑에 대한 슬픔도 직설적인 표현 대신 은유적으로 표현한다는 것.
“제가 역을 맡은 강진은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마음의 문이 닫힌 인물로, 감정표현은 서툴지만 마음은 따뜻한 사람이에요. 또 제 성격과 달리 차갑고 이성적인 캐릭터라서 강진을 이해하고 분석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저는 내성적이긴 하지만 긍정적이고 밝은 편이거든요.”
그는 건축가인 강진을 완벽히 소화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드라마 촬영이 시작되기 전부터 건축 공부와 스케치 레슨을 따로 받았고, 서점에 가서 건축과 관련된 책들을 하루 종일 보았다. 덕분에 책 속에 있던 도면과 수치들이 많이 친근해졌다.
“지금까지 맡은 역할이 다 진지해 보이는 캐릭터였어요. <요조숙녀>를 통해 가벼운 역할도 하긴 했지만, ‘고수’라는 배우를 떠올리면 진지한 이미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번에도 진지한 역할이라 걱정이지만 캐릭터에 대한 표현이 다른 만큼 또 다른 매력을 볼 수 있을 거예요.”
군 입대 전에 출연한 드라마 <그린로즈>와 영화 <백야행>에서 모두 운명의 굴레 속에서 비극적인 사랑을 연기했지만, 이번에는 남녀 주인공이 서로 사랑하는 가슴 따뜻한 멜로 연기를 하고 있다.
연극은 짜릿한 경험
“극중에서는 지완(한예슬)을 사랑했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만나 새로운 러브스토리가 전개됩니다. 하지만 강진은 사랑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실제 그의 성격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자식아, 이 새끼야’라는 거친 표현을 쓰는 익살스러운 구석이 있다고 한다. 물론 여자친구에게 그런 거친 표현은 쓰지 않지만. 그렇다면 그의 실제 연애관과 이상형은 어떨까?
“연애할 땐 헌신적인 편이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쁜 남자의 모습을 보이기도 해요. 여자친구와 함께 있을 때는 최선을 다해서 잘해주려고 노력하지만 일할 때는 일에 집중하느라 소홀해지는 부분이 있어서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그럴 때가 가장 안타까워요. 이상형은 딱히 없는데, 첫인상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보통 첫눈에 반하는 경우가 많고, 상대가 마음에 들어오면 용감하게 대시를 하기도 합니다.”
그는 김희선, 김하늘, 김민희, 이다해, 박정아, 김현주 등 하나같이 큰 인기를 누리는 여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했다. 그리고 제대 후에도 영화 <백야행>에서는 손예진, 이번 드라마에서는 한예슬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대단한 여복을 타고 났다고 주변 남자배우들에게 시기 아닌 시기를 받는다고 한다.
“가만히 열거해보니 상대 여배우들이 정말 대단했네요. 그땐 역할만 생각하느라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그래서 사적으로 친구가 된 여배우가 없었어요. 지금 생각하니까 무척 후회가 되네요. 어떤 경우는 촬영이 끝난 뒤에도 제작팀과 연락을 하고 지내다 자연스럽게 상대 배우들과도 꾸준히 얼굴을 보기도 했죠. 하지만 그런 기회를 잘 살리지 못했어요. 전화번호조차 없어요.”


변화를 겪고 나니 삶이 달라졌다

그는 군을 제대한 이후 첫 번째 무대로 항상 동경해오던 연극을 택했다. 공익근무를 하고 있을 때도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는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다. 그리고 군 제대 후 드라마 <피아노>에 함께 출연했던 조재현의 추천으로 연극무대에 서게 됐다.
“사실 출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캐스팅 기사가 보도됐죠.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열심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어요. 사실 무척 힘들긴 했지만, 엄청난 쾌감이 있더라고요. 연극은 반응이 즉각적으로 오잖아요. 바로 앞에 앉은 관객들의 숨소리, 웃음소리가 들려오는데, 짜릿한 무언가가 솟구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배우들이 연극무대를 선택하는구나, 하고 알게 됐어요.”
그는 연극 <돌아온 엄사장>에 출연하면서 마치 극단의 단원이라도 된 듯 연습실을 드나들며 청소 등 잡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극단 사람들이 그의 소탈한 성격에 모두 놀랄 정도였다. 그는 연극을 통해 연기 외에도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배웠다.
“연극을 하면서 그간 제 연기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매일 느꼈어요. 연극은 TV 드라마나 영화와는 달리 발성법이나 표정 같은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어요. TV 드라마는 카메라가 해결해주는 부분이 많지만 연극은 배우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거든요.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고,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다면 무대에 계속 설 생각이에요.”
이렇듯 그는 그간 많은 변화를 겪었다. 특히 2년간의 군 복무기간 동안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다. 모든 것을 혼자 해내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됐다.
“늘 주변에 저를 도와주는 분들이 있었고, 또 많은 팬들의 따뜻한 시선을 받다가 갑자기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니 처음엔 모든 게 혼란스러웠어요. 점차 군 생활에 적응하다보니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더라고요. 결국 그게 제 삶이나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까지 변화시켰어요.”
첫 번째 변화는 연예계의 대표적인 의리파로 불릴 만큼 오랜 시간 함께 일해온 매니저와 결별을 선택했다. 온실의 화초가 되어간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어떻게든 혼자서 세상을 헤쳐나가고 싶었다.
“어느 순간 관리받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어딘가 갇혀 있는 느낌이 싫었어요. 친형처럼 저를 돌봐주던 매니저와 결별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주변의 살뜰한 보살핌보다는 세상에 나를 던지고 어떻게든 혼자 버텨보고 싶었어요.”
당시에는 감당하기 힘든 결정이었지만, 그는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해냈다. 그렇게 스스로 선택하고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접 부딪히면서 사물을 판단할 수 있게 되는 잣대를 마련한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고수는 배우들 사이에서도 말수가 적고 과묵한 스타일로 꼽힌다. 한 번 작품에 들어가면 무섭게 몰입한다. 그는 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것을 신경 쓸 여력이 되지 못한다며 겸손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욕심이 많고 열정이 넘치는 연기자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낸 매니저와 결별하고, 제대 후 첫 무대를 연극으로 택하고, 영화 <백야행>에서 잔인한 살인마 역을 맡게 된 것 모두 더 큰 배우가 되기 위해서 스스로 자청한 변화였다. 그는 지금 좀 더 큰 배우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틀을 깨부수고 있다.    

단아함으로 빛나다 한 혜 진

“한복과 잘 어울린다는 소리가 기분 좋은,
내 나이 스물아홉”


폭설에 이어 추운 날씨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었다. SBS 드라마 <제중원> 촬영에 한창인 한혜진을 만나기 위해 경북 문경으로 떠날 준비를 하던 참이었다. 문자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기자님, 날씨가 많이 추워요. 따뜻하게 입고 오시는 거죠?” 한혜진의 매니저였다. 차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접어들 때쯤 또 한 통의 메시지가 왔다. “점심은 먹고 오시는 건가요?”
<제중원> 촬영은 문경새재도립공원 내에 위치한 드라마 세트장에서 있었다. 도립공원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맑은 날씨임에도 바람을 따라 간간히 눈발이 날리곤 했다. 하늘이 아닌 산으로부터 날아오는 눈이었다. 스태프의 도움을 받아 한혜진을 찾았다. “석란아! 누가 찾아오셨네.” 임시로 만들어놓은 대기실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한혜진과 그곳까지 오는 내내 따뜻한 메시지를 보내주었던 매니저였다.
“멀리까지 오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추우시죠?”
대기실에 있었는데도 한혜진의 두 볼은 빨갰다. 한복은 얇디얇아 보였다. 새벽부터 내내 야외촬영이 이어졌으니 정작 추위와 피곤에 지친 사람은 본인이었을 터. 그럼에도 미안한 눈으로 기자를 걱정했다. 그녀를 만나본 팬이나 기자들이 한결같이 “한혜진은 연예인 같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인 듯했다.
동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배우
기자의 눈을 먼저 사로잡은 건 화려한 의상이었다. 한혜진은 한복이 정말 잘 어울렸다. 우아한 목선과 앞가르마를 타 길게 땋은 머리, 단아한 걸음걸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복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제중원>의 시대적 배경이 구한말이라 전통적인 한복이 아닌, 개화기 때의 한복으로 색깔이나 무늬가 과감하고 화려했다. 이날 한혜진은 다섯 벌의 한복을 갈아입으면서 촬영에 임했다. 그녀가 맡은 ‘석란’은 역관의 딸로서 서양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신여성이자 한국의 첫 양의(洋醫)다. 이 역할을 표현해내는 데 의상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한혜진은 한복의 아름다움에 만족스러워하면서도, 불편함은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와이어가 부착된 속치마를 겹겹이 입어야 해서 화장실 갈 때 무척 불편해요. 화장실 갈 때마다 오래 있으니까 사람들이 오해하시더라고요.(웃음) 추운 것도 단점이에요. 안에 잔뜩 껴입고 있는데도 한복을 입었다는 생각만으로도 왠지 춥거든요.”
한혜진은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바로 패딩 점퍼를 걸치고, 핫팩을 넣은 장갑을 끼고, 고무신을 부츠로 갈아 신었다. 하의는 여러 벌 겹쳐 입을 수 있지만 상의는 다르다. 개화기 때 한복이라 소매 폭이 유난히 좁아 내복을 입기도 힘들다.
“야외촬영이 많아서 어려워요. 그래도 함께 촬영하며 드라마를 전개해나가는 게 즐겁죠. 대본이 정말 재미있기 때문에 촬영을 하면서도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어요. 즐겁게 촬영하는 만큼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녀는 추운 날씨 속에서 지치기는커녕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함께 연기하는 배우 박용우, 연정훈과 허물없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겁게 촬영하고 있었다. 몇 시간씩 야외촬영을 하느라 입이 얼어 NG가 나는 상황도 이들에게는 즐겁게 느껴지는 듯했다. 제작발표회 때마다 으레 나오는 “촬영현장 분위기가 좋아서 피곤한 줄 모르겠어요”라는 말이 진심이었구나 싶을 정도였다.
“제가 맡은 ‘석란’은 이 시대 일반 여성과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요. 말투나 행동에서 남들보다 앞서려고 하죠. 남자와 어울리기 힘든 시대임에도, 처음 알게 된 남성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서는 성향도 있고요. 석란처럼 저도 함께 연기하는 박용우 씨나 연정훈 씨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서려고 해요. 그런 노력들이 연기할 때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떼루아> 실패 이후,
오히려 편안해졌다

한혜진을 이야기하자면 <주몽>을 빼놓을 수 없다. <주몽>은 그녀를 예쁜 연기자에서 연기 잘하는 배우로 만들어준 작품이다. 그러나 ‘소서노’의 이미지가 너무 컸던 것일까. 또다시 사극을 택하기까지는 긴 망설임의 시간이 있었다.
“제가 정말 두려워하고 못한다고 생각하는 장르가 사극이에요. <주몽>에서의 이미지가 너무 컸기 때문에, 사극 제안이 있을 때마다 망설여왔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떼루아>의 실패를 경험하고 나니 피하지 말고 부딪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떼루아>는 그녀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그 이전까지의 드라마는 모두 시청률 면에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오히려 성공만 거듭해온 상황이 그녀를 더욱 부담스럽게 했던 것 같다. 드라마를 선택하기에 앞서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따라다녔다. <주몽> 이후 1년 반 정도를 쉬면서 좋은 작품을 흘려보낸 것도 이 때문이었다. <떼루아>의 실패  이후 그녀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이 작품을 만났을 때, 부딪쳐서 넘어서보자는 도전의식이 마구 솟아났어요. 다시 사극에 도전해보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였죠. 홍창욱 감독은 제게 ‘한혜진 씨 외에는 다른 사람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거짓말이라도 그 말을 믿고 싶었죠. 사극이 제일 자신 없는 분야이기 때문에 두렵기도 하지만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촬영하고 있어요."
<제중원>의 시청률은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일단 ‘석란’의 도전은 성공이다. 한혜진 특유의 건강한 이미지는 쾌활하고 호기심 많은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
“서양 사상에 일찍 눈을 뜬 여성이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주몽>보다는 시대가 많이 올라와서 편해요. 사극 말투도 거의 안 써요. 개화기 시대 신여성 역할이라 사극이라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조금은 자유롭게 연기하려고 하죠.”
신여성, 그중에서 ‘의사’는 꽤 매력적인 캐릭터다.
“원래 전문직 여성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의사 역은 처음이라 걱정도 됐죠. 어릴 적 천식을 앓아 병원에 들락거렸던 적이 있는데, 당시 만났던 의사에 대한 나름의 동경도  있었어요. 의사 역할을 제대로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석란 캐릭터가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 같아요.”

나얼과 결혼? 지금 이대로가 좋고 편해오후 4시가 되자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내내 반사판을 들고 있던 스태프들은 길게 전선을 드리워 조명을 준비했다. 한혜진은 네 벌째 한복을 갈아입었다. 이날 촬영도 늦게까지 이어질 것이다.
피곤한 가운데에도 그녀는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 상대 배우 클로즈업이라 목소리와 어깨만 살짝 나오는 데도 힘을 빼는 법이 없다.
“감독님은 한 번 찍으면 대부분 오케이를 하시거든요.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지 잘못하면 어느새 카메라를 옮기고 있어요. 드라마는 순발력이 중요해요. 또 그런 면에서 매력이 있는 것 같고요.”
한혜진의 2010년은 뜻 깊게 기억될 듯하다. 그녀는 1월초 드라마 <제중원>과 영화 <용서는 없다>로 동시에 팬들을 만났다. 주연을 맡은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왜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지 않았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아직도 나에게 과분한 자리라고 생각돼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연기자들이 작품의 기회가 없어서 쉬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와 영화를 동시에 할 수 있으니 감사하네요.”
한혜진은 5년째 나얼과 공개 연애 중이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했던 “결혼하려고 연애하는 것 아닌가요?”라는 말이 “결혼하고 싶다”로 바뀌면서 결혼설의 주인공이 된 적이 있다.
“주변에서 ‘너무 오래 연애하면 힘들다, 결혼하라’고 많이 말씀하세요. 그런데 저희는 지금 상태로도 아주 좋고 편해요. 또 제가 열심히 일해왔던 것처럼 남자친구도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열어주고 싶네요.”
기자는 한혜진에게 초콜릿을 선물했다. 다양한 종류의 초콜릿이 낱개 포장되어 있는 버라이어티 팩이었다. 그녀는 초콜릿 박스를 들고 스태프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기자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나눠 먹어도 되죠?” 초콜릿은 스태프들에게 하나씩 돌아갔다. 내심 한혜진 혼자 먹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그 모습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 해가 떨어지고 쌀쌀해진 촬영장에 다시 온기가 돌았다.

배우 이미연, 나는 오후 1시를 지나고 있는 중이다

배우로서의 삶을 하루라고 본다면, 그녀는 지금 몇 시를 지나고 있을까? 골똘히 생각하던 이미연의 답은 ‘오후 1시’ 였다. 막 식사를 마친 포만감과 하루의 절반쯤 왔다는 안도감, 아침 동안 찌뿌드드했던 몸이 비로소 제 리듬을 찾는 시간이다. 1987년 열일곱에 데뷔해 23년을 달려온 여배우의 삶이 ‘이제야 조금은 편안해졌다’고 했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자’고 되뇔 정도다. 시청률이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시청률은 하늘이 내리는 거니까, 그저 하늘이 만덕의 편이길 바란다’며 해사하게 웃을 수 있을 정도이기도 하다. 배우 이미연이 <거상 김만덕>의 타이틀롤로 TV에 복귀했다. <명성황후> 이후 사극은 9년 만이고, 드라마로는 <사랑에 미치다> 이후 3년 만이다.

휴식休息

지난 3년이 휴식기만은 아니었다. ‘벌써 3년이나 됐나요? 정말 그렇게 됐네요’라며 새삼스레 놀란 건 쉬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배우였기 때문이다. 매번 다시 대중 앞에 설 때마다 ‘대중과 언론의 기대는 10배, 15배, 20배로 늘어난다’는 걸 그녀는 알았다. 그 기대치를 따라잡으려면 늘 숨이 턱에 차도록 뛰어야 했다. 작품과 작품 사이의 시간을 으레 공백기라고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공백이 없었다. 들어오는 시나리오와 대본을 꼼꼼히 살펴보고, 기존의 작품과 비교해보고, 연출자를 만나 의견을 조율했다. 그녀의 말을 빌자면 ‘마음으로 선택하게 되는 작품’을 만날 때까지 예의 작업은 계속됐다. 그리고 숙고 끝에 작품에 들어가면 선택에 대한 책임감, 기대치에 대한 의식 때문에 스스로를 더욱 채찍질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촬영장에는 늘 제시간에 도착해야 했고, 자신의 컨디션과는 상관없이 늘 완벽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다.
“지금 생각하면 뭘 그렇게까지 다 지키려고 했나 싶어요. 사람이 살다 보면 늦을 수도 있고 잘 못할 수도 있고 그런 건데…. 이제는 좀 여유를 가져보려고 해요. ‘괜찮아.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열심히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열심히 하면서도 좀 편안하게 하고 싶어요.” 
다시 사극을 한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나는 조선의 국모”라고 외치며 장렬히 최후를 맞이했던 <명성황후>의 그림자가 아직도 그녀에게 남아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최근 드라마 정국은 가히 사극의 춘추전국시대다. <선덕여왕>에 이은 <추노>의 선전. <제중원>과 <명가>가 그 뒤를 잇고 있고, <거상 김만덕>과 같은 시기에 천민 출신 여성의 성공기를 담은 <동이>도 방영된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번 작품을 선택했다. 사극이냐 아니냐보다, 어떤 배역인가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김만덕’이 또 카리스마를 요구하는 인물이었다면 저는 하지 않았을 거예요. 오히려 제약이 많은 인물이었죠. 제주 사람, 천민, 여자…. 그런데 그 장벽들을 하나씩 극복해 가잖아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거죠. 그게 좋았어요. 씩씩하고 희망적인 인물이라는 게.”
실제로 그녀는 자신이 맡은 인물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몰입이란 실제 그 인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기도 한다고 했다.
“‘나는 만덕이야. 와, 나랑 똑같다.’ 이렇게 주문을 외워요. 4개월 동안은 그냥 만덕이가 돼서 사는 거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고, 많이 웃기도 하고 그래요. 요즘은.”

배우俳優
김만덕의 아역을 맡은 심은경(16) 양을 이미연은 각별하게 바라본다. 그녀는 ‘내가 긴장해야 할 만큼 배역을 흡수하는 게 빠르다’ 고 했다. 어린 만덕이는 졸지에 고아가 되어 ‘할매’(고두심) 밑에서 일을 배우며 자란다. 자신에게 배분된 쌀을 몰래 장에 나가 팔기도 하고, 관아에 쫓기는 신세가 되기도 하고, 물에 빠지기도 하는 등 곡절이 많은 역할이다. 포스터 촬영을 위해 어린 만덕(심은경)과 어른이 된 만덕(이미연)이 장터에서 해후하는 장면을 찍을 때였다. 사진기사는 장사치로서 서로를 꼿꼿이 바라보기를 원했지만, 이미연은 어린 만덕을 애틋하게 바라보기를 원했다. 숱한 어려움에도 꿋꿋이 추위를 이겨내는 어린 만덕이 가엾고 자랑스러웠다. 그게 만덕의 마음이리라 믿었다. 결국 콘셉트는 바뀌었고 포스터가 완성되었을 때 스태프들은 그녀의 느낌이 옳았음을 알았다.
제주도에서 열린 <거상 김만덕> 제작발표회에서 그녀는 중간 중간 함께 출연하는 배우 고두심과 귀엣말을 나누었다. 평소 존경하던 선배이기도 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연기 안팎으로 그녀의 정신적 지주다. ‘이 역할은 네가 꼭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선배의 말에 결심을 굳혔을 정도다. 두 배우는 무슨 말을 나누는 걸까?
“실은 제가 낯을 좀 가리는 편이에요. 안 그래 보이겠지만.(웃음) 그래서 여전히 사람 많은 곳에 오면 떨리고 그럽니다. 이번 작품은 특히 선생님이 저보다 훨씬 깊이 알고 계시니까 제가 많이 의지하는 편이죠.” (고두심은 제주 출신 배우로, 1976년 <정화>라는 작품에서 김만덕 역을 맡았다.)  
그러고 보니 인터뷰 내내 그녀의 대답은 시종일관 간결했다. 그렇다고 성의 없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질문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면서, 때로는 눈썹을 찡긋하기도,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며 경청했다. 숱한 경험으로 말을 하다 보면 으레 장황해지거나 오도되기 쉬운 인터뷰의 속성을 간파했을 그녀의 말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제주도에 온 건 여러 차례 되지만 그녀는 ‘제주도가 좋다’고 했다. 쉬는 동안 내려와서 홀로  때로는 가족과 함께 ‘올레길’을 걷기도 했다며 그것이 상투적인 말이 아님을 증명했다.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올레에 보면 이렇게 리본이 묶여 있거든요. 그런데 어떤 길은 가다 보면 이게 길인가 싶을 정도로 길이 외지기도 해요. 뱀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아직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죠.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해본 일이 없는데, 최근에는 처음으로 ‘나중에 이런 데 내려와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아직 싸움이 남아 있다. 얼마 전 <선덕여왕>의 미실 역으로 사극 데뷔를 훌륭하게 해낸 절친 고현정의 후광과의 싸움도 아니고, 극중에서 동문객주 만덕의 라이벌 역으로 분한 서문객주 박솔미와의 대결도 아니다.
“배우에게는 다른 누가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중요해요. 누구를 보고 경쟁의식을 갖는다거나 자극을 받는 건 스스로에게 좋지 않죠. 현정이는 저하고 동국대 연극영화과 동기동창생(90학번)입니다. <선덕여왕> 전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잘 해내서 저도 기뻐요. 박솔미 씨는 같은 여자가 봐도 몸매가 너무 예쁘고(웃음). 여배우로서는 최근의 ‘여자 사극 열풍’이 경쟁할 일이라기보단 반가운 일이죠.”

김만덕1739~1812
조선시대 여자 상인으로 제주도에 대기근이 닥치자 전 재산을 풀어 육지에서 사온 쌀을 모두 구휼미로 기부하여 기아 상태의 제주도 민중을 구제했다. 이 때문에 제주에서는 ‘의녀’(義女)로 불린다. 전 재산을 풀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김만덕은 ‘관의 허락 없이 제주도민은 섬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규칙을 깨고 한양에서 정조임금을 알현하고 내의원 의녀반수 벼슬을 받기도 했다.
-출처 <세상을 빛낸 위대한 여성, 김만덕>

욕심慾心
그녀에게는 욕심이 있다. 마흔에도 더욱 빛나는 외모를 보면 그녀가 얼마나 자기관리에 철저한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큰 욕심은 사람들이 여배우를 볼 때 ‘주름이 얼마나 늘었는가가 아닌, 눈빛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봐주길 바란다는 거다. 10대에는 하이틴 스타로, 20대에는 스타 커플에서 돌아온 솔로로, 30대에는 영화와 드라마의 원톱으로 불렸던 그녀에게 단 하나 변하지 않는 이름은 ‘여배우’였다. 그녀는 캐릭터의 힘이나 상대 배우의 상승세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만으로 작품 전체를 이끌어가는 몇 안 되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렇게 23년을 쉼 없이 달려왔음에도 그녀의 시계는 이제 막 오후 1시를 지나고 있다. 점심을 먹고, 차를 한 잔 마시고 잠시 숨을 돌리고 나면 본격적으로 레이스를 즐길 수 있을 시간이다. 더구나 이제 막 연기가 즐거워지려는 참이다. 그녀에게는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배우고 싶은 일도 많다. 올 초에는 네팔로 자원봉사 활동을 다녀왔다. 네팔 소녀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이제 막 4개월의 대장정을 시작한 그녀는 말했다.
“만덕은 사업이 성공한 뒤에 가난한 이들을 도왔는데, 당시 제주도에 기부한 금액이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600억~700억원 정도 된다고 해요.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만덕이 정말 큰 인물이란 생각이 들죠. 작품이 끝나고 나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매번 작품을 통해서 하나씩 배워 나갑니다.” 
<거상 김만덕>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너는 네 욕심을 보았으니 괜찮을 것이다.
세상에는 제 욕심에 눈이 멀어 초심을 잃는 사람이 많다.’
이미연의 욕심은 여배우로서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이 욕심과 초심이 그녀 안에서 공존하는 한, 이 배우의 눈빛은 더욱 깊어갈 것이다.

중년 이후 전성기 맞은 배우 김혜옥

“폭탄 머리는 어떨까요?”
김혜옥은 인터뷰 전날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사진 촬영을 위해 이런 저런 상의를 하다가 헤어스타일 이야기가 나왔을 때였다. “폭탄 머리요?” 기자가 되묻자 “네, 폭탄 머리요!” 평소 그녀의 분위기로 봤을 때 잘 그려지지 않는 스타일. 알고 보니 폭탄 머리는 영화 <육혈포 강도단>에서의 콘셉트다. 2년 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연기에 몰입하면 현실로 돌아오는 시간이 있다”는 그녀의 말이 정말 맞았다. 한참 <며느리 전성시대>에서 표독스런 시어머니로 연기할 때와 달리,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밝다.

대선배와의 작업, 어려웠지만 많은 걸 배웠다

할머니 강도단을 그린 영화 <육혈포 강도단>의 인기가 뜨겁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나문희, 김수미, 김혜옥. 평균 나이 65세, 마파도를 잇는 ‘노익장’ 영화로 화제가 되고 있다. 감독은 처음부터 이 세 배우를 염두하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처음 김혜옥은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받고는 기뻤다. 그간 주로 젊은 배우들의 엄마 역할을 맡다 보니,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역할에 매력을 느꼈던 것. 이 영화에서는 젊은 배우라야 임창정 정도다. 그러나 마냥 좋아하기에는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우선 <솔약국집 아들들>, <두 아내>, <망설이지 마> 등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만 세 편, 불교방송에서 라디오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었다. 도저히 스케줄을 뺄 수 없는 상황. 게다가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은 그녀가 평소 어렵게만 생각했던 대선배들이었다. 김수미는 일곱 살, 나문희는 열일곱 살이나 많다.
“예전에는 선배들 앞에서 고개도 못 들고 다녔어요. 10년만 차이 나도 선생님이거든요. 김수미 선배님은 <전원일기>에 함께 출연하면서 곁에서 보는 것만 해도 공부가 되던 분이었어요. 김수미 선배님은 후배들에게 약간 까칠하세요. 본인도 그걸 아세요. 저도 확 트인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솔직히 이번 작품에 자신이 없었어요. 나문희 선배님은 엄마 같지만, 작품에 한해서는 굉장히 반듯하신 분이시고요.”
그래도 출연을 결정한 것은, 이 영화가 김혜옥에게 시간적인 어려움과 선배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이길 정도로 매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걱정 속에서 대선배들과의 작업이 시작됐다.
“작품을 많이 하다 보면, 웬만한 감정에는 흔들리지 않아요. 그런데 이번 영화를 하면서 많이 울고 많이 웃었어요. 선배들과 연기하면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덕분에 NG를 냈죠. 두 분은 연기가 대단하시거든요. 한수 배웠다고나 할까요? 옆에서 지켜보면서 ‘연기의 경지가 틀리구나’ 느꼈어요.”
김혜옥은 영화 작업 내내 김수미의 애드리브에 뒤로 넘어갈 정도로 웃었고, 나문희의 눈빛만 봐도 눈물이 났다.
“이분들 연기에 괜히 열광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연기가 삶 자체에서 묻어나는 것 같아요. 여러 풍파를 겪으며 살아오셨잖아요. 노력도 많이 하시고요.”
나의 비장의 무기는 ‘노력’
김혜옥은 선배들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보았다. 나이 드는 게 두려움이 아니라 또 다른 희망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선배들과 연기하다 보니 ‘나의 미래도 멋지겠다’고 생각되더라고요. 순간순간 사는 것이 너무 좋아요. 내 앞의 미래는 지나온 과거보다 훨씬 밝다고 생각해요. 나이 드는 것이 두렵지 않아요. 지금의 내가 좋아요.”
김혜옥은 지난 5년 동안 누구보다도 열심히 달렸다. 그녀만큼 많은 작품에 출연한 중년 배우는 없다. 어떤 캐릭터든 천 가지 얼굴로 소화해내 2007년 KBS 연기대상 여자 조연상을 받기도 했다.
“저처럼 재주 없는 배우도 없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거죠.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낼 수 있는 건, 제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가능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게 콤플렉스였어요. 주변에 재능 많고 미모가 출중한 분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분들에 비하면 저는 너무 모자란 거예요. 제 무기는 노력뿐인데, 그 비장의 무기가 진가를 발휘했던 것 같아요.”
자신이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어느 순간 장점이 되었다. 자신을 온전히 비워낼 수 있었기에 다양한 캐릭터를 담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너무 앞만 보고 달린 탓일까? 한동안 슬럼프에도 시달렸고, 체력적인 한계에도 부딪쳤다.
“예전에는 못 느꼈는데, 요즘에는 조금 버겁다 싶어요. 일할 때는 즐거웠는데 가끔은 짜증이 나기도 하고요. 이젠 휴식이 좀 필요한 것 같아요. 한창 바쁠 때는 몰랐는데, 드라마 <망설이지 마>를 끝내고 긴장이 풀어지더니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더라고요. 이젠 내 몸을 위한 시간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요.”

뒤늦게 딸을 인정했던 아버지,
항상 편이 되어주시던 어머니

가족은 늘 김혜옥에게 가장 든든한 지원자다. 특히 이번 영화를 가장 기대했던 가족은 바로 그녀의 어머니였다.
“영화 예고편을 보시고는 엄마가 무척 좋아하셨어요. 평소 드라마도 모니터를 많이 해주셨지만, 그동안 영화는 거의 젊은이들 이야기여서 공감하지 못하셨거든요. 이번 영화는 할머니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더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개봉하면 꼭 보겠다고 하셨죠. 그래도 식구들은 객관적으로 보지 못해요. ‘예쁘다’‘밉다’정도죠. 무조건 내 딸이 잘한다 하시고요.”
김혜옥은 지난 3월에 열렸던 기자 시사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날은 마침 아버지의 49제였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에게만 알렸던 아버지의 죽음은 시사회를 통해 알려졌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건 아니셨어요. 계속 병원에 계셨죠.”
김혜옥은 아버지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쉽게 이야기를 잇지 못했다. 잠시 고인을 생각한 듯 숨을 고르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제가 배우인지도 잘 모르셨어요. 드라마는 잘 안 보셨으니까요. 그러다 병원에 계시면서 딸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거예요. 병원에서는 TV를 많이 보게 되잖아요. 그 덕분에 제가 드라마에 제법 많이 나오는 배우라는 걸 알게 되셨죠. 게다가 딸이 병원에 오면 많은 분들이 좋아하니까 자랑스러워하셨어요.”
아버지는 그녀 덕분에 VIP 대접을 받았다. 든든한 백이 되어주는 딸이 아버지 입장에서 어찌 자랑스럽지 않을까. 그러나 아버지에게 인정받은 기쁨도 잠시, 아버지는 그녀를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젠 어머니 건강도 좋지 못하다. 그리 기대하던 딸의 영화도 아직 보지 못했다.
“엄마는 당뇨를 앓고 계세요. 오래 앉아 있거나 닫힌 공간 속에 앉아 있지 못하죠. 혈액 순환이 안 되거든요. 영화는 극장에서는 못 보고, DVD가 나오면 집에서 보셔야 할 것 같아요. 건강이 안 좋으시니 여행도 못하시고….”
그녀의 얼굴에 잠시 고통스러운 표정이 지나간다. 그러나 이 역시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냥 주어지는 시간은 없다고 해요. 고통이 온다면 그건 삶에서 꼭 필요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행복이 오면 꼭 와야 하는 시간이고요. 나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진리인 것 같아요.”
힘들고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그녀를 지켜준 건 다름 아닌 종교였다. 그녀는 독실한 불교 신자다. 아무리 바빠도 불교방송 진행을 놓지 않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종교는 나의 등불이자 길이에요. 갈 길을 몰라 헤맬 때 길을 찾아주고, 행복하게 사는 지름길을 알려줘요. 헤매고 허우적거리며 살다가 불교를 만난 뒤 나의 심리가 이런 거였구나, 깨닫게 되었어요. 그곳에 진리가 있었죠. 경전 그대로 살기는 힘들지만 많이 도움이 돼요. 제겐 종교가 심리 치료사라고 할까? 카운슬러가 따로 필요 없어요.”
김혜옥은 오래전 남편과 사별했다. “사랑은 안 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매순간 한다”며 웃는다.
“항상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요. 저 남자 좋아해요. 사랑 없이는 못 살아요. 이성이든 동성이든 매 순간 사랑하죠. 결혼요? 사랑하면 결혼도 해야죠. 아직 계획은 없어요. 세상에서 유일하게 위안이 되는 건 사람이이에요. 사람만 좋다면 어떤 고생도 감수할 수 있어요.”
김혜옥은 아이 같은 순수함을 지녔다. 계산에 서툴고 소녀처럼 로맨틱한 사랑을 꿈꾼다. 순수한 사람의 특권일까. 그녀는 행복이나 성공으로 가는 길을 잘 알고 있었다.
“만족하고 즐거운 것, 그게 행복 아닌가요? 사랑하면서 웃으면서, 그렇게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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